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나세웅

[서초동M본부] 2013년 김관진과 2023년 이종섭‥반복되는 국방장관의 수사외압 의혹

입력 | 2023-09-10 08:35   수정 | 2023-09-10 09:07
<b style=″font-family:none;″>″아들이 사랑했던 해병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b>

자식을 보내는 영결식에서, 상복을 입은 부모는 오열했습니다. ″여전히 살아서 옆에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라는 말에 동료 해병대원들도 눈물을 보였습니다. 두 달 전 수해 지원에 투입됐다 숨진 해병대 채모 상병의 부모. 결혼 10년만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부모는 애끓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군에 부탁했습니다. ″해병대는 다르다는 걸 체감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아들이 사랑했던 해병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다시는 이런 비통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스무 살 채상병은 폭우가 쏟아진 하천에서 실종자를 찾던 중에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원래는 수해 복구 작업이라더니, 예정과 달리 작업은 갑자기 실종자 수색으로 변경됐습니다. 구명조끼는 지급되지 않았지만, 물에 들어가 수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가까이 일렬로 진행하던 수색작업도 바둑판식으로 변경됐습니다. 그러다 채 상병이 하천에 휩쓸렸습니다. 채 상병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사망사고 진상규명한다더니… 외압·항명 자기들끼리 싸운 군</b>

군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수사 외압과 항명죄 보복 수사 논란으로 얼룩졌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달 2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수사결과를 그대로 경찰에 이첩했습니다. 그런데, 상부인 국방부 조사본부는 즉각 이첩된 수사자료를 9백 페이지 가량을 회수했습니다. 그리고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어겼다며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을 항명죄로 입건해 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피의자 신분이 된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이미 장관 결재까지 된 사안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역으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검찰단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습니다. 유 법무관리관이 직접 전화로 이첩 서류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직접 과실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라″고 압력을 가한 점, 김 검찰단장이 경찰에 이첩된 서류를 무단으로 회수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어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이종섭 국방장관과 신범철 차관의 관여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며, 야당이 추가로 공수처에 이들을 고발하면서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국방장관의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겁니다.
<b style=″font-family:none;″>처음 아닌 국방장관의 수사외압 의혹… 댓글공작 수사도 외압</b>

박근혜 정부 시절 김관진 전 국방장관도 2017년 뒤늦게 과거 수사 외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재판 끝에 지난달 18일 실형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김 전 장관은 재임 시절인 2011년에서 2013년까지 사이버사령부 소속 군인들을 동원해, 정치 댓글을 달게 했습니다. 군인들은 선거 전후 야당 정치인 등에게 ″깽판의 원조″, ″빨갱이 집단″, ″막말 종북녀를 끌어내라″ 같은 비난 댓글을, 여당 정치인 관련 기사엔 ″역시 대한민국의 미래의 선택″이라며 홍보 댓글을 달았습니다.

2013년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수사한 국정원 댓글 사건에 이어, 군의 댓글 공작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진행된 1차 수사에서 국방부 조사본부는 ″이태하 심리전단장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결론 냈습니다. 조직적 대선 개입은 없었다는 겁니다. 거짓이었습니다. 정권이 바뀐 뒤인 2017년 검찰이 재수사에 나선 결과, 배후엔 김관진 전 장관의 수사 무마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을 보고 받아온 김 전 장관은 군 조사본부에 ″군이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수사 결과가 나오면 정부 정통성에 문제가 된다″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조사본부는 적극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수사팀은 심리전 사령부 부대원으로부터 ″조직적 댓글 활동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 직후 이태하 단장이 ′고맙다, 덕분에 승리했다′라며 격려 회식까지 했다″는 결정적 진술을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대선 개입이란 수사 결과는 안된다′는 장관 지침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진술입니다.

