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조재영

안인득, 서현역, 신림동, 다음은 또 어디?‥말로만 요란한 '중증 정신질환' 관리

입력 | 2023-10-08 08:02   수정 | 2023-10-08 08:32
′정신건강복지센터′란 곳이 있습니다.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후, 혹은 입원하지 않았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을 꾸준히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기관입니다.

일반 시민들 역시 센터에서 정신건강 관련 검사와 상담을 무료로 받을 수 있고, 자살예방 상담, 참사 트라우마 상담, 각종 중독 사례와 아동 청소년 문제 상담 등도 센터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신건강 정책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데, 현재 광역·기초 합해 전국에 2백 곳 넘는 센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보건소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민간 위탁도 있지만 업무는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긴 센터 간판을 한 번이라도 보신 적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뉴스데스크 <사건 속으로(9월 24일 방송)> 코너에서는 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사건속으로] 상담 실적부터 늘리라고?‥떠나는 정신건강 전문요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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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전문요원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작업치료사 1~2급 자격증은 기본, 여기에 더해 최소 1천 시간 이상의 고된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만큼 고도의 업무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이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담긴 <2022 지역사회 정신건강 우수사례집>을 살펴 봤습니다.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에, 혼자 6살 난 아이를 데리고 매일 밤 늦게까지 동네를 배회하던 조현병 엄마에게 ″아이와 함께 제대로 살려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끈질기게 설득해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가 있었고요.

제대로 씻지도 않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여자 옷을 입고 다니던 남성 정신질환자도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동네의 행사란 행사마다 나타나 장대 우산을 휘두르면서 폭행과 폭언을 일삼고 주민들을 괴롭히던 사람이었는데, 담당 요원의 노력 끝에 꾸준한 치료를 받게 되면서 증상이 놀라울 정도로 호전돼, 나중엔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게 된 겁니다.

어머니와 사별하고 갑자기 정신질환 증세가 나타나 집안에 혼자 틀어 박혀 있던 22살 대학생 환자를 11년 전 처음 상담했던 센터의 담당 요원은 ″그 친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한 끝에 얼마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험한 일,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우리 사회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세심하게 돌보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이 정작 일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자긍심′과 ′보람′이 아니라 ′무기력′과 ′패배감′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느낌이 더 커져 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서울 지역 정신건강전문요원(6년차)
″′센터에서 일을 하면 병만 얻는다. 병만 얻고 나는 나왔다. 당신들도 빨리 탈출하라′고 그런 식으로 얘기도 하고‥ ′몇 년 만에 다시 와서 봐도 아직 센터는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안 변할 거다′ 그런 이야기들‥″</blockquote>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부산 지역 정신건강전문요원(7년차)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이 일을 하면서 너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어떻게 조금씩 버티고 있는데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아요. 좀 가르칠 만하면 그만두고,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또 그만두고. 근데 이해가 가는 거예요, 얘네들이 그만두는 이유가.″</blockquote>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정신건강 상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실적 압박, 고질적인 인력난, 때때로 맞닥뜨리는 위험한 상황에도 아무런 안전 대책이 없다는 점 등을 지적한 <사건 속으로> 보도 후, 여러 명의 정신건강 전문요원들이 취재 기자인 저에게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근무 연차, 맡은 업무, 지역은 다양했지만 이들은 모두 ′센터에서 일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센터의 업무환경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에서 문어발 식으로 확장하기 일쑤라는 정신건강 관련 사업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A(6년차)
″정신건강에 대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정부에서는 이런저런 사업을 많이 내려 보냅니다. 예를 들어 자살이 이슈가 되면 자살 관련 사업 규모가 커지고, 요즘처럼 고립 청년(은둔형 외톨이)과 흉기 난동 사건이 이슈가 되면 청년 정신건강 사업에 포커스를 맞춰 사업을 진행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기존 인력에 사업만 늘어나지, 실질적으로 인력이 추가되지는 않습니다.″</blockquote>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B(2년차)
″매뉴얼에 보면 요원 한 명당 최대 25명의 환자까지만 보라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와 현실이 다릅니다. 넘쳐나는 환자들을 최대한 선별해서 ′등록회원′ 25명 선을 넘지 않도록 하고, 나머지는 일단 ′일반상담′으로 돌려놓는 게 현실입니다. 시기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결국 실제로는 요원 한 명이 적어도 35명 정도를 담당하게 됩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의 경우엔 문제가 더 심각합니다. 자살 위험도(고/중/저)에 따라 개입 횟수가 매뉴얼화 되어 있는데요, 이거 현장에선 절대로 실현 불가능한 횟수입니다. 그래서 실제 위험도와는 관계없이 고/중/저를 임의대로 나눠서 등록하기도 합니다. 안 그러면 도저히 실적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 업무인 일반 상담과 등록 환자 사례 관리조차 매뉴얼대로 못하고 실적 따로, 실제 개입 따로 이렇게 엉망진창인 상황인데‥ 다른 사업이라고 해서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죠.

