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반지하 거주]
″비디오 같은 거 내가 다 찍어놓은 거 그거 다 버리고. 가전제품 하나도 못 가지고 오고. 다 나한테 소중한 거죠, 너무 속상해요.″
하지만 이사는 꿈도 못 꿉니다.
홍 씨는 걸어서 10분 거리 아파트에서 일합니다.
종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청소하고 한 달에 125만 원을 법니다.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는 20만 원.
주머니 사정이 뻔한데, 직장은 가까워 이제 반지하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홍○○/반지하 거주]
″이제는 새로운 데서 내가 적응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해봤기 때문에. 내가 여기 와서 이제 알아. 이제 이 사람 그나마 내 얼굴을 익히고 알고 그런 사람들이 이 주위의 사람들이잖아요.″
반지하는 전국 32만 7천여 가구.
수도권에만 96%가 몰려 있습니다.
반지하 가구 월 평균 소득은 190만 4천원.
전체 가구 평균보다 1백만 원 이상 적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왔는데, 소득 수준에 맞는 집이 없다 보니 반지하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최지애/반지하 거주]
″콜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요. 저희 큰아들 같은 경우도 같은 콜센터에서 근무를 하거든요. ′지방 가면 그 돈으로 전세도 얻을 수 있고 한데 왜 못 가냐′고 하는데 또 저희 입장에서는 직장이랑 최대한 가까운 데로 있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고.″
침수된 집이 누군가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70대 김성근 씨 부부와 아들, 딸 네 식구는 작년 8월 침수됐던 신림동 반지하로 이사 왔습니다.
[김성근/반지하 거주]
″집도 넓고 뭐 물만 찼을 뿐이지 싹 수리해 놓으니까 새 집같이 괜찮더라고. 그래서 내가 여기 이사 온 거야.″
작년까지 살던 다세대 주택 1층 집은 보증금 8천만 원에 월세 20만 원이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은 월세는 같은데 면적은 2배가 넘습니다.
전세보증금 1억 3천만 원은 LH에서 지원받았습니다.
주거급여와 연금 수입 95만 원으로 한 달 먹고 사는 김 씨 입장에서는 월세 부담이 늘면 생활이 힘듭니다.
[김성근/반지하 거주]
″한 번 이사하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나도 힘도 없는데 그것도 그렇고. 이사 왔으니까 한 4년 살아보고. 그때까지 내가 안 죽고 살아있으면 한 번 또 알아보든지 해야지.″
뇌 질환이 있는 부인이 제대로 걷지 못해 작년처럼 집이 침수될까봐 걱정이 큽니다.
[김성근/반지하 거주]
″착잡하죠. 아이 엄마 저렇게 안 아프면 모르는데 내가 아니면 뭐 먹는 것도 안 되고. 하여튼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 줘야 되니까.″
서울시는 작년 8월 폭우 참사 이후 반지하 주민을 지상으로 이주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고, 한 달에 20만 원씩 2년 동안 주거 바우처를 준다는 대책도 내놨습니다.
하지만 서울 시내 반지하 가구 가운데 지상으로 올라간 건 2,714 가구, 전체의 1%에 그칩니다.
[권대중/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정부가 지원하는 20만 원 정도의 월세가, 과연 그러면 그 월세를 대납할 수 있는 정도가 되겠는가. 실제 시장 가격보다는 턱없이 낮은 가격이기 때문에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못 나간 겁니다.″
반지하를 사들여서 없애겠다는 대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5천 250가구를 사들인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달 27일 기준 125가구, 2%에 그칩니다.
국토교통부 현행 지침상 주인이 여럿인 다세대 주택은 ″반지하를 포함해 건물의 절반 이상을 살 수 있을 때만 매입″이 가능합니다.
재건축을 원활하게 하려는 등의 취지지만 소유관계가 복잡해 매입 자체가 어려운 겁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관악구 참사 난 데도 밑에는 지하지만 위에 지상에 있는 가구들이 그 집을 팔지 안 팔지, 다세대인데 이런 경우는 의견을 맞추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근데 이걸 매입이라는 게 쉽지 않은 방식인데 처음부터 호별이라도 매입하겠다, 이렇게 나왔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서울시는 지난달에야 국토부와 협의해 반지하 주택을 가구별로 사들이기로 했습니다.