진상 규명과 장관 지시, 두 가지 갈림길에서 당시 군은 장관의 지시를 선택했습니다. 결정적 진술을 확보한 수사관은 수사 성과를 인정받기는커녕 수사팀에서 배제됐습니다. 받아둔 진술을 뒤집기 위한 회유와 협박도 뒤따랐습니다. 결국 진술을 한 부대원은 다시 수사팀에 불려나와 ″사실 단장이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아 화가 나서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고 자신의 말을 부인해야 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내가 장관을 그만두든지…″ 외압으로 윗선 못 올라간 수사</b>

김관진 전 장관은 ″부대원들이 공통적으로 사령관들이 관여했다고 진술한다, 사법 처리할 수밖에 없다″라는 보고를 받자 ″너 혼자 그렇게 고집하느냐. 내가 그동안 장관을 잘못했나. 내가 장관을 그만두든지″라고 화를 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수사 대상인 정치관여 글도 줄이라고 했습니다. 사건의 실체는 대폭 축소됐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청와대 등 윗선의 개입을 밝히려는 초기 수사가 동력을 잃었다는 겁니다. 댓글 조작 내용이 담긴 사이버사령부 대응 작전 결과보고서는 장관뿐 아니라 청와대에도 전달됐는데,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해선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1심 재판부는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처벌 대상자를 좁히는데 성공한 셈입니다.

재판에서 김 전 장관은 조사본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구체적인 행위들은 전혀 몰랐다고 항변했습니다. 진술을 번복시키고 허위 진술을 받겠다는 보고를 받은 적도, 승인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법원은 그래도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총괄적인 지휘 감독권을 가진 장관이 국방부 조사본부장에게 진상을 축소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법원은 김 전 장관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은폐하려는 부당한 목적으로 지휘 감독권을 남용했다고 최종 판단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2013년 김관진과 2023년 이종섭, 반복된 장관의 외압 의혹</b>

수사 대상을 축소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윗선 수사′ 필요성을 주장한 수사 담당자가 배제되는 등 압력이 가해졌다는 점에서, 이번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과 김관진 전 장관의 경우가 유사해보입니다.

특히 채상병 사건의 경우 경찰 이첩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습니다. 군 검찰 조사에서 해병대 사령관이 ″ ① 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한다.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 ② 수사결과는 경찰에서 최종 언론 설명 등을 하여야 한다″ 등의 장관 지시사항을 7월 31일 부사령관을 통해 전달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진술은 애초 장관이 혐의를 빼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적 없었다는 국방부 해명과 배치됩니다.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국방부는 말을 전한 해병대 부사령관의 오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이종섭 장관과 유재은 법무관리관, 그리고 해병대 부사령관 등이 참석한 국방부 대책회의에서, 유 법무관리관이 ″혐의가 불명확한 경우 범죄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해서 이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했고 이 얘기를 들은 이 장관이 동석한 해병대 부사령관에게 ″수사단장에게 설명해줘라″라고 했다는 겁니다. 법률 전문가인 유 법무관리관의 해석을 ′잘 설명하라′라고 했을 뿐, 그대로 범죄 혐의를 특정하지 말라고 ′지시′한 건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군에서 최고 결재권자이자 책임자인 장관의 ′설명하라′는 말이, 그대로 따르라는 뜻은 아니었다는 설명은 궁색해 보입니다.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장관의 지시를,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측은 수사 축소 지시로 이해했습니다. 박 전 수사단장에 따르면, 장관 지시가 전달된 날인 7월 31일, 유재은 법무관리관 역시 전화로 ″직접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해서 혐의자를 특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이튿날 경찰에 보낼 사건 인계서를 전달받아 본 유 법무관리관이 재차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고 하지 않았느냐. 업무상과실치사 죄명도 빼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고 주장합니다. 해병대에 전달된 국방장관 지시 사항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이는 사실상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의미라는 게 박 전 수사단장측 주장입니다. 박 전 수사단장을 대리하는 김정민 변호사는 ″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는 결국 범죄를 입건하지 말라는 뜻이고 이는 명백하고도,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수사방해″라고 반발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VIP(대통령) 격노가 배경? 진실게임된 수사 외압 논란</b>

