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 중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과 연단에서 48초간 대화를 나눈 직후. ′코리아풀′ 촬영 영상을 확인하던 현지 기자단은 대통령 입에서 나온 욕설과 비속어를 선명하게 들었습니다.
[당시 순방 동행 기자 A]
″저희 후배 기자가 ‘대통령이 이 XX라고 했답니다’라고 보고를 하길래 ‘뭐 진짜? 뭔데’ 기자실에서 사실은 그 녹취 때문에 발칵 뒤집혔던 이유는 비속어가 가장 컸어요. ‘이 XX’, ‘X팔려서’ 이런 단어가 너무 바로 들리잖아요.″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 발언을 돌려 들었고, 대통령실 관계자도 이때 처음 음성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순방 동행 기자 B]
″김○○ 비서관이 얼굴이 하얘지더라고요. 그랬더니 한 5분쯤이나 지났으려나? 담배 좀 한 대 피우재요. 저보고. ′아 이거 나가면 큰일 납니다. 저 잘립니다′ 막 이러는 거예요.″
기자들은 정확한 발언 내용과 비속어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등을 물었지만, 대통령실은 방송기자단 간사에게 ″공식 석상이 아니었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데다 외교상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며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비슷한 시각 김은혜 당시 홍보수석이 뉴욕 현지에서 박성제 당시 MBC 사장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박성제/전 MBC 사장]
″회의 중이라서 내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서 끊었어요. 근데 한 1~2분 있다가 또 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야 이거 뭔가 급한 일인가 보다′ 왜냐하면 김은혜 수석하고 저는 잘 아는 사이이긴 했지만 홍보수석이 된 이후에는 저하고 통화를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는 사이 비속어 영상이 SNS 등을 통해 국내에 급속히 퍼졌고, 엠바고, 즉 보도 제한 시간이 지난 뒤, MBC 유튜브 채널을 시작으로 당일에만 148개 매체에서 보도가 쏟아졌습니다.
문제의 비속어 발언이 나오기 직전의 상황을 확인해 봤습니다.
국제사회에 1억 달러의 기여금을 내겠다는 윤 전 대통령의 연설.
[윤석열/전 대통령]
″대한민국은 총 1억 불을 앞으로 3년 동안 기여할 것입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고마움을 표하며 미국도 60억 달러를 더 내겠다고 약속합니다.
[조 바이든/당시 미국 대통령]
″우리는 의회 파트너들과 협력해 글로벌펀드에 60억 달러를 추가로 기여할 계획입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이 행사장을 나가며 문제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60억 달러 기여금 약속을 미국 의회가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난처할 거라는 맥락으로 해석됐고, 당시 기자단 의견도 문제의 단어는 ′바이든′ 이라고 모아졌습니다.
[당시 순방 동행 기자 B]
″사십 몇 초 만났잖아요. 바이든을. 악수도 제대로 못 하고. 국내 취재진들이 찍고 있으니까 스스로가 창피해서 그런 얘기를 한 게 아닌가. 민망하니까… 그런 거일 거라고 저희들은 얘기했죠.″
당시 바로 옆에서 문제의 발언을 들었던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그는 공식브리핑을 통해 ″발언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사적 발언을 외교적 성과와 연결 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만 했습니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란 해명이 처음 등장한 건 그로부터도 9시간 뒤였습니다.