◀ 이휘준 ▶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결국 돈이 필요한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잖아요.
정부의 지원이 좀 박해 보입니다.
◀ 이재민 ▶
사실 반지하는 원래 주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방공호로 쓰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 이휘준 ▶
주거 목적이 아닌데 집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살게 된 거군요.
그런데 반지하만큼이나 열악한 곳은 더 있잖아요. 이걸 지옥고라고 하죠.
◀ 이재민 ▶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합쳐서 지옥고라고 부릅니다.
반지하는 열악하긴 하지만 그래도 법적으로는 주택으로 분류돼 규제를 받는데요.
그런데 아예 주택으로 인정이 안 되는 곳에도 사람들이 삽니다.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같은 곳인데요.
이런 열악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 VCR ▶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김형옥/서울 영등포 쪽방 상담소장]
″여기가 이제 창문이 없어요. 불 좀 켤까요?″
화장실도 따로 없어 여름나기는 고역입니다.
[고규영/쪽방 거주]
″공동 화장실에 가야 되고 그리고 씻는 것도 이제 여럿이서 씻어야 되고 한 군데 같이 씻으니까 그런 것도 불편하죠.″
이 방 월세는 21만 원.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연금, 장애수당으로 받는 89만 원이 한 달 수입의 전부라 병원비에 약값 내고 생활비 쓰면 이사는 엄두도 못 냅니다.
통장에 찍힌 18만 원이 전 재산입니다.
[고규영/쪽방 거주]
″겨우 이제 뭐 유지해 나가는 거죠. <이사 가실 생각은 해보신 적이 없으세요?> 아유, 했죠. 많이 했죠. 근데 가진 게 없으니까 움직일 수가 없는 거죠.″
방이 얼마나 좁은지 살펴봤습니다.
누우면 머리를 벽에 찧을 정도입니다.
대각선으로 누워도 발을 다 뻗지 못합니다.
가로 1.9미터, 세로 1.8미터.
방 면적이 3.4제곱미터입니다.
[김형옥/서울 영등포 쪽방 상담소장]
″여기 0.5평형도 있고 2.5평에서 3평 되는 데도 있습니다. 근데 영등포 쪽방 같은 경우는 평균이 1평이 평균 넓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주택법상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은 14제곱미터.
3.4제곱미터면 이 기준의 4분의 1도 안 됩니다.
하지만 쪽방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집이 아니라 일종의 무허가 숙박 시설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는 영등포, 남대문 등 쪽방촌 5곳에 2천4백 명 넘게 살고 전국에는 5천 1백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빈곤 비즈니스의 대상은 보통 저소득층이에요. 이 돈 내고 돈이 많으면 그런 집에 안 살죠. 근데 어쩔 수 없이 사는 분들에게 집을 너무 좁게 한다든가 아니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인데 지하 같은 공간을 세로 한다든가.″
집이 아닌데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바로 고시원입니다.
노래방이나 PC방 같은 다중이용업소 안전 관리 규정의 적용을 받습니다.
사람 한 명 겨우 누울만한 방.
해 질때만 빛이 들어오는 작은 창문.
46살 오세현 씨는 20년 넘게 고시원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사기를 당해 억대의 빚을 진 뒤 공사장 막노동, 음식점 아르바이트 등 온갖 일을 다했는데 한쪽 다리가 괴사해가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처지가 됐습니다.
[오세현/고시원 거주]
″기초생활수급자 분들이 많으시고 왜냐면 주거 지원이라든지 이런 걸 또 받아야 되니까요. 임대 주택도 이제 기다리시는 분도 계시고 또 요즘은 이제 배달 업종 하시는 분 많이 계시고.″
5년 전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창문이 있는 월세 32만 원짜리 방에 살던 사람은 탈출했고 사방이 벽인 28만 원 방에 살던 사람은 숨졌습니다.
4만 원이 생사를 갈랐습니다.
사망자 가운데 4명은 기초생활수급자, 3명은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김바울/고시원 거주 (고시원 화재 참사 대책 촉구 기자회견, 2018년 11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한 곳, 집 같지도 않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세상은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해에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시원은 18년 새 3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늘어 전국 1만 곳을 돌파했습니다.
