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10-08 07:47 수정 | 2022-10-08 07:47
고등학생이 그린 풍자만화 한 컷으로 지난 한 주가 시끄러웠습니다. 여전히 논란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와 함께, 많은 사람들은 또 한가지를 걱정합니다. ‘윤석열차를 창작한 고등학생은 지금 괜찮을까′ 하는 점입니다.
해당 학생은 일단 씩씩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학교 측은 “차분하고 성실한 학생이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학생이라는 점에서 이번 일을 트라우마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걱정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실,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이 대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카툰 한 컷으로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상황을 어린 나이에 경험한 학생이 앞으로 풍자만화를 편하게 그릴 수 있을까. 그 또래 학생들이 과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캔버스에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작품 자체를 문제 삼은 게 아니″라고 되풀이하는 문체부가 돌아봐야 할 지점입니다.
′윤석열차′를 그린 학생을 향한 따뜻한 걱정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카툰협회장인 원로 만화가 조관제 작가는 MBC와의 통화에서 “학생이 그린 순수한 작품이 이렇게 공격을 받을 일이냐”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자유 주제’라 하니 생각을 그렸을 뿐인데, 어른들이 난리를 부리는 통에 학생과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도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1천5백여 명의 만화가가 속한 국내 만화계 최대 단체, 한국만화가협회의 우려도 같은 맥락입니다. 만화가협회는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로 모욕받은 만화인들에게는 물론, 어른들의 정쟁에 피해자가 된 해당 학생에게도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문체부에 요구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국민의힘 의원실, 전체 수상작 제출 요구></strong>
며칠 전 학부모 한 분이 MBC에 제보해 왔습니다. 이번 공모전을 주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측의 전화를 받았다는 겁니다. 진흥원 측은 학부모에게 “공모전에서 입상한 자녀의 그림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진흥원에 확인했습니다. 설명은 이렇습니다. 국회 문화체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이번에 입상한 만화의 이미지 파일을 모두 제출하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했습니다. 학생이나 학부모 동의가 있어야 제출할 수 있어 불가피하게 연락을 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58개 수상작 중 의원실에 제출한 작품은 학부모가 동의한 22점입니다.
자기 아이 작품을 지금 같은 상황에 선뜻 제출하는 게 부담이 된다는 학부모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만화가 꿈나무′들 입장에서는, 자기 작품이 정치적으로 어떤 파장을 나을지 모를 수 있다는 직·간접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니 아무래도 위축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여당이 ″표현의 자유는 존중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결과적으로 그 ′자유′에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는 조치들입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아쉽기만 한 ′과민반응′></strong>
올해 공모전엔 ′윤석열차′만 상을 받은 게 아닙니다. 이른바 ′조국사태′를 연상시키는, ′아빠찬스′를 비판하는 작품도 상을 받았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치인 풍자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연상시키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윤석열차′ 그림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에 상을 준 게 문제″라는 문체부는 과연 조국 전 장관 풍자만화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문체부의 과민반응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린 학생이 ‘정치적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짧은 만화’를 제출하라는 공모전 취지에 맞춰 제출해도,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힘 있는 사람, 기득권자에 대한 풍자가 많이 들어가야만 국민에게 박수를 받는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을 기억하지 못해 이뤄진 ′과잉충성′ 아닌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