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소득 제한 폐지" 믿었는데‥슬며시 사라진 난임 공약](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3/02/18/LSY20230218-06_3.jpg)
"맞벌이세요? 그러면 둘 중 한 분이 휴직을 하셔야.."
고민 끝에 시험관 시술을 결심한 38살 조 모 씨.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기 위해 충남 OO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을 들었습니다.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어서 맞벌이를 하는 건데 휴직을 해야만 지원비를 준다니 황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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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가 올해 1월 충남 OO보건소와 통화한 내용
게다가 난임 부부가 대부분 결혼 5년차 이상, 사회생활은 10~15년 정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622만 원이라는 기준을 맞추기는 사실상 쉽지 않습니다. 보건소 직원이 '휴직'을 언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조 씨는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주는 '부모 급여'는 소득에 상관없이 주면서 왜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들에게 주는 '난임 지원'은 소득에 따라 차별을 하느냐"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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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급여'와의 형평성을 지적하며 눈물을 터뜨린 조 씨
보건복지부에 문의해보니 2021년 기준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포함해 난임 시술을 받은 사람(중복 제외)은 모두 7만 8,575명이었고, 시술비 지원을 받은 사람은 5만 774명이었습니다. 2만7,801명, 전체의 35.4%가 지원을 못 받은 셈입니다.
<스트레이트>가 몇몇 난임 카페의 '시험관 시술' 경험자를 대상으로 이틀간 (2월 6일-7일)설문조사를 요청했습니다. 무려 1360명이 응답했습니다. 이들 중 정부 지원금을 못 받았다는 응답이 42%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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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시술비 지원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5~6년 사이 진료비는 더 올라 지금은 건보 적용을 받아도 한 차수당 200만 원 안팎이 들어갑니다. 그럼 최대 9차례(신선 기준)인 건보 적용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11번째 시술을 결심한 김 모 씨(가명)는 "시험관 시술 이외에도 먹어야 하는 비급여 약값 등을 포함하면 한 차수 당 500만 원 이상, 서울까지 교통비까지 감안하면 700만 원은 각오해야 한다. 포기할까 생각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실제 이번 <스트레이트>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4명(43%)이 지금까지 시험관 시술에 1천만 원 넘게 썼다고 답했고, 4천만 원 이상 지출했다고 한 답변도 10%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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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시술 총비용 설문조사 결과
"난임 지원을 했다고 해서 그 집에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예기치 않은 추가 지출이 난임으로 인해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을 사회가, 혹은 국가가 해결해주는 겁니다. 또 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무척 심각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출산 지원책은 모든 가정에 차별 없이 지급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있어도 못 쓰는 '난임 휴가'
소득 기준 말고도 조 씨가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난임 휴가입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8조의 3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인공수정 또는 체외수정 등 난임 치료를 받기 위하여 휴가(이하 “난임 치료휴가”라 한다)를 청구하는 경우에 연간 3일 이내의 휴가를 주어야 하며, 이 경우 최초 1일은 유급으로 한다."
한 달에 3일도 아니고 1년에 딱 3일입니다. 그나마 그중 2일은 무급입니다. 고작 난임 휴가 3일 받자고 회사에 난임 사실을 알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난임 치료를 받고 있는 직장인 최유진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배란 할 때는 정말 1주일에 세 번 정도 병원 간 적도 있어요. '난임 치료 휴가 3일'은 정말 난임 병원 안 가보신 분들이 그냥 생각 없이 만드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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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치료 휴가 제도를 지적하는 최유진 씨
소득 때문에 지원비도 못 받고, 그렇다고 휴가도 낼 형편도 안 되니 결국 남은 선택지는 '사직서' 뿐입니다. 20회 시험관 시술을 한 B씨는 "시험관이라는 게 병원을 이렇게 원하는 날짜에 갈 수가 없어요. 채취도 그렇고 생리도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업무를 남한테 부탁하는 것도 그렇고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다니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2년 정도는 버텼는데 '직장 생활과 병행을 해서 자꾸 실패하나?' 생각도 들고 해서 퇴사를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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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여성 김 모 씨(가명)가 지금까지 맞은 자가 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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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지적하는 김나영 원장
보건소로부터 '휴직'을 권유받은 조 씨는 인터뷰 도중 종이 한 장을 슬며시 내밀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작년 2월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 중 6번째 페이지입니다. 거기에는 '모든 난임 부부에 치료비 지원'이라는 소제목에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의 소득기준 철폐', '난임 휴가 기간을 3일에서 7일(유급)로 확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조 씨뿐 아니라 스트레이트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난임 부부 상당수가 이 공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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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난임 공약이 언급된 부분
물론 전 정부가 이 중차대한 사업을 지방 이양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이때 함께 이양된 사업들이 뭔가 봤더니 '지방관리여객터미널 운영', '산림서비스도우미', '지역문화예술교육지반 구축' 등입니다. 난임 지원 사업과는 성격이 다른 말 그대로 지역 사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 대체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어떻게 나오게 된 걸까요? 난임 지원 사업의 지방 이양 결정이 2021년 8월에 이뤄졌으니 공약이 만들어진 건 그 후의 일입니다. 정말 이런 현실을 모르고, 그것도 10대 공약에 포함되는 중요 공약을 만들었던 걸까요?
