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앵커: 엄기영,김은주
1968년,무장 공비 침투사건,공비 완전 소탕에 7개월 소요[최재석]
입력 | 1996-09-27 수정 | 199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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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삼척 완전 소탕 7개월]
● 앵커: 이번 무장 공비 소탕 작전에서 우리 군은 지난 68년 울진, 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사건 이후에도 맥없이 풀어진 우리의 안보 자세를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기자: 1968년 12월 1일과 2일 이틀에 걸쳐 130명이나 되는 무장 공비가 울진, 삼척으로 침투한 사건은 침투라기보다는 상륙작전에 가까웠습니다.
대규모의 무장 공비가 침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허술한 해안 경비였습니다.
초소와 초소사이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그나마 배치되었던 초병마저 자리를 비웠습니다.
● 인터뷰: 가보니까, 초소에 보초서고 있더라니..하나도 안서고 있더라.
그래서 그 길을 무사히 통과 했다.
● 기자: 공비들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노동당 입당 원서를 받을 정도로 대담하게 행동했지만 소탕에는 이듬해 5월까지 7개월이나 걸렸습니다.
무장 공비들은 고도의 게릴라전 훈련을 받은 반면, 침투 예상 지역에 대한 국군의 사전 준비 는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인터뷰: 당시의 출동 군인들이 지형도 잘 모르고 또 출동도 지연 되었고 해서 이미 공비는 내륙 깊숙이 침투가 되 어서..."
● 기자: 울진, 삼척 사건 이후 해안 경비 부대의 편대가 개편되고 소부대 전술을 개발하는 등의 대책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무장 공비 침투가 뜸해지면서 우리의 경계가 허술해지는 동안 북한은 집요하게 동해안 침투를 노려왔습니다.
(최재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