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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두환, 부마항쟁 진압 지휘했다…문건 최초 확인

[단독] 전두환, 부마항쟁 진압 지휘했다…문건 최초 확인
입력 2019-04-22 19:38 | 수정 2019-04-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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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지기 직전 부산과 마산에서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 시위를 '부-마 항쟁'이라 부릅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수 부대를 투입시켜 독재에 항거한 부산과 마산 시민을 무차별 진압했습니다.

    그런데 그 진압 작전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현장에서 직접 지휘한 사실을 MBC가 군사 기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먼저, 계엄 사령부 지휘 계통과 아무 관계없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왜 그곳에 내려갔는지 황재실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 리포트 ▶

    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유신독재 타도를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고, 이틀 뒤인 18일 새벽 0시, 부산에 비상계엄이 선포됩니다.

    3공수 특전여단과 해병 1사단 7연대가 계엄군으로 투입됩니다.

    MBC가 입수한 해병 7연대의 상황일지입니다.

    18일 새벽 3시 50분 해병대가 부산대학교에 진입하고, 이어 오후 2시쯤, 누군가 부산대에 도착합니다.

    국군 보안사령관 전두환입니다.

    계엄사령부 지휘계통과 아무 관계 없었던 보안사령관이, 부산엔 왜 왔을까.

    MBC는 계엄사령부가 설치됐던 부산 군수사령부의 내부문건을 입수했습니다.

    부산대 방문 두 시간 전, 전두환은 당시 계엄사령관, 3공수 특전여단장 등과 함께 진압작전 계획을 검토합니다.

    이 자리에서,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 '시위대에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라'는 등, 부마항쟁을 초동 강경진압하자는 결론이 나옵니다.

    [노영기/조선대 교수, 前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민간위원]
    "부산에서 어떻게 지휘를 하라고, 어느 부대를 어디에 배치하라고 했던 것일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밑에서 작전을 짠 것에 대해서 같이 검토를 한 경우일 수도 있고…"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부마항쟁 진압 현장에 있었고, 작전계획을 논의했다는 사실은 40년 만에 처음 확인된 것입니다.

    [이재의/5.18 기념재단 조사위원]
    "깜짝 놀랐습니다. 3공수 현장에 투입된 그 부대장을 만나서, 여단장을 만나서 그렇게 작전 계획을 같이 검토를 했다, 이런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것이죠."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보안부대장, 권정달 씨에게 확인해봤습니다.

    [권정달/당시 501보안부대장]
    "뭐, (회의 참석) 했겠지. 뭐뭐 (내가 전두환) 마중도 하고 안 했겠어? 근데 하도 오래돼서 나는 기억이 잘 없다, 그거야…"

    광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전두환 씨는, 자신은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으므로, 5.18 진압작전과는 무관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두환/2002년 SBS 인터뷰]
    "군대라는 것은 지휘계통에 의해서 딱 움직이는 거예요. (당시의) 나는 계엄사령관 부하예요. 보안사령관은 보안사만 지휘하지, 그 외의 것은 지휘권이 없잖아."

    그러나 부마항쟁 당시 지휘계통 역시, 계엄사령부는 지역사단과 2군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을 뿐, 보안사령관과는 무관했습니다.

    [안종철/前 5.18 기록물 유네스코등재 추진단장]
    "3공수 여단장을 앉혀놓고, 바로 자기(전두환)가 직접 보고를 받는다…이 부분은 자기들이 벌써 이미 하나의 권력의 핵에 앉아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그런 자료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면서, 상당히 획기적인 자료를 발굴해냈다…"

    부마항쟁 때만 해도 베일에 가려있던 전두환 소장은, 10.26으로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MBC뉴스 황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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