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틀란타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김해룡 씨
올해로 47살인 김해룡 씨는 지난 1996년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에서 보치아 종목 개인전 금메달을 땄습니다.
보치아는 공던지기 게임의 일종으로, 겨울 종목인 컬링과 비슷한데, 고도의 감각과 집중력이 필요한 경기입니다.
김 씨의 금메달은 말하기도,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중증의 뇌병변 장애를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였습니다.
김 씨는 선수 생활 동안 자신의 한계에 계속해서 도전하며 싸웠고 4년 뒤 호주 시드니에서도 보치아 종목 단체전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선수 생활 이후에도 김 씨는 재활복지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동료 장애인들이 스포츠 활동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학교에서도 그의 경력을 인정해, 당시 국내 대학에서 유일한 장애인스포츠단 코치로 김 씨를 임명했습니다.
그의 석사논문 제목은 '뇌성마비 보치아 선수들의 경기 전 경쟁불안에 관한 연구’입니다.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김 씨를 만나봤습니다.
금메달리스트 김해룡 씨가 서울 동작역에서 멈춘 이유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는 김 씨는 20년째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취재팀은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반포 쪽으로 이동하는 김 씨와 동행했습니다.
2호선 지하철에 탑승해 사당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고, 이어 동작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경로입니다.
김 씨와 동행한 활동보조사가 바빠졌습니다.
빠르게 지하철 승강기 위치를 찾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만진/ 활동보조사]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게 엘리베이터 밖에 없어서 엘리베이터를 먼저 찾고 있습니다."
보통 역 외부에서 대합실로 1번,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1번 승강기를 타야 하고, 사람이 많을 때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역마다 최소 2번씩 승강기를 탔지만 그래도 동작역까지는 순조롭게 왔습니다.
그런데 9호선으로 갈아타는 통로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서울 지하철9호선 안전요원]
"엘리베이터가 안 돼서요. 휠체어로는 지금 승강장을 가실 수가 없어서요."실제로 가보니 운행중단 표시가 붙어있습니다.
집중호우로 인한 승강기 침수 때문입니다.
한 달 전인 8월 8일, 9호선 동작역은 집중호우로 물에 잠겨 운행이 중단됐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도 고장났습니다.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건데, 그러면 어떻게 가야 할까.
[서울 지하철9호선 안전요원]
(9호선 환승하려면 어디로 가야 돼요?)
"9호선 환승하시려면 4호선 타시고 서울역 가셔서 서울역에서 1호선 타시고 노량진역을 가셔야 환승이 가능하셔서요. 그게 그나마 가까운 길이여서요."4호선으로 돌아가 한강을 2번 건너고 환승도 2번 더 해서, 다시 이곳 동작역을 지나 구반포역으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환승을 포기하고 개찰구 바깥으로 나가 9호선 입구로 들어가보려 했지만, 이쪽 승강기 역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최선의 선택은 그냥 동작역에서 구반포까지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하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구반포역도 내부 승강기가 고장나, 만약 김 씨가 돌고 돌아 왔더라도 역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서울 지하철 유랑하고 콜택시 부르는 장애인들 "안내라도 제대로‥"
장애인 홍서윤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승강기 고장 사실을 모르고 동작역에 갔다가,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사실상 서울 중심부를 유랑했습니다.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출발해 동작역을 거쳐 혜화역으로 가려 했는데, 결국 고속터미널까지 가서 3호선으로, 이후 충무로역에서 한 번 더 환승해야 했다는 겁니다.[홍서윤/지체장애인]
"휠체어 배터리가 넉넉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멈출 수 있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서 좀 마음이 조마조마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홍 씨는 잦은 출장으로 9호선 국회의사당역, 4호선 혜화역 등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방해물이 생겨버렸습니다.
9호선 송파나루역 인근에 살고 있는 장애인 박건희 씨도 마찬가지.
지하철역과 불과 5분 거리에 살지만, 출퇴근하거나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이동합니다.
[박건희/지체장애인]
"동작역이 엘리베이터가 지금 멈춰 있는 상태라 그냥 무정차 역으로 다음 역에서 내리든가‥ 그런 문제들 때문에 장애인 콜택시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고‥"
복구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9호선과 서울교통공사 측은 승강기의 핵심 부품이 망가져 교체해야 하는데 수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내라도 제대로 돼야 하지만, 서울교통공사 공식 앱인 '또타지하철'이 안내하는 교통약자 경로에는 '동작역 환승'이 여전히 표시되고 있습니다.
네이버지도나 카카오맵 등 민간 앱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공지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9호선 측은 자신의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서만 '엘리베이터 가동 중단'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미리 검색을 해보고 이동하는 장애인들도 지하철역까지 왔다가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비슷했다면서 지하철역 승강기 앞에 가야만 '운행 중단'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자연재해에 더 취약한 이들‥'방법만 알려준다면'
끝내 9호선 환승을 포기한 김해룡 씨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해룡]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가지고‥"
김 씨는 승강기 수리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무작정 지하철 운영 회사를 비판하거나, 폭우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특별한 혜택을 달라고 요청하고 싶진 않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더 취약한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26년 전 금메달을 따기 위해 미국으로 이동할 때도, 평소 훈련장에 다닐 때도, 석사학위를 위해 1분에 20타 정도 타자로 논문을 쓰고, 학교로 향할 때도 어떤 방법이든 찾고 시도하면서 여기까지 온 그입니다.
대면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김 씨는 취재 이후 문자로 취재진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왔습니다."이런 자연재해가 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희 같은 중증장애인들에게는 더 취약해집니다.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은 노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분야에서 배제된다면 그거야 말로 비문명화 사회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동할 권리가 있어야 교육을 받고 노동도 할 수 있는거고 여러가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걸 국가나 지자체에서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씨처럼 다른 장애인들도 수없이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매일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분명 자연재해는 또 찾아오고, 이번 경우처럼 그 후유증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오래갈 것입니다.
다음에는 후유증이 더 길어지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법을 알려준다면 멈춰선 이들도 꿈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 [집중취재M] 폭우 한달 지나도 지하철 승강기 '먹통'‥교통약자 '분통'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06259_35744.html
▶ 애틀란타 장애인 올림픽 보치아 경기 김해룡 선수 금
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2010310_30711.html
영상기자: 손지윤, 남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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