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PD수첩팀

[PD수첩] 결사 항전 우크라이나, 푸틴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입력 | 2022-04-19 22:44   수정 | 2022-04-19 22:44
- <부차 마을>에서 드러난 러시아 군대의 민낯. ‘민간인 집단 학살’의 증거에 계속된 러시아의 거짓말
-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잇는 마리우폴,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받는 그곳에서 탈출한 생존자가 전하는 진실

19일 밤 PD수첩 <전쟁의 진실 인사이드 우크라이나>에서는 분쟁지역 전문 김영미 PD와 함께 러시아 침공과 우크라이나에서 이어지고 있는 50여 일 간의 전쟁의 참상을 취재한다. ‘특별 군사 작전’을 선포한 푸틴은 ‘형제의 나라’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의 말과 달리 도시가 파괴되고 우크라이나 국민 천만 명이 국내외로 피란 중이다. 전쟁을 통해 푸틴이 얻고 싶은 건 무엇일까?
인구 3백만의 대도시 키이우 중심으로 가면 거리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뒤덮여 있다. 이곳의 한 대형 쇼핑센터는 지난 3월 20일 밤 러시아의 고정밀 미사일을 맞고 잿더미가 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그곳이 우크라이나군의 무기 보관 창고였기 때문에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8명이 사망하고 약 스무 명이 매몰된 현장. 우크라이나의 한 군종 사제는 이곳에 러시아가 주장한 군사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km 떨어진 부차 마을. 러시아가 약 한 달 동안 점령한 곳. 이곳에서 만난 14살의 어린 소년, 유리에게 당시의 상황을 들어봤다. 지난 3월 17일 시청에서 나눠주는 구호품을 받기 위해 자전거를 탄 유리와 아버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선 러시아 군인들에게 아버지는 구호품을 가지러 가는 길이고 우리는 민간인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그들에게 총을 쐈다. 유리는 총알이 빗나가 살 수 있었지만, 심장의 두 발의 총알을 맞은 아버지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유리는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 힘들어 약을 먹으며 견뎠다고 했다.

지난 3월 30일 러시아군이 퇴각한 직후 부차 마을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은 410여 구에 달했다. 저항하지 못하게 손을 뒤로 묶은 채 뒤에서 총으로 머리를 쏜 시신도 발견됐다. 러시아의 전쟁범죄가 의심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현장을 찾아 말했다. “이것은 전쟁범죄이며 세계가 인정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노사이드입니다” 바실리 네벤쟈 주 UN 러시아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러시아군은 민간인과 민간시설물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며 ‘국제인도법’을 준수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동쪽. 아조프해에 있는 항구도시 마리우폴, 이곳은 철광석과 곡물 등을 수출하는 산업의 중심지이다. 지난 2월 28일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포위하고 시설 구분 없이 무자비한 폭격을 시작했다. 폭격당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산모와 태아가 함께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도시의 90퍼센트가 사라지고 전기와 통신이 끊기는 등 이곳은 러시아군에게 철저히 봉쇄되었다. PD수첩은 이곳을 탈출한 시민과 연락이 닿았다. 당시 마리우폴의 주민이었던 에바리사 씨. 그는 도시의 주민들이 물과 식량을 공급받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총에 맞거나 굶고 추위에 죽어갔다는 것. 또 다른 탈출 주민 야로슬로브 씨는 지난 3월 16일 마당에 아이가 있다고 표시한 극장의 폭격 사실을 알렸다. 극장으로 대피했던 민간인은 1,300여 명. 그중 수백 명의 주민이 사망했을 거라고 추정됐다. 극장 안에는 대부분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 있었다. 민간인 시설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던 러시아 정부의 말과 완전히 다른 사실이었다. 마리우폴 생존자들은 인터뷰 동안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러시아의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진실이 닿았으면 하는 이유에서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이후 마리우폴에서 최소 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봉쇄된 도시 안에는 12만 명의 주민이 아직 남아있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의 함락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PD수첩은 러시아 군이 도시를 초토화하면서까지 이곳을 공격한 이유를 알아봤다. 우크라이나 동쪽 지방 일명 ‘돈바스’라고 부르는 지역. 친 러시아 성향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 이곳에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최근 8년 동안 분쟁이 계속됐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월 21일 푸틴은 두 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하며 사흘 뒤 ‘특별 군사작전’이란 이름으로 군대를 파병,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장악한다면 러시아는 2014년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부터 돈바스를 잇는 육로와 함께 흑해 연안의 약 80퍼센트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푸틴이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다시 두려움의 대상인 ‘슈퍼파워’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쟁 이후 푸틴의 러시아 지지율은 83퍼센트로 상승했다. 러시아의 평범한 가정도 푸틴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엿보였다.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아는 러시아인은 많지 않았다. 푸틴 정부는 전쟁의 진실은 감추고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돕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과 교수는 러시아에서 진심으로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경고했다.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 사회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다시 제2의 푸틴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키이우에 살고 있는 블라다 씨. 그는 우크라이나 군인을 위해 부족한 방탄조끼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자원봉사로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전쟁으로 폭격이 빗발치던 어느 날 뱃속의 아이를 잃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바다에서 서핑을 하는 꿈을 꿨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전쟁이 끝나는 것. 평화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은 건물 앞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화염병을 만들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전차를 포함한 2백여 대의 장갑차와 포병부대 등 차량의 이동 행렬이 포착됐다. 돈바스 지역으로 집중되는 러시아 군의 모습이었다. 유럽연합과 나토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미국이 최첨단 무기 지원을 대폭 늘린 것.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될 돈바스 전투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전면전이 예고된 도시를 지키는 우크라이나 국민은 “폭격 없는 하늘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평화를 되찾기 위해 무기를 놓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푸틴이 원하는 대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일부 점령한 채 전쟁이 끝난다면 우리처럼 이곳은 분단국가가 된다. 우리와 같은 비극이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나라와 국제사회 모두 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