그러는 와중에 해가 바뀔 때마다 사업은 또 더 늘어나고, 이태원 참사 같은 국가적 재난이 터지고‥ 인력은 늘리지 않고 일만 계속 늘리는데 이걸 어떻게 감당하라는 건지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습니다.″</blockquote>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C(3년차)
″전문요원으로서 자긍심을 가질 수가 없는 환경입니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싶습니다.″</blockquote>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B(2년차)
″이제 현장에선 고도의 전문성?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전화 받을 줄 알고, 결재 올릴 줄 알면 됩니다. (자살 예방, 중증 질환자 관리 같은 시급한 일이 아니라) 밀려 들어오는 잡무부터 처리해야 하니까요.″</blockquote>

센터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이미지로 표현한 걸 한 번 볼까요? 요원들끼리는 그래서, 센터를 ″예전엔 백화점, 요즘엔 다이소″라 부른다고 합니다. 각각 별개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까지 지역의 센터에서 몽땅 다 해결하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 때문입니다.
다른 공공 기관이나 사설 기관과 비교해 봤을 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급여가 적고 업무가 과중하다는 건 업계에서 이미 알려진 얘기였는데, 설상가상 업무 분야가 늘어나고 있으니 일을 하려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D(4년차)
″직원을 채용하려고 공고를 두세 번씩 내도 사람이 없습니다. 전문요원 대다수가 3~5년 정도 근무하고 나면 다들 퇴사해서 다른 직종으로 갑니다.″</blockquote>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B(2년차)
″제가 지금 딱 2~3년차 사이인데 여기를 평생 직장으로 삼을 수 있는가 의문이 계속 듭니다. 일 잘하고 열정적인 직원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이면 ′우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런 말을 안 할 수가 없는 게 현장 분위기입니다.″</blockquote>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C(3년차)
″그러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사업을 감당해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소진(번아웃)되고요. 정신질환자 응급 상황에서는 자·타해 위험 때문에 2인 1조 출동이 기본인데, 인력이 없어서 1명만 나가게 되니 안전 문제도 심각합니다.″</blockquote>

정춘숙 의원실의 올해 3월 자료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센터 전체 종사자 중 3년 이내 퇴직하는 비율이 10.2%였습니다. 직원 10명 중 1명은 3년 안에 그만뒀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세는 최근 입사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신규 입사자 중 3년 이내 퇴직자는 22.5%입니다. 이젠 10명 중 1명이 아니라, 5명 중 1명이 3년 안에 그만두고 있는 겁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 상황에, 그나마 남아 있던 사람들까지 이렇게 하나 둘씩 떠나고 나면 결국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를 포함한 지역사회 정신건강 안전망의 축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중앙 정부에서 아무리 좋은 대책을 만들어도, 이를 실제 지역사회에서 손발이 되어 실행하는 것은 정신건강복지센터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부터 바꿔 나가야 할까요.
전문요원들의 월급여 실수령액은 7,8년씩 경력을 쌓아도 2백만 원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10년차 가까이 돼야 앞자리가 ′3′으로 바뀌는데, 이만큼이라도 받는 요원들은 다행입니다. 지역에 따라 급여가 들쑥날쑥인데, 예산이 넉넉하지 못한 지자체는 급여를 정해진 기준보다 더 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문요원들은, 오히려 본인들 월급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따로 있다고도 얘기합니다. 정신은 온전치 않고 형편은 어려워 사흘을 굶은 끝에 한강에 뛰어 들었다가 구조된 사람을 만났을 때조차, 지금의 예산으로는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정신건강전문요원 B(2년차)>
″예산이요? 사례 관리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식비, 간식비가 다 합해 몇 천원 밖에 안 됩니다. 마치 국회의원들이 ′버스요금 50원?′ 이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걸 아무리 건의해도 물가 반영 안 해주더라고요. 국밥 한 그릇 먹이고 싶어도 1만 원씩 하는데‥″</blockquote>

계약 형태를 보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2배 이상 많습니다.

여성 요원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니 혼자서 성범죄 전과자 혹은 중증 정신질환자와 면담을 하러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상담 환자의 죽음을 자주 겪을 수밖에 없는 직업, 본인들도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일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의 노동 환경이나 정신 건강에 대한 중앙 정부의 실태 조사는 아직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요원 본인들이 겪는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대책도 전무합니다.

이번 아이템의 사전 취재를 위해 만났던 주상현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은, 정신질환이 생겼을 때도 믿고 입원할 만한 병동이 많지 않은 국내 현실을 고려했을 때, 더더욱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상현/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
″우리 사회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는 반드시 필요하고, 치료 이후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도 필요한데요. 그렇다면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제대로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예산이 확충돼야 하고요. 그 센터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되고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사실은 안인득 사건(조현병 환자인 안인득이 저지른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및 살인 사건, 22명 사상)이 4년 전이었잖아요. 이번에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나니까, 그 때 간담회에 왔었던 기자 분이 4년 만에 저한테 카톡 보내셨거든요. 그때와 비교해서 변한 게 있냐고요.″

안인득 사건 당시, 조현병을 앓던 안인득이 계속 증상이 심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방치돼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지역사회 시스템을 통해 중증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촘촘하게 관리해야 할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기사가 정말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여기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지금도 그 때랑 똑같더라고요. 변한 게 없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 우리나라 국민이 평생 한 번이라도 정신장애를 앓을 확률은 27.8%에 달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복지 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에 투자하는 비율은 단 1.6%에 불과합니다.

안인득 사건 때만 해도 ′이번에야말로 바뀔 거′라는 기대가 많았는데, 여전히 제자리라고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실행한 대책은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의 인터뷰들이 증명하듯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최근엔 태풍·홍수 같은 자연재해, 코로나19, 전세 사기 같은 분야까지 국가 차원에서 심리 상담을 권하고 센터의 업무로 내려 보내면서, 센터 직원들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업무 홍수′에 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센터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 필수 업무인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에 전념하기가 점점 더 힘든 겁니다.

″앞으로 또 신림역, 서현역 이런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 안 할 거란 법이 없잖아요? 분명히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는 기자님이 (이번과 똑같은 기사를 쓰기 위해) 저를 찾을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