서울시는 건축 조례를 바꿨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새로 고시원을 짓거나 증축하려면 방 면적을 7제곱미터 이상으로 하고 창문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이동현/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방의 크기와 창문에 대한 기준만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가 없죠. 그래서 예를 들면 부엌을 몇 명이 이용을 한다든지 그 다음에 이제 성별로 층을 어떻게 분류해야 한다든지 세탁장은 어떻게 한다든지 그리고 주요 안전 설비라든지 피난 설비 이런 것들에 대한 종합적인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빗속에 진흙탕이 된 길.
4백여 가구가 사는 비닐하우스촌입니다.
역류한 물이 화장실 바닥에 고였습니다.
작년에는 무릎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박소정/비닐하우스 거주]
″여기서 물을 퍼도 저기가 넘으니까 못하고 이 물을 퍼다가 저 밖에다 버릴 때 어쩌겠어. 다리는 아프고 미쳐버리지. 죽지 못해 살지 참말로.″
친척 보증을 잘못 섰다가 아파트를 잃은 이 70대 여성은 9년째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박소정/비닐하우스 거주]
″견디지 못할 정도로 더워, 여름에는. 더워 못 살아. <겨울에는 또 어때요?> 겨울에는 추워. 벌벌벌 떨어.″
고시원이나 쪽방, 비닐하우스 모두 주택법상 집이 아닙니다.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사는 가구는 2005년 5만 7천여 가구에서 2020년에는 46만 2천여 가구까지 8배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반지하는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반지하 가구가 줄어든 것보다 고시원이나 쪽방·비닐하우스에 사는 가구가 더 많이 늘었습니다.
[진미윤/LH 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단장]
″결국은 주택에 못 가기 때문에 주택 이외로 오는 거죠. 주택은 규제 영역이죠. 그리고 사실은 그나마 적정 주거기준이라는 것을 보호받고 있는 영역인데 주택 이외의 거처라는 건 사실은 이게 잔여 부분이잖아요. 결국은 주택에서 내가 경쟁이 안되는 거예요.″
◀ 이휘준 ▶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줄 알았는데 저런 열악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늘어난 겁니까?
◀ 이재민 ▶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1인 가구가 크게 늘어났는데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전체 기초생활수급 가구의 70%가 1인 가구입니다.
우리 사회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의 주거복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휘준 ▶
반지하 32만 가구에 주택도 아닌 곳에 사는 46만 가구. 정부가 복지 정책을 좀 더 많이 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이재민 ▶
그렇습니다. 결국 다른 많은 선진국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갖춘 공공임대주택이 더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관련 예산이 대폭 줄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끼리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 VCR ▶
전세 사기로 쑥대밭이 된 인천 미추홀구.
이 아파트는 한 동 60채 전체가 통째로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전국에 3천명이 가까이 됩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정부 대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경매로 넘어간 주택을 피해자가 희망할 경우 우선 매수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하지만 이미 대출받아 마련한 보증금도 다 못 받을 처지인데, 또 빚을 내기는 피해자들 입장에서 큰 부담입니다.
[조세환/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피해자]
″우선 매수권을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저는 대출을 받아서 여기 이 집을 사야 되는 거예요. 어쨌든 대출이에요. 낙찰을 받는다고 그래도 전혀 도움은 안 돼요.″
아니면 LH 등 공공기관이 매입한 피해 주택에 공공 임대로 최장 20년간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재원입니다.
정부는 기존 예산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입니다.
[원희룡/국토교통부 장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 합동브리핑, 4월 27일)]
″공공기관에서 매입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함으로써 이미 있는 매입임대 제도에 대상 물건으로 포함을 시켜서 주거 안정의 혜택을 제공하겠습니다.″
그런데 올해 정부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17조 5천억 원.
지난해보다 22%, 5조 원 가까이 삭감했습니다.
이 가운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매입 임대 예산이 가장 많이 줄었습니다.
지난해보다 3조 원 넘게 깎였습니다.
반지하나 고시원에 사는 주거 취약 계층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확보하는 데에도 예산이 빠듯한데 전세 사기 피해자까지 대상자가 더 늘어난 겁니다.
