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법원의 한 판사가 50대 노숙인 남성에게 유죄를 선고한 뒤 선물을 건넨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박주영 판사는 지난 20일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뒤, 위로와 함께 책과 현금 10만 원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판결에 따르면 노숙인인 A씨는 지난 9월 부산의 한 편의점 앞에서 동료 노숙인과 술을 마시며 말다툼하다 손수레에 보관하던 흉기를 꺼내 위협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A씨는 흉기를 꺼낸 뒤 스스로 칼을 밟아 부러뜨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민의 신고로 체포됐고 주거가 일정치 않은 탓에 구속됐습니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박주영 판사는 A씨에게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 ″주거를 일정하게 해 사회보장 제도 속에서 살고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했습니다.
또 중국 작가인 위화의 ′인생′이라는 책과 현금 10만 원을 줬는데, 마침 한파가 극심했던 상황이어서 하루이틀 정도는 찜질방에서 자라는 뜻이었다고 박 판사는 말했습니다.
이 같은 사연은 법정에서 당시 상황을 목격한 시민들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박 판사는 지난 2019년에도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혼자만 살아나 자살방조 미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뒤 ″지금보다 좋은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는 편지와 함께 차비 20만 원을 건넨 바 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죽으려다 살아난 어머니를 향해 선고하다 말문을 잇지 못했던 일도 화제가 됐습니다.
[박주영 부장판사 (2020년 5월, 실제 재판 녹취)]
″세상이 힘들면 힘들수록 이런 범행은 급격히 증가합니다. 반복되는 이런 범행을 볼 때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 ′계획에 없던 가족여행′이 두렵습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말이 ′자자, 좋은 곳으로 같이 가자′가 되는 세상은 얼마나 비통합니까. 우리가 안전망입니다.″
부산일보에 따르면 박 판사는 ″법복을 입는 만큼 엄격하게 형사재판을 진행하는데 따뜻한 법관으로만 비치는 건 걱정스럽다″며 ″형벌과 함께 사회적 관심이 들어간다면 제2의 범죄에 휩쓸리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