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 사는 이 모 씨
침대에 누우려면 발을 책상 아래로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머리와 발, 둘 중 하나는 벽에 닿습니다. 가뜩이나 낮은 천장은 옷걸이 봉이 달려 있어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가로 1.9m, 세로 1.5m. 채 1평(3.3㎡)도 안 되는 방. 서울 종로의 고시원 사장님이 20대 청년 한 명이 곧 입주할 예정이라며 기자에게 보여준 곳입니다. 이 방에 누워보니 취재 도중 만난 고시원 청년들이 왜 "감옥 같다" "벽이 다가오는 느낌"이라고 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기자가 누워 본 종로 고시원 2.85㎡짜리 방

종로 고시원에 사는 평택 출신 정 모 씨
<최저주거기준>
[국토해양부(국토교통부의 옛 이름) 공고 제 2011-490호]
제1조 (목적) 이 기준은 주택법 제5조의2 및 동법시행령 제7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1인 가구의 경우 면적이 14제곱미터 이상이어야 하고, 전용 입식 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 전용 목욕시설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정 씨가 사는 고시원은 당연히 하나도 해당이 안 됩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정 씨처럼 이 기준에 못 미치는 만 19~34세 청년 가구(*가구주가 청년인 가구) 비율이 2022년 8%에서 2023년 6.1%로 줄었다가 2024년 다시 8.2%로 2%p 넘게 높아졌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국토연구원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주거 형태인지 집계하지는 않았지만, 최저주거기준 미달 청년층은 비주택, 특히 고시원 거주가 많다고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인구 통계를 대입해보니 27만 1천 가구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국가데이터처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가구주 나이가 만20~34세인 331만 4천125가구에 8.2%를 곱한 값입니다.(만 19세는 제외) '청년이 가구주'인 가구가 27만이므로, 최소 청년 27만 명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거처에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2023년의 만20~34세 가구주가 있는 330만 4천506가구에 6.1%를 곱한 값은 약 20만 2천 가구. 그러니까 1년 사이에 최저주거 미달 청년이 최소 7만 명, 35%나 늘어난 셈입니다.
'27만'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역 불균형과 주택 정책의 현주소를 날 것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①지역 불균형: 지방 청년은 더 힘들다
서울에서 고시원이 가장 많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방값이 저렴할수록 언덕을 더 많이 올라야 합니다. 경남 거제에서 올라온 24살 이 모 씨의 22만 원짜리 고시원 방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이 씨의 일당은 11만 8천3백 원. 거제에서는 이만한 일자리도 없다고 했습니다.

거제 청년 이 모 씨가 사는 신림동 고시원
지난달까지 청년 고용률은 19개월째 전년동기 대비 하락 중입니다. 그런데 지방 일자리는 더 빨리 줄고 있습니다. 열악한 주거를 감수하고라도 수도권으로 몰리는 겁니다.

올해 3분기 시도별 고용률 추이 [국가데이터처]
위에서 소개한 경기 평택 출신 정 씨 사례처럼 수도권 안에서도 종착지는 서울입니다. 극심한 수도권-지방 격차가 결국 청년들을 고시원으로 내몰고 있는 겁니다. 실제로 청년층 최저주거기준 미달 비율도 전국 평균은 8.2%였지만, 수도권 외 지역은 6.5%에 불과했고 수도권은 9.5%에 달했습니다.

거제 청년 이 모 씨의 신림동 고시원 방
그런데도 그동안 '일자리 분산'에 대한 정부 정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입니다. 그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습니다.
"서울 강남 한국전력 부지 보세요. 한전이 나주로 이전을 했는데 거기에 뭐가 들어오느냐면 지금 현대차 GBC가 들어온단 말이에요. 고용 숫자 측면에서는 오히려 서울의 집중도가 더 높아진 거죠. 경기 용인과 평택의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도 정부가 수도권이 앞으로 더 집중될 거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고요. 이렇게 서울과 수도권에 고용을 유발하는 시설이 들어오게 되다 보니까 주택시장에 압박이 되고 주택 가격을 더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겁니다."
- 박 준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전문대학원 교수 -

MBC와 화상 인터뷰 중인 박 준 서울시립대 교수
대학원 수업 시간에 LH 임대주택 당첨 문자를 받고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는 26살 정희수 씨. 정 씨의 보금자리는 기자가 누웠던 종로 고시원에서 직선거리로 50미터 거리에 있었습니다. 210세대 전체가 청년임대주택(매입임대)이었는데, 부엌과 화장실까지 딸린 20㎡ 방에는 냉장고와 세탁기, 전자레인지, 에어컨, 공기청정기까지 없는 게 없었습니다. 입주민들이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희수 씨가 사는 LH 청년임대주택
지난해 LH는 서울 지역에 공급한 임대주택(행복주택, 전세임대, 매입임대) 1만 1천166호 가운데 4천1호, 36%를 청년에 배정했습니다. 비율 자체는 낮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전체 공급량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경쟁률 1천334대 1을 기록한 서울 마포구 LH 임대주택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보다는 '돈 빌려줄게 집 사라' 쪽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2020~2024년 사이 주택도시기금 융자 중 디딤돌 대출 등 주택 구입 자금 지원은 6조 원에서 29조 9천억 원으로 5배가 됐지만, 임대주택 건설 지원은 10조 7천억 원에서 12조 8천억 원으로 19% 느는 데 그쳤습니다.
내년 예산에서는 임대주택 융자 14조 4천억 원, 주택 구입 대출 27조 7천억 원으로 둘 차이가 좀 줄긴 했지만 여전히 격차는 큽니다.

2024년 주택도시기금 융자 실적
박 교수는 "양질의 공공임대 주택이 안정적으로 계속 확보되면 실수요가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대체가 될 수 있고, 전반적인 주택시장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지금은 '집을 사는' 선택지밖에 없지만, 주변에 살만한 임대주택이 충분히 많이 생긴다면 그만큼 집을 덜 사게 될 거고 자연히 집값도 안정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적정 임대료 등 사회적으로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충분히 곱씹어볼 만한 의견입니다.
이미 임대주택에 대한 다음 세대의 생각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국 청년 72%, 수도권 청년은 75%가 임대주택에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국무조정실 '2024년 청년 삶 실태조사'
이재명 정부는 공적주택 110만 호를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가운데 공공임대 비중이 얼마나 될지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게 국토교통부 설명입니다.
수도권-지방 불균형 개선, 임대주택 건설 대폭 확대. 어느 하나 만만한 과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고시원 청년 27만 명의 비명이 여기서 멈추려면 적어도 지금부터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조건과 원하는 유형을 관청에 등록하면, 해당되는 청년 임대주택이 나왔을 때 알려주는 '대기자 명부제' 같은 것부터 말입니다.
※ 참고기사
고시원에 갇힌 청춘 27만 명 [기자의 눈](2025.12.08)
https://imnews.imbc.com/replay/2025/nwdesk/article/6783195_367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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