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승용

의사가 돕는 자살은 존엄할까

입력 | 2022-07-24 08:00   수정 | 2022-07-24 08:55
국회가 정상화되기를 기다렸던 법안이 많지만 그 중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에 대한 찬반이 뜨겁습니다. 안규백 의원(더불어민주당 동대문갑)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안 의원 표현에 의하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낼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자″</strong>

조력존엄사는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라고도 불리는데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환자의 경우 본인의 의사로 자기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법안은 조력존엄사 대상자를 ′말기환자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로 규정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투약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의사가 약물을 직접 환자에게 투약하는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태어날 권리는 주장하기 어려웠지만 죽을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취지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살할 권리와 자살의 도움을 받을 권리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죠. 형법상 자살방조죄를 비롯해 법적 윤리적 관습적 문제와 악용될 우려 등으로 찬성과 반대가 맞서고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안락사 허용 스위스도 적극적 안락사는 촉탁살인″</strong>

논란이 뜨거워지자 국회 입법조사처는 ′조력존엄사 논의의 쟁점과 과제′(7월21일)란 긴급 보고서를 통해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오레곤 주에서 1997년 존엄사법이 처음 시행된 뒤 미국 내 10개주에서 ′조력존엄사법′이 발효됐다고 합니다. 수 차례 소송을 거쳐 6개월 이내 사망할 것으로 확인된 성인 환자에 한해 존엄사 신청 권리가 인정됐습니다.
′안락사가 자유권적 기본권′이라는 스위스도 적극적 안락사를 촉탁살인으로 규정해 최대 3년의 징역형을 (형법 제114조),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타인의 자살을 방조한 자에겐 최대 5년의 징역형을′(형법 제115조)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국 스위스에서도 이기적인 동기없는 소극적 안락사일 때만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심사를 통과해야 존엄사 권리 인정</strong>

안규백 의원 법안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의 조력존엄사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고 한 달이 지나서야 의사에게 자살을 도와줄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담당 의사뿐 아니라 다른 전문의 2명에게 조력존엄사 희망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요청을 받은 의사는 형법상 자살방조죄 적용을 받지 않게 됩니다. 조력존엄사의 남용을 막을 장치인데요. 스스로 죽기 위해 서류를 작성해 심사를 기다리고, 담당 의사도 아닌 다른 전문의 2명을 찾아가 자신의 사망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환자나 의료진 모두 쉽지 않아 보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자살에 협조한 의료인의 트라우마 괜찮을까</strong>

복잡한 절차에도 한국은 워낙 자살률이 높다 보니 의외로 신청자가 많을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안락사에 찬성한 성인이 8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연간 30여만 명 사망자 중 백 여명이 조력존엄사를 신청하면 백 명의 담당 의사와 2백 명의 전문의가 필요하죠. 담당 의사는 신청자를 사망케 할 의약품을 처방한 뒤, 사망에 이를 때까지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던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에 직접 개입할 때 어떤 심정일 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법안에선 담당 의사의 조력존엄사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담당 의사가 거부할 경우 의료기관의 장은 담당 의사를 교체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거부권 행사가 어려운 의사가 대신 맡을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의료윤리위원회는 22일 ″생명을 지키는 의사에게 자살을 위탁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윤리지침은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생명을 끊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통과돼도 의료계의 협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환자 가족 중 일부가 조력존엄사에 강력 반대할 때, 약물 투여 후에도 환자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수의사 99% ″안락사에 괴로움 느낀다″</strong>

서울신문은 최근 ″수의사 대부분이 안락사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특집기사를 보도했습니다.(2022년 6월19일) 여론조사 결과 수의사의 98.6%가 ″동물을 안락사시킬 때 괴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2014년 미국에선 수의사가 일반인에 비해 자살 생각을 3배나 더 한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것에도 수의사들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사람을 자살시키는 것은 의료진에게 매우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가 돕는 자살을 허용하는 나라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와 호주의 일부 지역 정도라고 합니다. 자기 생명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 많은 나라에서 고민과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법안 통과에 앞서 사회적 합의와 토론이 좀 더 필요한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