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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현식 작가는 같은 길을 걷는 대다수가 그러하듯 유화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할 게 없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잘해 버렸고, 테크닉도 더 뛰어나고….″
작가는 평면을 놓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어떻게 낼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찾은 레진(resin) 작업은 30년 가까운 화업의 상징이 됐다.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에서 만난 작가는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물음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8년 만의 국내 개인전 출품작 46점을 감상하다 보면 제작 방법이 자연히 궁금해진다.
투명하고 매끈하고 두꺼운 표면 아래 수많은 색선이 수놓아진 작품을 회화로 불러야 할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번 출품작들은 레진을 이용한 ′머리카락′ 작업으로만 그를 기억했던 이들에게도 다소 낯선 추상 작업이다.
작업의 첫 단계는 액체에 가까운 투명한 에폭시 레진을 먼저 판에 바르는 일이다.
그다음에 서서히 건조되는 레진에 선을 그어 홈을 내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한다.
레진 표면을 닦고 나면 홈이 파인 부분에 들어간 물감만 남게 된다.
일종의 상감 기법으로 색선을 만드는 셈이다.
다시 레진을 한 층 바르고 위 과정을 7~10번 반복하다 보면, 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색선이 겹쳐진다.
울산의 작업실에서 한 작품에만 1개월씩 매달릴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
작가는 ″투명한 캔버스 7~10개를 겹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면서 ″최소 5천 번, 큰 작품은 만 번의 선을 그어야 해서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덕분에 매끈한 평면 작품임에도 깊이 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색선과 색선 사이를 집요하게 노려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득할 지경이다.
색선 사이로 빛이 들고나기를 반복하면서 작품의 색깔도 시시각각 변한다.
작가는 ″가장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색″이라면서 ″추상으로 완전히 넘어오면서 색을 선택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배석한 홍가이 문화예술비평가는 ″김현식 작품에서는 진짜 빛이 나온다″라면서 ″빛 알갱이들이 작품으로 들어갔다가 색선에 닿아 반사되고 하는 모습을 두고 광자(光子)들의 율동이라고 말해도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는 영국 동화에서 이름을 빌려온 ′퍼시 더 컬러′ 연작 등 근작들도 두루 나온다.
조금씩 형태와 색상의 변주를 시도해온 변천사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