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 것처럼 해방 직후 친일세력은 반민특위의 친일청산 작업을 일종의 ′종북′ 프레임으로 몰아서 좌절시켰습니다.
그 결과, 뒤틀린 우리 현대사를 지적하며 회자되는 말이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이 말을 부정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헌법을 짓밟았던 12.3 내란에 대한 단죄가 진행 중인 광복 80주년.
친일세력에 의해 무너졌던 반민특위의 교훈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 VCR 1-2 ▶
반민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독립운동가 고 김상덕 선생의 장남 김정륙 씨.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던 중국에서 지내야 했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다녔던 아버지는 집안 형편을 돌볼 수 없었기에 가족들 모두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3살 난 막내 여동생이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던 날, 어린 딸의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합니다.
[김정륙/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막내가 갑자기 죽어요. 진단 결과 굶어서 죽은 거예요. 세 살짜리 보고 복숭아, 무슨 당근 이런 거 먹어가지고 견딜 수가 없잖아요.″
김상덕 선생이 6.25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 뒤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예라는 명예 대신 ′빨갱이 가족′이라는 비난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김정륙/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그 당시에 취직하려고 그러면 신원보증서예요. 신원 증명서 발급을 신청했어요. 했더니 담당 직원이 ′아예 발행 불가로 나온다′… ′납북자 아들′, ′빨갱이다′ 이렇게 빨갱이로 규정해 버려.″
당연히 수입이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올해 90살인 김정륙 씨는 5년 전,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아 지금의 공공임대아파트로 이주해 오기 전까지 일생 대부분을 막노동과 신문 배달 등을 하며 월세방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항일 무장투쟁에 동참했던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의 손녀 김복생 씨.
김 씨의 할아버지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난 김 씨 역시 어려운 형편 탓에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평생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지금도 20제곱미터, 8평짜리 반지하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김 씨는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자신의 삶에서 체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복생/고 김동삼 선생 손녀]
″독립유공자들이 3대가 망한다는 원인이 있어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하니까 아버지가 공부를 많이 못 하고 매일 그 일경에 쫓겨 다니느라고 생활도 어렵고, 우리 후대들이 다 공부를 많이 못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출세라는 게 뭐라도 알아야 하는데 배우지 못하니까 어떻게 출세를 하겠어.″
독립유공자들의 평균 연소득은 일반 국민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또 43%가 중졸 이하의 학력이었습니다.
반면 일제치하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친일세력과 그 후손들의 삶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를 대대적으로 조사했고,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해 역사에 기록했습니다.
이 명단을 기록한 정부 보고서는 지금도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이 1,006명의 명단엔 조선, 동아일보의 창업주를 비롯해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등 명문 사립대학의 총장 해방 뒤에도 정, 관계 고위직을 지낸 인사의 조상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포함돼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기록이 이뤄졌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뉴라이트와 극우세력의 역사 왜곡은 거세졌고, 윤석열 정부에 와서 극에 달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앞을 대형 일장기를 들고 점거한 뒤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라고 모욕했습니다.
[김병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유튜브 ′국계본tv′, 7월 23일)]
″이 위안부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거짓말입니다. 이 성매매 여성 동상을 전국 지천에 155개, 155개나 깔아놨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는 한반도 전체를 병참 기지화한 사실보다 일제의 공업정책이 해방 후 한국 경제의 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인식을 교묘하게 보여줬습니다.
극우 유튜버들은 독립운동가들을 노골적으로 폄하하고 색깔론을 씌워 공격했습니다.
″독립운동가들 승률 1% 안 되는 그 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우리가 있다?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전혀 1도 동의할 수 없어.″
극우적 역사관을 가진 인물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했고, 대표적 무장독립투쟁 영웅인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김민철/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과거에 친일을 했고, 그다음에 독재에 협력을 해서 자기의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이 역사에 드러난 거 아닙니까? 그걸 끊임없이 만회하기 위해서 역사적 사실을 갖다가 왜곡하거나 아니면 해석을 굉장히 이제 고약한 방식으로 하는 것들인데 그거는 아마 끊임없이 되풀이될 겁니다.″
극우세력의 공격 탓인지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은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독립운동에 대한 폄하와 역사 왜곡을 꼽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의거해 시작됐던 반민특위의 친일 청산.
이승만 정권은 헌법에 의거해 출범한 반민특위를 ′반공′ 논리를 앞세워 무력으로 주저앉혔습니다.
[한홍구/성공회대 석좌교수]
″친일 청산에 실패한 게 아니라 ′친일파 민족 반역자를 청산하자′고 주장하던 민족적 양심을 가진 세력이 친일파한테 거꾸로 청산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력이 쭉 이어져 온 거죠.″
그리고 광복 80년이 되는 해를 불과 며칠 앞둔 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무력을 동원해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내세웠던 명분 역시 반민특위를 해산시켰던 이승만과 비슷했습니다.
[윤석열/당시 대통령(2024년 12월 3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대한민국은 12·3 내란사태의 법률적 단죄 국면을 맞이한 상태입니다.
단죄의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 역사적 정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는지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해방 직후 좌절된 반민특위의 교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준식/전 독립기념관장]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말이 맞습니다. 공권력을 불법으로 동원해가지고 사실은 반민특위를 반민특위 무장대, 특경대 무장을 해제시킨 거는 사실은 헌법을 파괴한 거거든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난 직후에 벌인 헌법 파괴 행위가 제대로 반성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 80년이 지난 다음에 또다시 재현된 거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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