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김상훈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입력 2022-04-20 14:13 | 수정 2022-04-20 14:22
재생목록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관련기사] "비극적 죽음 멈춰 달라"‥부모들 눈물의 삭발식(2022.04.19 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60862_35744.html


    발달 장애인과 그 부모 555명, 그리고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단체 삭발

    "윙"하는 이발기 소리와 함께 긴 머리카락이 뭉텅 잘려나갔습니다. 엄마들의 얼굴에선 눈물도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통상 '삭발식'이라는 이름의 집회에서는 대표자 몇명이 단상에 올라가 삭발로 결의를 표하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단상에 오른 10여 명의 삭발이 먼저 시작되자, 무대를 보고 앉은 수백명의 사람들도 이발을 준비했고 모두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고 몇달 만에 열린 대규모 집회 현장에서 본 그 모습은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은 모두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들이었습니다.

    '가족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며 장애인 활동 지원체계 확대를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며 무려 555명이 삭발에 나선 겁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집회 도중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장 의원은 연대 발언을 하던 중 자신도 삭발에 참여하겠다며 깜짝 발언을 했고, 곧바로 단상 위에서 머리를 밀었습니다.

    장혜영 의원도 발달장애인 동생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이어온 단발머리를 모두 잘라낸 장 의원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제가 지금 국회에서 한국은행 총재 청문회를 하다 왔는데요. 아침에는 긴 머리가 왜 그렇게 됐냐? 누가 그렇게 물으면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가 머리 빡빡 깎은 거 하나도 안 놀랍고요. 발달장애인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가 아이를 죽이고 부모가 자살해야 되는 세상이 나는 훨씬 놀랍다. 이 세상을 같이 바꿔야 되지 않냐'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 2년간 21명이 죽었다

    지난달 2일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에게는 가슴이 미어지는 날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경기 수원과 시흥에서 같은 날 발생했습니다.

    둘 다 홀로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벌인 일이었습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관련기사] 입학식날 엄마 손에 숨진 장애아들‥말기암 엄마는 딸 살해 (2022.03.03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46782_35744.html

    마침 초등학교 입학식이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수원에 사는 40대 엄마는 생활고에 지쳐 아이의 입학식 날 여덟 살 장애아들을 숨지게 했습니다.

    같은 날, 시흥에서는 말기암 투병을 하던 50대 엄마가 20대 발달 장애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가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달 1일에도 의정부에서 성인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던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발달장애인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가족을 살해한 사건은 알려진 것만 18건, 숨진 사람은 21명에 달합니다.

    이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가슴이 무너져 내렸고, 그들은 자녀 몰래 울었다고 합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만 23세 발달 장애인 윤호 씨와 엄마 남연 씨

    그들의 고통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기 위해 발달장애인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올해로 만 23세가 된 발달장애인 이윤호 씨와 엄마 김남연 씨. 윤호 씨는 자폐성 장애와 지적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공교육을 모두 마치고 성인이 된 윤호씨가 주간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윤호 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성동구에는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가 있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센터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엄마 남연 씨는 휴식을 취하고, 일을 하며 돈을 법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윤호 씨를 키우기 위해 남연 씨는 20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지금 윤호 씨가 다니는 센터는 집에서 고작 200미터 거리. 하지만 남연 씨는 매일 윤호 씨를 데리러 갑니다. 윤호 씨가 신호등을 알아보지도, 현관 비밀번호를 혼자 누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윤호 씨가 언젠가 혼자 해내야 할 날을 위해 전자레인지 사용법부터 차근히 알려주지만, 아직은 치킨 뼈도 발라주고 양념이 묻은 입도 닦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남연 씨는 이제는 자신보다 덩치도 커지고 힘도 세진 아들을 감당하기가 버겁습니다.

    더 두려운 건 앞으로입니다. 성인인 윤호 씨가 평생교육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은 5년으로 제한돼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윤호 씨가 어디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 가득입니다.

