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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신수아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입력 2021-01-20 15:22 | 수정 2021-01-2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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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더러운 반지하집 앞에서 "살려달라"며 친언니가 울었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56살 전 모 씨, 친동생은 수소문 끝에 언니를 찾아갔다 할 말을 잃었습니다. 쌀쌀한 9월 날씨에 허름한 민소매만 입고 있던 언니는 집 앞 전봇대 앞에서 동생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울었습니다. 멀쩡히 살고 있는 줄만 알았던 아파트는 어디 갔냐고 물었지만 용돈 10만 원으로 살고 있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반지하방은 냄새가 지독해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 거리에서 주워온 은행나무 잎이 온 집에 깔려 있고 키우는 개가 싸놓은 배변 패드 수십개가 치워지지 않은 곳에서 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붙어 집을 청소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답니다. 지적장애 엄마인 전 씨, 엄마보다도 심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둘째 딸 30살 박 모 씨, 두 식구가 가까스로 '구조'됐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단란했던 전 씨 가족의 삶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남편이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월 수입의 절반 넘게 '보험료'만

    이 가족의 월 수입은 2백만 원이 채 안 됩니다. 환경미화원이었던 남편의 국민연금과 장애인학교에서 일하는 딸의 월급을 합친 돈입니다. 그런데 보험료만 절반 넘게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3년 전에는 570만 원까지도 냈는데 그걸 줄이고 줄인 게 이 금액이었습니다. 보험가입내역을 살펴보니 최근 가입했던 보험만 55개입니다. 가입과 해약을 반복했고 현재는 보험 16개가 남아 있습니다. 보장 내역도 겹치는 불필요한 보험들입니다. 암 보험과 치아보험, 종신보험 등 같은 보험을 서너개 씩 들었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황당하게도 이들 모녀, 운전면허도 없고 운전할 생각도 없다는데 운전자 보험도 엄마가 2개, 딸이 3개나 들었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이 모든 보험은 보험설계사 홍 모 씨, 한 사람이 들게 했습니다.

    아파트 판 돈도, 예금도 모든게 '사라진다'

    이 집에선 돈 될 만한 것들은 어김없이 사라졌습니다. 원래 모녀는 외가 쪽에서 유산으로 남겨 준 24평짜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재산관리를 맡은 시동생이 주선해 시세보다 싼 2억 5천만 원에 팔았는데 모녀 통장에 남은 돈은 없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예금 통장에선 천만 원 단위의 목돈도 수시로 빠져 나갔습니다. 남편의 조카 박 모 씨가 5천만 원을 가지고 갔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보험설계사 홍 씨도 2천만 원 넘게 가져갔습니다. 왜 가져갔는지 물었습니다. "잠깐 맡아준 돈"이다, "나는 모른다, 재산관리하는 시동생한테 물어봐라"…해명이라고 들은 말입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5+2는 뭐야?" "…"

    보험 가입을 모녀가 '알고' 했을까요? 이들과 잠깐만 이야기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숫자도, 글씨도 못 읽습니다. 5+2 같은 단순 계산은 물론 통장에 적혀 있는 숫자도 못 읽었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수십 개 보험의 복잡한 보장 내역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불가능해보입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 홍 씨는 이들에게, 또 시동생이나 남편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본인이 들겠다고 하는데 안 들어주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이제 집 찾을 수 있어요?"

    첫 날 보도를 본 뒤, 모녀가 저에게 제일 처음 한 말입니다. 이제 집은 찾을 수 있을까요. 수년간 냈던 그 많은 보험료는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모녀 앞에는 피해 내역을 입증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비슷한 피해를 당한 또 다른 지적장애인 이 모 씨의 동료를 만나봤습니다. 이 씨는 5년간 보험설계사 꼬드김에 넘어가 78개 보험에 가입했고 1억 5천만 원을 보험료로 날렸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증거가 부족하다"며 결국 이 가운데 사기로 인정된 건 단 4건. 관련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보험사들은 "어쨌든 본인이 동의했으니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일부 악덕 설계사나 보험사에겐 지적장애인이 그저 먹잇감인 겁니다. 보험사들을 관리해야 할 금감원도 방관자에 불과했습니다.
    [탐정M] '보험 55개' 지적장애 모녀…'후견인 제도' 알았다면?
    지적장애인이 여러 보험사에, 이상하리만큼 수십개의 보험을 가입했는데도 이번에도 또 금융 당국은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지적장애 모녀는 금융감독 당국이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반지하방에 방치된 채 살아가던 이들을 가족이 찾아내지 못했다면, 모녀의 목소리는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을까요?


    Q. 지적장애 가족이 비슷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A. '후견인 제도'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 댓글 중 "지적장애 가족이 비슷한 피해를 겪고 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냐"는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거래 내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핸드폰 개통이나 보험 가입 같은 계약을 맺어 왔다는 건데요.

    장애인권익센터에선 '후견인 제도'를 하나의 방법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장애나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겪는 사람일 경우 절차를 거쳐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습니다. 계약이 피후견인에게 불리한 내용이거나, 장애로 인한 잘못된 판단으로 해당 법률 행위를 했다면 후견인이 계약을 취소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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