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03 22:45 수정 | 2022-05-03 22:45
<b>- 역대 최대 재건축이라는 둔촌주공, 조합과 시공단의 갈등 쟁점 <2020년 계약서>와 <마감재 고급화>, 양측의 입장은?
-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노후된 아파트 재건축 시기 도래,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 주민들</b>
3일 밤 PD수첩 <재건축과 리모델링, 눈치전쟁의 결말은?>에서는 부동산 시장에 불고 있는 바람, 리모델링과 재건축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대선에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 이후 입주 30년이 된 1기 신도시 주민들은 리모델링과 재건축으로 의견이 각각 나뉘었다. PD수첩은 현재 갈등 속에 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찾아가 취재했다. 또한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에서는 조합과 시공단의 의견이 달라 공사현장이 중단되는 사태도 있었다.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 원인은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부동산 정상화를 위해 불합리한 조세제도와 임대차 3법을 공약했다. 특히 ′규제완화′에 초점을 둔 정비사업 활성화 공약으로 최근 재건축 시장은 술렁이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 공사라는 둔촌주공 아파트. 2020년 공사가 시작된 이곳은 내년 8월 1만 2천여 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2009년 재건축 조합 설립인가를 취득하고 이후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과 롯데건설까지 총 4개 회사가 참여했다. 그런데 지난 4월 15일 0시를 기점으로 시공 사업단 일명 ′시공단′은 공사 현장을 전면 중단시켰다. 시공단과 조합의 갈등 때문이었다. 그들의 쟁점 중 하나는 조합이 주장한 <2020년 계약서 무효>. 지난 2016년 계약한 내용보다 공사비가 5,600억 원이 증액된 계약서가 문제가 된 것. 조합은 전임 조합장 재직 시절에 체결된 계약서는 무효라며 시공단과 새로 계약하길 원했다. 반면 시공단은 당시 산정하기 어려워 유사한 실적을 통해 자료를 얻는 과정이라고 반론했다. 잘못된 부분은 한국부동산원에 가서 소명을 했다는 것. 그들은 조합에서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다른 갈등도 있다. 시공단이 조합 측에게 받은 <마감재 리스트>. 구체적인 업체명이 적혀있었다. 조합은 단순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시장조사를 위해 만든 품목 리스트일 뿐이라는 것. 서울시의 중재에도 양측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공사가 중단되자 일자리를 잃은 4천여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시공단의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특정 조합과 건설사의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주택 공급 부족은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상을 진단했다.
지난 1991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1기 신도시(분당, 일산, 산본, 평촌, 중동). 신도시들에 30년 재건축 연한이 다가왔다. 해당 지역 부동산 주인은 ″선거 지나고 2주 동안 1억 원이 올랐다고 생각하면 돼요.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한동안 정체된 아파트값은 상승세를 보였다. 새 정부는 주택공급을 막는 규제를 풀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대표적으로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30%로 하향하는 <안전진단 규제완화>와 부담금 기준 상향 및 부과율 기준을 인하한 <분양가 규제 합리화> 그리고 <용적률 완화> 등이 있었다.
1기 신도시인 일산. 대선 이후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이다. 이곳에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들은 각각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었다.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리모델링>은 건물의 골조와 내력벽을 두고 수평이나 수직, 별동 증축을 통해 아파트 구조와 세대수를 늘릴 수 있었다. 2018년 정부의 재건축 규제 강화 이후 재건축보다 진행이 수월한 리모델링 사업이 관심을 받았다. 일정 인원 동의가 필요한 리모델링 사업은 준공 후 15년 이상, 안전진단에서 B~C등급이면 사업이 가능하고 재건축은 준공 후 30년이 이후로 안전진단 D 이하를 받아야 가능하다.
