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엄기영,백지연

일본군들 경기도 화성군 고주리 김세열 일가 학살 현장[김은혜]

입력 | 1996-03-01   수정 | 199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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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리 학살현장]

● 앵커: 다음 3.1절 관련 기획보도 전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선열들의 3.1운동은 우리의 국기가 일제 총검보다도 강하다고 하는 민족의 자존을 세계에 알린 대사건이었습니다.

죽음으로 맞선 만세운동 제암리 학살만행에 이어 서 일본군들은 이웃 경기도 화성군 고주리에까지 몰려와서 그 곳에서도 3.1운동 에 앞장섰던 일가족 6명을 무차별 살해하고 맙니다.

고주리 현장을 김은혜 기자가 한번 찾아가 봤습니다.

● 기자: 경기도 화성군 팔탄면 고주리 옆 한 공동묘지 묘비도 없고 봉분도 얹어있지 않은 수풀 무성한 둔덕이 세 곳 있습니다.

이곳이 1919년 3.1 운동을 하던 일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하게 학살당한 뒤 묻힌 곳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시 치마폭 속에 숨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가족 중 한사람의 증손자 김연묵씨만 이 황량한 묘지라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후손입니다.

●김연묵씨(39살-당시 살아남은 김원기씨의 증손자): 독립운동을 하다 이렇게 돌아가셨는데 묘비도 없이 공동묘지에 이렇게 비참하게 누우시니까 후손으로서 정말 죄송합니다.

● 기자: 화성군에 만세운동이 한창 불붙었던 1919년 4월15일 일제는 제암리에서 무차별 살상을 저지른 뒤 아리따노보 보병 준위 등 일본군인 12명을 이웃마을 고주리로 투입했습니다.

학살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천도교 신자로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있었던 김세열씨 부자와 형제 등 일가족이었습니다.

일가족 6명은 바로 저 집에서 부터 이곳 산중턱에까지 끌려나와 일본군들에게 처참하게 몰살당했습니다.

●김흥록씨(87살-당시 주민): 누가 주동해 불렀느냐 누가 어떻게 해서 만세를 불렀는지 안 불렀다고 그러니까 저 놈들이 그때 밤에 와서 총질을 했거든요

● 기자: 일본군들은 이들의 온몸을 묶고 칼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에 짚을 던져 불까지 질렀습니다.

그러나 피맺힌 이 상처는 아직 제대로 독립 의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채 버려져 있습니다.

●지승환 사무국장(화성문화원): 고주리 분들의 그런 독립운동이 화성군에서 굉장히 중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역사적인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 굉장히 안타깝습니다.

● 기자: 몇 달 전 이들의 묘지 앞에는 이름 모를 높다란 봉분이 솟아 눈으로 확인하기가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77년 전 소리 높여 이 땅의 독립 을 외쳤던 선조들의 묘지는 이제 그 흔적까지 사라질 위험 앞에 처했습니다.

MBC뉴스, 김은혜입니다.

(김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