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권희진

[권희진의 세계는] 민간인도 무차별 공격‥'날뛰는' 푸틴의 심리상태는?

입력 | 2022-03-08 09:03   수정 | 2022-03-08 10:41
<b style=″font-family:none;″><푸틴이 ′전쟁′으로 챙긴 것은?> </b>

푸틴 대통령이 ′전쟁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던 전망의 근거는 그가 결코 손해 보는 선택은 하지 않는 치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2008년 조지아 침공이나, 크름반도 병합의 사례를 보면 피해가 거의 없다는 계산이 설 때만 군대를 움직여서 별다른 희생 없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얻곤 했으니까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봤자, 만만치 않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러시아군의 희생도 적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것도 불투명하다는 게 대부분의 분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이버 공격이나 선전전을 병행하면서 젤린스키 정권을 끌어내리고 친러 세력으로 정권을 교체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습니다.

예상을 깨고 전면전에 돌입한 지금, 러시아군은 상당한 인명 피해를 입으면서 하루 25조 원(세계 군사력 순위 6위인 우리나라 연간 국방비의 절반)의 전쟁비용을 써가며 전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수많은 인명을 희생해가며 우크라이나를 폐허로 만들면서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푸틴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푸틴은 작년 7월 기고문을 비롯해, 기회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는 결국 통합해야 할 같은 민족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같은 뿌리를 가진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통합을 강조해왔는데, 이런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과연 ′통합′이 가능할까요?

러시아군의 포탄에 가족과 친지를 잃고, 삶이 파괴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가해자인 러시아와의 통합은 고사하고, 역사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통합이 아닌 독립을 위해 곳곳에서 무장투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침략′의 결과는 ′유럽의 단결′> </b>

과거 소련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푸틴은 나토가 지배하게 된 유럽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토의 확대 정책을 중단하고, 나토의 영향력을 97년 이전으로 되돌리라면서 ′나토의 영향력 축소′를 요구했던 거죠.

미국이 여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어찌 보면 우크라이나가 피를 흘리게 된 셈인데, 이런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나토 국가들을 한데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러시아와 얽힌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분열됐던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제재에 동참해서 러시아를 압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거죠.

러시아에 대한 국제 여론까지 극도로 나빠지면서 이케아 같은 가구회사부터 브리티시 페트롤리엄 같은 에너지 기업까지 러시아에서의 철수를 선언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러시아는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경제적, 역사적 이유 등으로 러시아에 유독 우호적이었던 유럽의 맹주 독일이, 러시아의 위협을 절감하면서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푸틴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토가 움직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나토의 후퇴는 고사하고 나토가 영향력을 키워야 할 필요성만 오히려 잔뜩 키워준 셈이죠.
<b style=″font-family:none;″><그런데도 푸틴은 왜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b>

이렇게 되니 교활할 정도로 영민하게 행동했던 푸틴이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푸틴이 정말 치밀한 계산 끝에 전쟁을 일으킨 것일까 하는 의문이죠. 푸틴은 최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현 정부를 신나치 세력이자 마약 중독자라고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런 감정적인 행동은 그가 전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라고 합니다.

푸틴은 위험을 감수하거나 도박을 피하는 건 물론이고, 잔혹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냉정한 선택을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2008년 조지아 침공 당시에도 대통령을 그대로 자리에 놔뒀고, 2014년 크름반도를 병합한 뒤에도 동부 돈바스까지는 진출하지 않고 멈춰선 뒤, 배후에서 시치미를 떼면서 내전을 지원하는 쪽을 선택했죠.

다른 나라의 선거에 공작을 통해 은밀히 개입하고, 크름반도를 손에 피도 안 묻히고 병합하고, 유럽의 비판자들에게 암살자를 보내던 KGB 공작원 출신 푸틴과 지금 푸틴이 같은 사람 맞느냐 하는 의문이 나온다는 겁니다.

5년 전의 극히 주도면밀하던 푸틴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죠.

<b style=″font-family:none;″><코로나19가 푸틴의 판단력에 영향?> </b>

지난 2년여 동안, 푸틴을 만나려는 사람은 누구든 면담 전 2주 동안 자가격리한 뒤에야 비로소 푸틴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작년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조차 모스크바까지 가서도 푸틴을 화상으로만 만났다고 하죠. 본인을 철저히 보호한다면서 실은 고립시키는 편집증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푸틴을 만났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진 그의 태도에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푸틴은 지난 18개월 동안 특히 집중적으로 국내의 독립 언론을 탄압하고, 반대 정치인을 숙청하면서 시민사회를 극도로 억압해왔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정권이 폭압적일수록 그 지도자의 편집증도 심해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편집증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온 2년여의 시간이 푸틴의 판단력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니냐는 분석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거죠.

푸틴을 포함해 독재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분석하는 미국 CIA의 비밀 조직에서는 푸틴의 과거 행적을 분석하면서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기도 합니다.

푸틴이 이런 비상식적인 전쟁을 감행한 이유가, ′고립′이 가져온 심리적 영향의 탓인지, 러시아의 옛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푸틴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푸틴이 초기의 군사 작전 실패 이후, 군 시설만 파괴하겠다던 말을 뒤집고 무차별 폭격을 퍼부으며,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사이버 공격을 가하는가 하면, 핵 공격도 할 수 있다고 협박하는 등 그야말로 ′날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의 조심스러운 분석대로 푸틴의 심리상태가 실제로 정상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전 지구적 재앙이 우려되는 섬뜩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