[김은혜/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
″지금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 순방 동행 기자 A]
″′바이든이 아니다, 날리면이다?′ 이게 무슨 말이야? 브리핑을 하는데 너무 황당했어요. 저희는 바이든인 줄 알았는데, 철석같이. 그럼 ″이 XX는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돌려버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미국에 대해서 우리가 그렇게 욕한 게 아니라는 것이 브리핑의 초점이었어요.″
그런데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 이라는 반박이 나오기 전, 현장에 있던 대통령실 참모진은 비속어를 쓴 대통령의 사담이 방송된 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음성 대독)]
″부적절한 발언이 노출된 것에 대해 빨리 사과하는 것이 좋겠다… 사과하고 정리하는 것이 좋겠단 의견이었고, 발언 내용에 대한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은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짤막한 사과문도 작성해놨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런 방안을 들고 대통령 대면 보고에 들어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보고를 마치고 나온 김 수석의 회견 내용은 사과 대신, 반박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국민 사과 방안에 대해 김 수석이 말도 제대로 못 꺼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음성 대독)]
″수석을 보니까 결국은 엄청 혼나고 말도 못 꺼내고 왔던 것 같더라고요… 워낙 대통령이 격정적인 분이라 갑자기 화내고 그러니까… 평소에도 대통령을 많이 무서워했어요.″
당시 대국민 사과 방안을 실제로 보고했는지, 대통령이 화를 내며 거부하진 않았는지, 현 국민의힘 의원인 김은혜 전 수석을 찾아가 물었지만 즉답을 피했습니다.
[김은혜/국민의힘 의원]
<사과하자는 의견이 왜 그 당시에 묵살된 거예요?>
″일단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은 제가 재판부에 제대로 사실대로 제출을 했으니까…″
<진술서 내신 거 다 읽어봤는데 ‘날리면’이라는 말 있잖아요. 그 말은 언제 나오게 된 거예요?>
″저는 대통령이 저한테 이야기해 준 걸 홍보수석으로서 기자들에게 그대로 이야기를 한 겁니다.″
스트레이트는 김 전 수석이 외교부와 MBC의 소송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를 확보했습니다.
김 전 수석은 진술서에서 ″대통령실이 의뢰한 음성 판독 결과를 받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서,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문구를 최종 확인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이트가 만난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의뢰한 ″음성판독결과는 ′판독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당시 대통령실이 의뢰한 판독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당사자들은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은혜/국민의힘 의원]
<음성 판독 결과에 ′날리면′이라고 나오나요? 아니면 판독할 수 없다고 나오나요?>
″저는 대통령이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기자들에게 이야기한 겁니다.″
김 전 수석은 또 재판 진술서에서 대통령이 ″자신은 평소 미국 의회를 의회라 부르고, 대한민국 국회는 국회라고 칭한다″고 말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보면 오히려 우리 국회를 ′의회′라고 부르고,
[윤석열/당시 대통령 당선인(박병석 국회의장 예방, 2022월 3월 10일)]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의회′ 지도자들과 상의하고, 또 ′의회′와 논의하면서…″
반대로 미국 의회를 ′국회′라고 표현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전 대통령(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2024년 11월 7일)]
″′미국 국회′에서 특별검사법이라고 하는 것을, 사실은 공직자윤리법의 한 조항인데요. 그 경우는 ′국회′가 이거는 특별검사로 수사를 해야 되지 않느냐는…″
관련자들은 아직도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부적절한 비속어 사용의 당사자 역시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 신수아 기자 ▶
이 사건 뒤 윤석열 정부는 MBC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강승규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MBC 앞에서 시위를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는데요.
[강승규/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A 씨(출처: 유튜브 ′시민언론 더탐사′)]
″저X들, MBC나 저런 X들 어떻게 해야 돼요? <MBC 앞에 가서 우파 시민들을 총동원해 가지고 시위해야 돼요.> 그래요 <퇴진 시위> 주변에 좀 그렇게 하세요.″
[윤석열/전 대통령(2022년 9월 26일)]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이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MBC 기자와 경영진에 대한 형사 고발이 이어졌고,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국세청의 520억 원 추징금 부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최고수위 제재가 잇따랐습니다.
그리고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언론중재위 제소와 정정보도 소송에 나서라는 대통령실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에 따라 9월 28일 외교부 대변인단 회의가 긴급 소집됐습니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명예훼손 당사자도 아닌데 외교부가 왜 나서야 하는지 대부분 납득하지 못했고, 소송을 하면 안 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보고받은 박진 당시 외교부장관도 ″언론사와 정면 충돌하는 건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는 대처″라며 동의했다고 했습니다.