    사실 윤호 씨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이 끝나면 갈 곳이 없는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김남연/발달장애인 부모]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어머님들은 자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눈물 바다가 돼요. 갈 데가 없어서‥힘들 때는 정말 제가 이대로는 이제 못 살겠다.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 어머님들도 사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지만 심정이 사실 이해 가요."


    통상의 자녀처럼 '고교 졸업'이 양육의 끝이 아니라, 완전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윤호 씨가 이용하는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서울에는 자치구마다 하나씩 있지만, 경기도에는 단 세 곳, 인천에는 한곳에 불과합니다. 비수도권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그나마도 센터마다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서울 성동센터는 최소 1년 이상 대기해야 들어갈 수 있고, 울산센터는 정원이 20명인데 대기자도 20명에 달합니다.

    예산은 모두 지자체에서 지원하고 있어, 의지가 없는 지자체는 이러한 시설마저도 없는 형편입니다.

    성인 발달장애인 17만 명,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자는 만 명

    발달장애인은 장애 정도와 인지 능력 등에 따라 한 달에 80시간에서 최대 150시간까지 활동보조시간을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는 하루 4시간, 한 달 120시간 정도입니다.

    윤호 씨도 120시간 동안은 활동지원사의 보조를 받을 수 있어, 그 시간에는 가족들이 비교적 자유로워집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말 그대로 활동 보조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집에서 식사를 돕는 등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는 겁니다. 하루 4시간 정도가 지원된다고 하면 나머지 시간은 여전히 가족의 몫으로 남는 겁니다.

    이렇다 보니 발달장애 가정은 맞벌이를 하기가 어렵고, 생활고를 겪기 쉬워집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된 비극적인 사건의 가정들처럼 이혼하는 가정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장애인 부모들은 장애인이 낮 동안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인프라를 늘려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야 가족들이 생업도 하고 자신 스스로를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설은 다양한 편입니다. 극소수지만 윤호 씨처럼 평생교육센터에 다닐 수도 있고요. 직업재활시설에 다니거나, 거주시설 등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복지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내놓은 주간활동서비스도 있긴 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장소와 기관에서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하고 참여하면서 낮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입니다. 정부는 올해 만 명에게 한 달에 최대 125시간 이 서비스를 지원하는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부모들은 만 명으로는 부족하고,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다양한 시설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복지관은 하루 2시간 정도 프로그램 이용에 불과해, 일을 하기 어려운 성인 발달장애인 최소 10만 명 이상이 낮 동안에 갈 곳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엔 더 많은 인프라와, 이를 위한 예산이 필요합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촘촘한 정책과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수십 년간 사회에서 외면받고 갈 곳 없어진 발달장애인들은 집으로 숨어들었고, 일부 가정들은 그런 발달장애인을 방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시가 아닌 한적한 비수도권 지역으로 떠나간 가정도 상당수입니다.

    정부는 최근 돌봄이 필요한 발달장애인 규모를 추정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과 지원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발달장애인 생활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촘촘한 정책이 나오고, 그 기조가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져야 다시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겁니다.

    지역사회로 발달장애인들이 나오려면 비장애인들의 인식 변화도 필수입니다. 사회에서 온전히 그들을 받아줘야 그들도 집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습니다.
    [탐정M] '고교 졸업하면 보낼 데 없는'‥장애인 부모들의 삭발
    최근 영화 '복지식당'이 개봉했습니다. 비장애인에게는 충격을, 장애인에게는 공감을 살수 있는 영화라고 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정재익 감독 역시 장애인입니다. 정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재익/감독(영화 '복지식당')]
    "요즘 아이들은 장애인 보면 무서워해요. 주변에 없으니까. 근데 우리 장애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함께 사는 존재로 보면 좋겠어요."


    4월 20일.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삭발한 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오늘부터 서울 경복궁역 역사에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국정과제로 포함하는 문제와 관련해, 인수위 측의 책임 있는 답변이 올 때까지 단식농성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삭발한 555명도, 장혜영 의원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다시는 장애인 가정에서 가슴 아픈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 것. 부모가 없어도 발달장애인 자녀가 사회의 도움 속에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과제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