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무작위 배당'을 한 적 없다 [서초동M본부]](http://image.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__icsFiles/afieldfile/2025/12/20/yh_20251220-11.jpg)
■ "순진하다"는 판사들의 자평
김용현 전 국방장관 내란 혐의 사건을 배당하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들은 회의를 했다. 당시 형사부 14곳 가운데 제외할 재판부를 본인들이 정하고, 외부에는 '무작위 전산 배당'을 했다고만 알렸다.
내란 사건 배당 과정을 취재하며 전·현직 법관 여러 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다른 시각 만난 두 명은 "판사들이 순진하다"는 표현을 공통되게 했습니다. 판사들은 시키는 대로 맡아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사건 배당에 작당모의 같은 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또 다른 판사는 법관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즉 "가장 예민한" 세 가지는 "인사, 사무분담, 배당"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어느 법원에 갈지, 어떤 업무를 맡을지, 어떤 사건을 재판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라는 것입니다. 앞의 두 가지는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인사 시기마다 희망원을 써내긴 하지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배당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판사가 사건을 골라 재판한다면, 형사 피고인이 재판부를 골라 재판받는 것만큼 황당합니다. 그런데 암암리에 조정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판사들이 "이 사건을 내가 맡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식으로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반영되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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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당, 그 민감한 문제에 관하여
적어도 배당에 관해서 판사들은 순진하지 않습니다.
형사소송에서는 '관련사건'을 병합해 재판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피고인이 같거나 내용이 비슷한 사건이 대상입니다.
병합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귀연 재판장이 있는 형사25부가 김용현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사건을 배당받은 뒤 기소가 따로 이뤄진 조지호·김봉식, 윤석열의 내란 사건 2개를 배당 받았지만, 그 뒤 기소된 한덕수와 이상민의 내란 사건은 다른 재판부 두 곳이 각각 맡고 있습니다.
주요 사건을 병합하는 경우 이미 재판부가 각각 정해진 뒤 합쳐지기보다는 애초부터 원래 사건을 맡고 있던 재판부에 바로 배당되는 게 대부분입니다. 수석부장이 권한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원래 사건을 진행하고 있던 부의 재판장에게 "추가로 관련사건이 들어왔는데 병합해서 같이 할 수 있겠냐"고 묻고, 못 한다고 했는데도 맡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어느 판사가 "왜 사건이 재배당되는 경우가 잘 없는지 아느냐"며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사전에 조율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다른 사건으로 부담이 크다"며 전산배당 대상에서 '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용현 내란 사건 배당 때도 실제로 적용된 기준입니다.
때로는 배당 문제가 싸움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전산배당에는 '가중치'와 '감경치'라는 게 적용됩니다. 어렵고 오래 걸리는 사건을 배당받으면 1건이 아니라 1.5건으로 계산하고, 비교적 쉬운 사건을 맡으면 0.5건으로 계산하는 식입니다. 실제보다 더 많거나 적은 재판을 하는 것처럼 추첨 시스템이 인식하게끔 조정하는 것입니다.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접수하는 단계를 거치는 만큼, '이 사건은 어려운 사건인데 왜 가중치 적용이 안 되었느냐'며 법관이 접수 직원을 나무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판부끼리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전산배당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며 법관이 직접 법원행정처에 문의를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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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한 칸에서 이뤄지는 배당
무거운 사건을 맡으면 그만큼 업무부담이 막중하니, 배당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도 이해할 법합니다. 판사도 사람이니까요. 어느 판사는 "그런 사건을 한다고 해서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욕만 먹으니 다들 안 맡으려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문제는 배당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전산배당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모습을 본 판사는 손에 꼽습니다. 수석부장의 업무용 PC에 권한이 주어지고, 클릭 한 번으로 추첨과 지정이 이뤄집니다. 법관들이 "순진"해서 그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용현 내란 사건 배당 이전 수석부장실에서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장들의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 참석자는 그런 회의가 열렸다는 것조차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성폭력 재판부는 빼는 게 낫지 않겠나" "법원 내규를 고쳐 부패전담부가 내란 사건을 하도록 하자" "주요 사건을 들고 있는 재판부는 제외하는 게 맞겠다"‥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사건을 누가 맡을지를 두고 이런저런 논의를 하면서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법원 역시 취재한 내용이 맞는지 묻는 MBC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14개 형사부 가운데 최종적으로는 5개 부가 전산배당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법원을 떠나거나 옮길 재판장이 있거나, 주요 사건 선고를 앞둔 재판부를 제외한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도중에 재판부가 바뀌면 공판 갱신 절차 등으로 인해 진행이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논의 과정을 좀더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지금처럼 지귀연 재판장에게 사건을 꽂았다는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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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위 배당'이라는 허상
법원이 국회가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를 반대하는 주된 근거는, 무작위 배당 원칙이 깨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무작위 배당의 풀은 그때그때 재판장 의견이나 상황을 반영해 달라집니다. 재판을 합치거나 합치지 않는 것 역시 법원의 재량입니다. 규모가 작은 지방법원 아래 지원의 경우 아예 형사합의부가 하나밖에 없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무작위 배당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크게 부패, 경제, 성폭력으로 나뉘는 전담 사건을 구별해둔 것도 법원 스스로 이미 무작위 배당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컨대 알선수재죄 사건을 접수한 법원은 부패 전담 재판부 가운데 추첨해 재판부를 배당합니다. 서울중앙지법을 기준으로 추첨 대상은 기존 16개 재판부에서, 부패 전담 재판부 6개로 줄어듭니다.
대법원은 그제 내란·외환·반란 사건을 전담할 수 있는 재판부를 만들 수 있도록 예규를 발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통과를 저지하려는 시도 같습니다. 이미 법원에서 기존에 전담재판부를 운용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배당에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는데 당사자인 판사들이라고 안 그럴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배당 자체에 손을 댈 수 있고, 누군가는 그것을 시도할 수 있다고 의심하는 판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난 2008년 촛불시위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준 의혹인 신영철 전 대법관 '촛불 배당' 사건 등을 겪으며, 이런 일은 다신 없어야 한다는 의식이 법원 안에 형성되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내란 사건 재판부 선정을 평소 방식대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법원의 주장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법원이 이렇게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무작위 배당을 살펴보니 진짜 무작위도 아니었습니다. 법원이 사실상 작위 배당을 해 온 이유는 제척·기피·회피 사유가 없는 한 어느 판사가 무슨 재판을 해도 합법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단 한 번 국회를 통해 배당 절차를 정한다면, 그건 '오염됐다'는 불신을 마주한 채 1심이 끝나가는 내란 사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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