양경애 씨는 내후년 1월 아파트에 입주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공사기간 동안 20년 넘게 살던 집을 나와 그는 전세 거주 중이다. 양씨의 아파트는 원주민 세대 외에 29세대를 추가로 일반 분양했다. 분양가 상한제와 전매제한 적용을 받지 않아 경쟁률이 높았다. 웃돈을 받고 판매도 했다. 이를 두고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분양가 상한제) 분양 단지 기준이 30세대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29세대를 (분양) 하면 규제가 없는 거예요″ 규제를 받지 않을 만큼의 분양이었다는 것.
1기 신도시에서는 리모델링 추진 현수막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주민들은 리모델링에 대해 어떤 생각일까. 한 주민은 ″거의 반대예요. 노인네들이 리모델링할 동안 이사 갔다 돌아올 수 있나요? 다 죽지″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리모델링을 원하는 사람들은 실거주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투자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해당 아파트는 리모델링 조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의견은 나뉘고 있었다. 처지에 따라 집을 팔고 나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양씨는 ″제가 이사 나올 때 많은 분들이 (집을) 파셨어요. 개발은 돈이 필요하고 돈이 부족하신 분들이나 나이 많은 분들은 열외가 될 수밖에″없는 상황을 전했다.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올해 준공 이후 26년 차. 이곳은 리모델링을 위한 조합설립 여부를 두고 주민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조합설립을 위해 주민들의 동의를 모으고 있는 조합추진위와 반대 의견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었다.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공사기간에 나가 살아야 하는 것과 높은 분담금을 부담스러워했다. 양측의 갈등이 깊어져 언성을 높이는 일도 생겼다.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한 주민은 ″갑자기 몇 명이서 추진위원회라는 걸 만들고 주민들한테 설명회를 제대로 한 적도 없다고″했다. 조합 측은 공개 토론하자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사업을 반대하는 쪽이 듣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주택법에 의한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은 주민 중 3분의 2 이상, 66.7%의 동의가 있어야 조합을 만들 수 있고 다시 전체 주민의 75%의 동의율을 얻어야 ‘행위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평촌의 한 아파트 단지는 2008년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되고 행위허가 동의율을 달성한 곳이다. 이곳은 주차공간이 부족해 테니스장을 임시로 이용하고 배관이 낡아 녹물이 나오고 있을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주민들은 배관 교체를 원했지만, 지자체 조례상 리모델링 조합이 있어 시청의 지원 순위에서 밀렸다. 리모델링을 위한 분담금이 없어 반대표를 낸 박승규 씨. 그를 포함해 공사를 반대한 세대들은 조합으로부터 매도청구소송을 당했다. <매도청구소송>은 리모델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부동산을 강제로 가져오기 위해 법원에 청구하는 소송이다. 김정우 변호사는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야겠죠. 시가에 의해 보상하게 돼있어요. 사람들은 부동산에 나온 최고 호가를 생각하지만, 감정평가는 그것보다 통상적으로 좀 낮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된 지 14년이 지난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한쪽에 커다란 구조물이 있었다. 리모델링 조합에서 층수를 높이기 위해 수직증축 실험을 하고 있는 것. 우리나라에 없던 공법이라 실험장치가 설치될 때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은 처음에는 리모델링을 찬성했지만, 점차 반대 입장이 늘었다. 리모델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진행이 더딘 점과 재건축이 가능한 30년의 기간을 맞은 것, 신공법을 위해 100억 원이란 큰 비용을 썼는데도 소유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지 못한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장은 신공법을 사용하는 만큼 매뉴얼과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공무원 담당자가 올 때마다 대화가 쉽지 않다는 것. 그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겠다고 밝히며 안전시공을 주장했다.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아파트 119군데에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리모델링 조합은 자체적으로 정하는 내부 규약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권한이 큰데, 주민들은 불만이 있어도 현행 주택법상 행정기관에서 관여하기 힘든 구조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적용받는 재건축에 비해 리모델링 사업은 갖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노후화되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좀 더 체계적인 규제와 관리 감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