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조영익

'사장님' 대신 'AI'…21세기의 전태일들

입력 | 2020-11-12 20:11   수정 | 2020-11-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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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전태일이 분신했던 50년 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던 사람들은 기업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AI, 인공지능이 기업주들을 대신에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새로운 노동환경은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얽어매고 있습니다.

조영익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 이광원씨.

이 씨의 휴대폰 앱으로 인공지능, AI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커피숍에서 빵과 음료를 받아 광진구 자양동 고객에게 배달하라는 것.

배달거리는 6.8킬로미터.

AI는 단 14분의 시간을 줬습니다.

하지만 이씨가 내비게이션으로 계산한 시간은 27분.

AI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선 13분을 단축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씨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이고 차량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내달렸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또 시간이 걸렸고, 결국 ′전달 10분 초과′라는 AI의 경고성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계단이나 지형 등을 고려하지 않는 AI의 지시를 따르다가 아찔했던 순간은 적지 않았습니다.

[이광원/배달 노동자]
″아파트 단지가 있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AI가) 그냥 직선거리로 시간을 배정하다 보니까 차이가 많이 나는거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운전도 좀 험하게 하게 되고…″

배달의 민족 측은 차량용 내비게이션 예상 시간을 오토바이에 적용할 수는 없다며 늦거나 배차를 거절해도 불이익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런지 몇 차례 AI의 지시를 거부해 봤습니다.

그러자 이 씨의 휴대폰에서 일감, 즉 배달 주문들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 씨에게 AI가 일감 배당을 중단한 것입니다.

″어휴, 콜이 많은 시간인데…″

배달 지시를 자주 거부해 AI에게 찍히면 이렇게 다음 주문을 받기가 어려워집니다.

웬만하면 AI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광원/배달 노동자]
″거절을 많이 하면 배차 제한이나 배차 지연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락을 누를 수밖에 없는…″

배달시간을 얼마나 지켰는지에 따라 배달원 평점을 매겨, 평점이 낮은 배달원은 퇴출시켰던 배달업체도 있습니다.

AI가 정한 규칙에 의해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

배달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AI의 알고리즘에 대해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MBC뉴스 조영익입니다.

(영상취재:남현택 / 영상편집:정소민 / 촬영협조: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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