박 장관이 이같은 입장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고 얼마 뒤, 강한 질책이 내려왔습니다.
외교부를 질책한 인물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강훈 당시 대통령실 국정홍보비서관이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 A(음성 대독)]
″강훈 국정홍보비서관이 전화해서 ′누가 이런 생각을 했느냐, 이 소송 반드시 외교부가 해야한다′고 길길이 날뛰었다고…″
′김건희 라인′ 실세로 불렸던 강 전 비서관은 47개 정부 부처의 대변인단을 총괄하고 있었는데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일명 ′군기반장′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외교부 관계자 A(음성 대독)]
″′외교부가 쫙 달라붙어서 하는 맛이 있어야지, 대충하면 안 된다. 이럴 때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MBC를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강 전 비서관은 스트레이트와의 통화에서 ″수위를 넘어서는 잘못된 비판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얘기한 건 맞다″면서도 ″MBC 응징이란 단어를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대통령실의 압박에 못 이겨 외교부는 소송을 맡았지만, 내부에선 서로 맡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외교부 관계자 B(음성 대독)]
″다 하기 싫어해서 서로 미국 담당하는 ′북미국′이 해라, MBC니까 언론 담당하는 ′대변인실′이 해라… 소송 담당하는 ′국제법률국′이 해라…″
담당 부서는 북미국으로 결정됐습니다.
대통령실은 대리 소송을 지시한 것에 그치지 않고 변호사까지 직접 결정해 내리꽂았습니다.
최태형 변호사.
지난 2020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당시 외부 징계위원이었지만 출석하지 않은 인물로, 사실상 윤 총장 징계에 반대한 걸로 해석됐습니다.
외교부 내부 지침엔 소송대리인으로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를 우선 고려하고,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경쟁입찰이 원칙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외교부가 최 변호사에게 지급한 비용은 성공보수를 포함해 5천만 원이 넘습니다.
[한정애/더불어민주당 의원]
″변호사에게 지급한 보수도 역대 최대의 금액입니다. 5년간 외교부 수임료 내역 중에 최고액입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언론 정정보도 소송을 잘하는 전문가라고 대통령실에서 찍으니,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소송 내내 대통령실은 외교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압박했습니다.
스트레이트가 만난 한 외교부 관계자는″대통령실 한 비서관이 북미국에 찾아와서, ′외교부가 소극적이고 책임을 회피한다′며 욕하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MBC를 겨냥해 대통령실이 기획하고 밀어붙인 소송.
외교부조차 승소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서울서부지법 성지호 재판장이 맡은 1심에서 외교부가 승소합니다.
법원의 음성 감정 결과는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판독이 불가하다고 나왔지만, 재판부는 ″′바이든′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다″며 MBC가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외교부가 나서 소송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보도 내용과 연관성이 있으므로 외교부가 정정보도를 청구할 자격이 있다″는 이례적인 판단을 내놨습니다.
[심영섭/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
″진위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사과부터 하라는 방식인 거잖아요. 그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죠. 그리고 사과를 해야될 이유가 뭔지가 명확하지가 않잖아요.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단 이야기인데,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면 사과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정권교체 뒤 조현 외교부 장관이 MBC를 상대로 한 소송은 잘못된 조치였다고 사과하면서 향후 2심 재판에는 변화가 예상됩니다.
부적절한 말을 내뱉은 대통령은 사과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을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탄압했습니다.
민주공화국의 근간인 언론자유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박성호/방송기자연합회장]
″진솔하게 해명하고 지나갔으면 됐을 문제를 국가 공권력을 총동원해서 이것을 어떻게든 무마하려고 하고 또 언론을,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데 권력을 악용했다는 점에서는 민주주의 파괴이고 훼손이거든요. 이런 것을 그냥 덮어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