<스트레이트>는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시절 복지 관련 공약을 담당했던 인사 3명에게 '난임 공약을 누가 만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모 대학 교수의 이름을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해당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놀랍게도 교수는 아직까지도 '난임 시술비 사업'의 지방 이양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공약에 관여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아니고 누가 제안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석연찮은 공약 설계 과정도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 표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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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난임 공약에 관여한 교수와의 통화
# 아이 낳는데도 효율성 따지는 기획재정부
혹시 너무 큰 비용이 들어서 추진을 망설이는 것은 아닐까. <스트레이트>는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1년 3월 작성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 비용 추계서'를 살펴봤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난임 치료 시술비 전액을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법안을 제출하자 추가 재정 소요를 따져본 겁니다. 소득 기준도 횟수 제한도 모두 없애고 '시술비 전액'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이므로 공약보다 한 발 더 나간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난임 시술 지원비 '소득 기준 철폐'와 '횟수 제한 완화'였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결론은 '향후 5년간 1조 5천억 원, 연평균 3천억 원이었습니다. 1년에 3천억 원만 있으면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난임 부부들에게 시술비를 전액 지원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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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서 일부
연간 3천억 원, 물론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 재작년 기준 '저출산'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이 무려 47조 원입니다. 3천억 원은 이 중 0.6%에 불과합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신생아 26만 명 가운데 '난임 지원비를 받은' 부부가 출산한 신생아가 2만 1천여 명입니다. 지원비를 못 받는 경우를 30~40%라고 가정하면 실제 난임 시술로 태어난 신생아는 3만 명 이상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전체 신생아 10명 중 1명이 넘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저출산 예산의 고작 0.6%를 "탄력적인 사업 추진을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참고로 OECD 국가 중 출산율 1위 이스라엘은 평균 3명 이상 아이를 낳는데, 그런 이스라엘도 소득 제한 없이 모든 난임 부부에게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1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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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부부 지원 예산과 저출산 전체 예산 비교
<스트레이트> 설문 답변 과정에서 난임 부부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난임 아닌 사람이 난임 정책을 만든 것 같다'는 쓴소리부터, '여성뿐 아니라 남성 난임에 대한 지원도 키웠으면 좋겠다'는 정책 제언, '학교 성교육 시간에 가임력에 대한 부분을 포함해야 한다', '건강검진 항목에 난자, 정자 상태를 알 수 있는 검사를 넣어야 한다' 등 난임 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아이를 낳으라고 하려면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들에게 돈이라도 걱정하지 않게 해주세요', '지원 횟수, 나이 제한, 소득 제한을 폐지해도 힘든 게 난임입니다' 등의 절규까지‥ 한 글자 한 글자 난임의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스트레이트] "소득 제한 폐지" 믿었는데‥슬며시 사라진 난임 공약](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3/02/18/k230218-20.jpg)
스트레이트 설문조사에 나타난 난임 부부들의 목소리
"직장에서 저를 볼 때마다 '왜 결혼했는데 애를 안 가져'라고 하시는 분이 있어요. 솔직하게 '애가 안 생겨요'라고 했는데도 '왜 애가 안 생겨 결혼하면 다 생기는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강하게 '저 애가 갖고 싶어도 안 생기는 거예요'라고 하니까 그제야 말씀을 안 하시더라고요"
<스트레이트> 취재 과정에서 복지부와 고용부는 대책 마련을 약속했습니다. 복지부는 이미 지방으로 내려간 '난임 시술비 지원 사업' 대신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하반기까지 검토를 마치겠다고 했습니다. 현재 신선 9차, 동결 이식 7차, 인공수정 5차로 나뉘어 있는 '횟수 제한' 칸막이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고용부는 올해 1분기 안에 난임 치료 휴가 확대를 포함한 '모성보호제도' 개편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
'저출생 극복'이 국가 중요 과제로 떠오른 지금, 사실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들에겐 소득을 보며 지원 여부를 따질게 아니라, 상을 줘도 모자라지 않나 싶습니다. 취재 중 만난 난임 여성 대부분이 육체적인 고됨은 물론, 심적으로도 오랜 아픔을 겪고 있었는데요. 아이를 낳고 싶고, 잘 키우고 싶다는 이들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함께 보듬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 스트레이트 199회 "아이 낳고 싶다는데도 외면 당해"‥'난임 치료' 공약은 어디로?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454497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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