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이정은

[World Now] 코로나 대유행 시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입력 | 2020-09-03 11:58   수정 | 2020-09-03 13:28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노인 코로나19 환자 자연사하게 둬야″‥ 호주 발칵</strong>

영국에서 들려온 호주 전 총리의 발언에 호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폴리시 익스체인지’ 초청 연설에서 토니 애벗 전 총리가 ″코로나19 고령 환자들은 자연사하도록 둬야 한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인데요.

애벗 전 총리는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하긴 했습니다.

일단 돈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호주 정부가 노인 1명의 생존기간을 1년 늘리는데 20만 호주 달러, 우리돈 약 1억 7천만원이 소요된다는 겁니다.

그는 또 코로나19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보건 당국의 목표가 ′병원이 코로나19 환자들로 넘치는 것을 막자′는게 아니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생명을 보전하자′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죽음을 감당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위한 봉쇄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완치율과 비례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과연 나이를 두고 생명의 경중을 따질 수 있는지, 또 생존률이 높아져야만 계속 치료할 가치가 있는지..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전에 없던 논란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인공호흡기 양보하자″ 포기 서약?</strong>

일본에서는 이른바 ″집중치료 양보카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i>″코로나19로 인공호흡기나 에크모(체외산소공급장치)를 이용한 치료를 받을때 기기가 부족해지면 저는 젊은이에게 양보하겠습니다″</i>

이 카드에는 허리가 굽은 노인이 선물을 주는 듯한 그림이 있는데, 의료 기기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기대수명이 더 긴 젊은 환자에게 집중 치료를 양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카드를 고안한 사람은 64세의 순환기내과 전문의, 이시쿠라 후미노부.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치료할지 여부를 의사가 판단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노인 스스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카드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평소 자리를 양보해주던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고급 의료기기를 양보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의 28.4%, 전세계에서 가장 나이 든 나라입니다. (일본 총무성, 2019년 9월 발표치)

그러나 아무리 인구의 1/3 가량이 노인이라 하더라도 ′치료 포기 각서′와 다를 바 없는 집중치료양보카드는 논란이 됐습니다.

′가치없는 생명은 잘라버린다는 풍조가 확산할까 우려된다′, ′카드의 존재 자체가 노인들에게 압박감을 줄 것이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집단면역 실험… 희생양은 노인?</strong>

봉쇄 대신 집단면역을 선택한 스웨덴을 놓고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항체를 가진 사람이 60%가 넘어야 하는데 봉쇄로 시간을 끄느니 걸릴 사람은 그냥 빨리 걸리라는게 스웨덴의 집단면역 실험입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스웨덴에서 151년만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이 실험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최대 희생양은 바로 노인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가 집계한 스웨덴의 코로나19 환자는 8만 5천여명, 누적 사망자는 5천 8백여명입니다.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5월 사이 스웨덴의 코로나19 사망자 90%가 70세 이상의 노인이었습니다.

특히 사망자의 49%는 요양시설 거주자였습니다.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스웨덴에서는 외부인의 요양 시설 방문이 가능했고, 이로 인해 감염이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발생해도 스웨덴 당국은 의료 시스템 과부하를 우려해 요양시설의 노인 환자들을 제한적으로 병원에 이송했고, 결국 많은 사망자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내부 증언도 터져나왔습니다.

노인 요양원에서 일했던 간호사 라티파 뢰프벤베르크는 요양원 측이 환자 치료에 소극적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노인들도 병원에 보내선 안 된다고 했어요. 그들이 죽어가는 걸 보는게 힘들었어요.″

이 간호사는 수도 스톡홀름의 한 대형병원 코로나19 병동으로 직장을 옮겼는데, 이후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병동에 나이든 사람이 많지 않아요. 70년대, 80년대, 90년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많죠. 노인들을 치료에서 멀리하고 있는 증거에요″

이런 현실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니었습니다.
집단 면역을 주장하던 안데르스 텡넬 공공보건청장의 이메일이 최근 공개됐는데, 집단면역을 위해 노인들의 피해를 감수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게 드러났습니다.

학교를 폐쇄하면 노령층의 코로나19 확산이 10%는 줄어들 것이란 지적에 텡넬 청장은 오히려 학교 개방을 주장하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10%라면 해볼만 하다.″
″집단면역을 빨리 얻으려면 학교를 개방하는게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전염병 대유행의 시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strong>

지난 3월 스페인의 요양원에선 코로나19에 걸려 숨진 노인들의 시신이 방치된 채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지난 5월 뉴욕의 한 노인요양원에서는 전체 705명 중 98명이 코로나19로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비극 속에 미국 SNS에선 한 때 코로나19를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로 부르는게 유행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56세에서 74세 사이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나이 든 사람들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가 젊은층에겐 무증상이거나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반면, 노인에겐 치명적 질환으로 드러나면서 만들어진 씁쓸한 유행어인거죠.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한국 최근 중증환자 급증… 병상 부족 우려</strong>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위·중증환자수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9명에 불과했던 위·중증환자는 3일 현재 154명으로 17일 동안 17배 넘게 급증했고, 대부분 노인이나 기저질환자입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돼 의료진과 병상, 장비가 부족해진다면 누구에 대한 치료를 우선으로 할지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올지 모릅니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삶이 더 팍팍해진다면 최근 유럽의 극우 보수집회에서처럼 ″아이들을 숨쉬게 하자″며 미래 세대의 삶을 내세워 봉쇄 같은 방역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지고 누가 더 치료에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상상하기도 두려운 판단의 시간이 오지 않게 하려면 엄격한 거리두기를 함께 견디는 것 외엔 답이 없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