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윤수한
수오지심(羞惡之心).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검찰은 과연 부끄러움의 무게를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지.
검찰의 감찰권과 자정 능력을 둘러싸고 다시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과거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 검사들이 위증을 강요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해당 의혹을 검찰 스스로 규명해낼 수 있는지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모양샙니다.
■ ″검찰총장이 편법 저질러″
″′편법′과 ′무리′가 있었던 게 확인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 20.06.18 국회 법사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작심한 듯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날을 세웠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부에서 조사중이던 한 전 총리 수사팀의 ′위증 교사′ 의혹을 서울중앙지검 인권부로 다시 넘긴 것은 무리한 지시였다는 겁니다.
심지어 추 장관은 윤 총장이 ″감찰 사안을 인권문제로 변질시켰다″며 사건 이첩 과정에서 ′편법′까지 확인됐다고 윤 총장을 강하게 꼬집었습니다.
더 나아가 인권부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다시 감찰부에 조사를 맡길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법사위 위원들은 불에 기름을 끼얹듯 자극적인 말로 추 장관을 건드렸고,
″총장과 감찰부장이 싸우는 모습이 봉숭아 학당같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왜 검찰 개혁 안됐나. 검사들과 일하다 보니 장관도 검사들에게 순치되는 것 아닌가.″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추 장관은 ″모욕적″이라며 더욱 강하게 검찰의 감찰 기능을 돌려놓겠다고 맞받았습니다.
■ ″사건 배당은 검찰총장의 고유 권한″
반면 대검찰청은 추 장관의 문제제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사건을 인권감독관실에 배당한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전 총리 수사와 관련된 의혹들은 이미 징계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원칙적으로 감찰부서가 맡을 게 아니고,
또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이 위증을 강요했다는 게 핵심인 만큼 ′인권 문제′로 분류해 인권부가 조사하는게 합당하다는 설명입니다.
검찰 내부에선 사건 배당이 총장의 고유 권한인 만큼 대검 감찰부장이 나서 사건을 맡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오히려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결국 인권부든 감찰부든 누가 조사를 하든간에 제대로만 하면 되는 건데, 마치 윤 총장이 감찰을 무마하는 것인 양 편견을 갖고 보고 있다는 겁니다.
■ ′검·언유착′ 의혹 처리과정과 닮은 꼴
하지만 이런 지적이 나오는 데에 윤 총장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서 윤 총장은 채널A와 현직 검사장 간의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대검 감찰부의 감찰 시도를 중단시키고 인권부에 조사를 지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동수 감찰부장은 ″감찰에 착수하겠다″며 강한 감찰 의지를 드러냈지만 윤 총장은 인권부의 진상조사를 보고 감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끝내 만류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위증 강요′ 의혹 사건이 감찰부장과 윤 총장의 두번째 대립인건데 두 사건 모두 의혹의 대상이 윤 총장 측근 검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한 감찰부장은 판사 출신의 검찰 외부인사라 인정사정 없이 조사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다보니,
감찰부장을 건너 뛰는 건 결국 총장이 제식구를 감싸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 지휘권 vs 감찰권…예견된 갈등
감찰권을 둘러싼 갈등은 어찌보면 예견된 바이기도 합니다.
대검 훈령엔 감찰부장이 독자적으로 감찰을 개시할 수 있는 ′직무 독립′ 권한이 명시돼 있지만 검찰청법엔 검찰총장이 검찰 사무를 총괄해 지휘감독한다고 써있습니다.
감찰을 검찰 사무중 하나로 본다면 상위법인 검찰청법에 따라 총장이 감찰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훈령과 법 사이의 모순으로 지휘권과 감찰권은 언제든 충돌할 소지가 있습니다.
감찰부의 독립성을 높이겠다며 수장을 외부 인사로만 앉혀놨을 뿐,
실질적인 감찰권이 감찰부장에게 주어지도록 관계 당사자들의 권한이나 직무 범위 조정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탓입니다.
따라서 검찰의 감찰권 독립을 위해선 총장의 지휘권 아래 대검 감찰부장은 예외로 두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추미애 vs 윤석열로 변질되는 진실 규명
추미애 장관이 직접 개입하면서 이젠 감찰부장과 검찰총장의 대립을 넘어, 장관과 총장의 충돌로 싸움이 커졌습니다.
법무부는 대검 감찰부에 인권감독관실의 조사 경과를 보고받으라고 했고, 일부 참고인에 대해선 감찰부가 직접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번 사안은 감찰부 소관이 아니라는 윤 총장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른 겁니다.
한쪽에선 이를 두고 ′법무부의 또다른 검찰개혁이다′, ′감찰권 회복이다′ 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함께 의혹의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검찰총장과 대검 감찰부장, 그리고 법무장관이 뒤섞여 다투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측근 감싸기′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번번히 감찰부를 ′패싱′하는 상황을 연출한 윤석열 총장의 행보는 적절해 보이진 않습니다.
또 공식적인 이의제기 절차 이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여론전에 나섰던 한동수 감찰부장과,
감찰권의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법사위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감찰에 영향을 줄만한 예민한 발언들을 쏟아낸 추미애 장관도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힘겨루기가 아니라 검찰 조직의 자정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건데,
′위증 교사′ 의혹의 진실보다 이번 싸움에서 누가 이길 지에 더 많은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