[안상미/전세 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
″추가 예산이 있어야지 지금 더 어려운 사람의 돈을 뺏어 오는 형국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것도 지금 매입임대가 추가 예산 없이 하는 거는 유명무실하다.″
정부가 줄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더 있습니다.
수도권에 최대 1억 3천만 원까지 전세보증금을 지원해주는 전세 임대도 3천5백억 원, 8% 가까이 깎았습니다.
이미 사업 진행에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5월, LH는 갑자기 전세 임대 사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전세 사기 사건이 발생해 3~4월에 신청자가 몰려서 그런 것 같다″며 ″조만간 예산 소진이 예상됐다″고 했습니다.
[이동현/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굉장히 주거 빈곤층에게 동아줄 같은 그런 제도인 건데, 이것을 중단시켰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동아줄을 끊은 것이고 주거 사다리를 걷어찬 것과 정말 다르지 않은 거죠.″
LH는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9일부터 다시 전세 임대를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상은 반지하나 고시원에 사는 주거 취약 계층 등으로만 한정했습니다.
기존 수혜 대상이었던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가족, 신혼부부, 대학생은 받을 수 없습니다.
물량도 서울 353가구, 전국 1천 5백가구로 제한됐습니다.
LH가 각 지자체에 보낸 공문에는 ″기금 소진 시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면서 ″초과 물량은 접수받지 않는다″고 빨간 글씨로 유의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최은영/한국도시연구소장]
″취약 계층에게 돌아갈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을과 을의 싸움′으로 지금 공공임대주택에 관련해서 뭐라고 얘기를 하든 공급 총량이 지금 줄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에 비해서 취약 계층들이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건 현장에서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국토교통부는 예산이 소진된 건 아니고, 신청 ′병목 현상′이 풀리면 대상을 청년이나 신혼부부로 확대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전세 사기 피해자들과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매입 임대 예산을 작년에 다 집행하지 못했다며 올해도 예산이 충분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전체 공공임대주택도 ′축소′가 아니라 ′탄력적 공급′이라면서, 예산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기금 운용을 통해 확충하겠다고 했습니다.
공공임대 아파트 대기자는 지난해 6월 기준 7만여 명.
대기 순번을 받고 길게는 10년 넘게 기다립니다.
공급 확대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이원호/주거권네트워크 활동가]
″저는 이게 일종의 불행 경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더 힘들다′, ′내가 더 열악하다′, ′내가 이 집에서 죽게 생겼다′라는 것들을 서로 증명해 내면서 매입임대주택을 들어가야 되는 방식이 되는 거죠.″
◀ 이휘준 ▶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들은 늘어났는데 정작 정부는 예산을 줄이고 있는 거네요.
◀ 이재민 ▶
그렇습니다. 조금 뒤에 보여드리겠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공공임대주택은 좋은 게 아니라는 이런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 이휘준 ▶
그럼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대책은 뭡니까?
◀ 이재민 ▶
공공분양입니다. 임대주택 대신에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늘려주겠다는 겁니다.
윤석열 정부가 뉴홈이란 이름으로 임기 내 50만 호의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 이휘준 ▶
임대 대신 분양이군요. 그런데 아무리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공주택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 이재민 ▶
맞습니다. 당장 가난과 지옥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공공분양 정책이 갖고 있는 부작용인데요.
공공임대가 ′불행 경쟁′이라면 공공 분양은 ′로또 대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VCR ▶
서울 동작구 옛 수도방위사령부 부지입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고 지하철 9호선 노들역과 노량진역도 가깝습니다.
전용 59제곱미터 255가구가 공공분양으로 공급되는데, 지난달 사전 청약에 7만 2천 명이 몰렸습니다.
[공인중개사]
″지하철 1호선하고 9호선 ′더블 역세권′이고, 한강 조망이 되고. 주변 공원하고 한강을 볼 수 있어서 그게 최고죠.″
평균 경쟁률 283대 1.
79가구 물량의 일반공급에는 5만 명 넘게 신청해 경쟁률 645대 1로 역대 공공분양 중 가장 높았습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210대 1, 생애최초는 181대 1로 관심이 뜨거웠습니다.
추정 분양가 8억 7천만 원.
주변 아파트 시세보다 4억 원 이상 쌉니다.