사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할 권한은 군에 없습니다. 故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군 내부 조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자, 작년 7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군내 사망 사고나 성폭력 사건의 경우 민간 사법기관이 맡도록 법을 고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당장 수사의 결론을 내리는 것도 아닌데, 현장 수사팀의 의견을 묵살하는 방식으로, 군 수뇌부가 나선 이유에 대해 의혹의 눈길이 쏠립니다. 단지 기록을 이첩하는 절차를 두고도 장관까지 스스로 결재한 원안을 뒤집어 혐의 대상자를 줄일 것을 요구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이 질문에 대해 박 전 수사단장 측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있다고 들었다는 깜짝 폭로를 내놨습니다. 박 전 수사단장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문제의 7월31일 자신을 불렀고, ″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김 사령관은 ″대통령실에서 VIP주재 회의가 열렸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했다″고 전했습니다.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김 사령관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국방부 대책회의가 열리고, 법무관리관의 집요한 요구가 시작됐으며, 해병대 내부에선 대응책을 논의하는 과정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선 박 전 수사단장을 제외한 상부의 인물들은 모두 관련 내용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7월 31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 대통령에게 채상병 조사 보고를 했느냐는 국회 질의에 그런 적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 장관과 윤 대통령의 통화도 없었던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사령관도 그런일이 없었다고 군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반면 박정훈 전 수사단장의 아래 직원들은 당시 박 전 수사단장이 ′VIP가 국방장관을 통해 피혐의자를 빼라고 했다′고 말했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이를 중대한 외압으로 느낀 한 수사관은 오히려 1사단장을 빼지 못하게 하려고 1사단장 관련 내용을 다음날까지 100장 이상 보강했다고 군 검찰에 진술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문제는 지시 의도‥공수처 본격 수사 착수</b>

군의 최고 상관인 국방부 장관은 군사법경찰관, 즉 해병대 수사단장을 지휘 감독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은 군사법경찰관이 범죄 수사에 관하여 직무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인은 정치적 중립성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의 의무를 갖습니다. 지휘 감독권 행사 역시 정치적이거나, 자의적이어선 안된다는 게 우리 법원의 판단입니다. 김관진 전 장관 수사 외압 사건에서 재판부는 수사에 관련한 지휘는 ″어디까지나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수사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인정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의 경우, 7월 30일 사단장과 여단장을 포함한 8명을 모두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특정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수사 보고 원안을 결재한 장관이, 왜 이를 뒤집었는지가 책임 유무를 가리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혐의를 특정한 대상을 줄여라″, 그리고 ″혐의자를 쓰지말고 수사자료를 넘겨라″라는 지시가 세간의 의혹처럼 정권 수뇌부와 인연이 있는 사단장을 봐주기 위해서였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이란 목적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잘못 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사 축소 목적에서 국방 장관이 해병대 사령관과 법무관리관을 통해 박 전 수사단장에게 수차례 압박을 가하게 한 것은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박 전 수사단장 변호인의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사단장을 봐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줄곧 해명해왔습니다. ″초급간부를 포함해 혐의를 적시한 것이 타당한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는 겁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 역시 군사법원법의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압박의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이첩 보류 지시와 보완 지시는 정당한 지휘 감독권 행사라는 겁니다. 어느 쪽 설명이 더 진실에 부합하는지 밝히는 일은 이제 공수처 손에 달렸습니다. 공수처는 사건을 특수수사본부에 배당하고 지난 8일 먼저 박정훈 전 수사단장을 불러 조사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수사 무마는 용납 안되는 범죄″…사건 실체 밝혀야</b>

배후로 대통령실을 지목한 뒤, 군 검찰은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죄로 박 전 수사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구속영장 심사가 열리는 날, 박 전 수사단장의 해병대 예비역 동기들은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색 상의를 입고 나와 군사 법원에 출석하는 박 전 수사단장을 응원했습니다. 해병대라면 누구나 부른다는 ′팔각모 사나이′를 목청껏 부르며 박 전 수사단장을 배웅했습니다. 팔각모를 쓰고 군복을 입은 박 전 단장은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한 명씩 끌어안았습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충성과 정직이 해병대 정신의 핵심″이라며 ″해병대 정신으로 떳떳하게 조사했다″고 밝혔습니다. 항명이라는 비판엔, 그대로 명을 받는 ″수명을 선택했다면 해병대는 수사 서류를 조작 왜곡하는 부정직한 집단이 됐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반면 군 검찰은 박 전 수사단장이 이런 주장이 모두 근거가 없거나 거짓말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박 전 수사단장 구속영장에 ″자신의 항명 혐의를 덮기 위해 직속 상관인 이종섭 국방장관에 대해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앞서 법원은 김관진 전 장관의 댓글 수사 무마 혐의에 대해 ″형사사법의 기본 이념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질타한 바 있습니다. ″수사를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통제해야할 지휘 감독자가, 진실을 은폐·축소했으니 불법성이 가볍지 않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군의 정치 관여 수사 만큼이나 하루 아침에 목숨을 잃은 해병대원에 대한 수사 역시 중요합니다. 해병대 팔각모에 담긴 ″긍지와 전통″이란 정신을 살리고, 해병대를 사랑한 채상병과 그의 부모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사건의 실체가 조속히 드러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