[공인중개사]
″급매라고 생각되는 게 13억 정도고요. 상태 좋으면 14억 정도, 이 정도도 거래는 가능하죠. <아파트 가격이 오를 수 있겠다?> 그렇죠. 4억 이상 벌 수 있죠.″
당첨만 되면 4억 원 이상 번다는 ′로또 분양′.
그런데 청약 조건을 보면 이른바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금수저′ 무주택자들을 위한 분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반 공급은 월 평균 소득이 3인 가구 기준 650만 원 이하여야 합니다.
9억 원 정도 되는 집을 사려면 번 돈을 모두 저축해도 11년 넘게 모아야 하는 셈입니다.
최대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다고 해도 3억 원 이상은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수방사 부지′ 청약 신청자]
″말이 안 되는 게 어떻게 그거를 사냐고. 그냥 ′풀 대출′, ′영끌′해서 또 전세 주고 그냥 ′갭 투자′하라 그거 아니에요.
이게 가능한가 싶은 당첨 전략까지 나옵니다.
[☎′수방사′ 공공분양 청약 신청자]
″′필승 전략′이라고 하나. 같이 살고 혼인 신고 안 해서 몇 년 살면서 돈 모으다가, 애 태어날 때 혼인 신고를 해서 신혼 3년 미만에다가 유자녀 하나에다가 점수, 그렇게 많이 하더라고요.″
수억 원 시세 차익을 운에 맡기는 아파트에 과연 ′공공′이라는 이름이 어울릴까요.
[조정흔/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감정평가사, 지난 6일)]
″이게 지금 정말 집이 필요한 분들 소득에 맞는, 그런 수준에 귀속할 수 있는 그런 주택 공급 방법인가. 이런 의문을 다시 한번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공임대보다는 분양으로 집을 사게 해 주겠다는 정부 기조는 확고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과제점검회의, 2022년 12월 15일)]
″공공 임대 주택을 굉장히 선으로 알고 있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만 공공 임대 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을 하다 보면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상당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에 또 납세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 되고 전반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 요인으로 경기 위축 요인으로 작용이 될 수가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재작년 전 정부 공공 임대 주택 제도를 이렇게까지 표현했습니다.
[원희룡/당시 제주지사 (원코리아 혁신포럼 출범식, 2021년 6월 22일)]
″내 집 마련을 탄압하고 모든 국민들을 월세 임대 주택에 살아라, ′월세 소작농′을 강요하는 잘못된 주택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됩니다.″
실제로 공공임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임대 주택 제도에 대해 10명 중 8명꼴로 만족했습니다.
[진미윤/LH 토지주택연구원 정책지원단장]
″청년들의 입주율이 높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살면서, 그렇지 않아요. 다들 ′공공임대주택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하면 ′내 인생의 디딤돌이었습니다′라는 응답이 거의 80%.″
영화 ′기생충′에서 가족들이 피자 상자를 접던 반지하.
폭우가 내리자 집이 물에 잠깁니다.
물을 따라 가족이 뛰어내려 가는 계단은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상징합니다.
헌법 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사람이 살 만한 주거 환경은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헌법으로 보장하는 기본적인 인권입니다.
올해 공공임대 관련 예산은 작년보다 5조 원 넘게 깎인 반면, 공공 분양 예산은 1조 원 넘게 늘었습니다.
서울 강남권과 동작구 대방동 군 부지 등 서울 도심권 분양도 줄줄이 잡혀 있어 흥행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장 월세 20만~30만 원을 걱정하는 주거 취약 계층에게는 먼 나라 얘기입니다.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지하 주택에 사시는 분이 아무리 공공분양주택 예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그런 목돈이 없으신 분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임대주택 예산은 분양주택 예산과 같이 가야 되는 거지 분양주택이 늘었다고 임대주택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이것은 국가의 정책적 목표가 잘못 설정돼 있는 거죠.″
[권대중/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빈곤층이 중산층이나 또는 이렇게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는 방법은 정부의 대책 아니면 정부의 주거 복지 차원이 아니면 올라올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져서 양극화가 벌어지거든요.″
◀ 이휘준 ▶
유럽에서는 공공임대 주택을 ′사회주택′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자기 집에서조차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 현실 앞에서, 국가의 책임을 다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