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형제복지원' 잃어버린 24년‥국가소송했지만 돌아온 건 '2차 가해' [서초동M본부]
입력 | 2025-11-08 11:03 수정 | 2025-11-08 12:28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국밥 사줄게′ 따라갔다 강제 입소‥ 가족과 생이별 24년</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1998년 11월, 당시 35살이던 지적장애인 전봉수 씨는 누나와 충남 천안역에 놀러 갔다가 누군지 모를 스님에게 이끌려 대구시립희망원에 강제 입소 됐습니다. ′국밥을 사주겠다′는 말에 따라갔다가 창문에 쇠창살이 달린 봉고차에 태워져 정신을 잃었고, 그렇게 24년을 가족과 생이별하게 됐습니다.
′대구광역시립희망원′. 과거 전국 노숙인복지시설 중 규모나 시설 면에서 손에 꼽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우수 사회복지시설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봉수 씨는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지낸 기억으로 밤잠을 설칩니다.
<B>″희망원에서 살았다는 기억 자체로 너무 힘들어요. 희망원에서 강제로 시켜서 축구공을 만드는 일을 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리어카를 끌고 사람들 밥 주러 다녔던 때도 너무 힘들었습니다.″</B>
폭행, 갈취, 강제노동. 한 달간 독방에 갇혔다가 좁은 방에서 7~8명과 함께 새우잠을 자며 온갖 일을 강요당했습니다.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행에, 도망갈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가족의 이름과 사는 동네를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희망원이 전봉수 씨에게 새로운 생일을 만들어주면서 가족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 시간, 가족들은 매일같이 천안역 근처 노숙인 시설과 무료 급식소를 돌아다니며 전봉수 씨를 수소문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11월, 대구희망원을 나와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진짜 생일을 찾게 된 전봉수 씨. 그렇게 24년 만에 가족들과 기적처럼 재회하게 됐습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대구희망원에 대한 대대적인 직권 조사에 나섰습니다. 2014년부터 2년 8개월간 거주인원의 10%가 넘는 129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부당한 사망사건 처리, 장애인·노숙인에 대한 폭행과 학대, 급식비 횡령, 거주인 부당 작업 등이 확인돼 가해자들이 수사기관에 넘겨졌습니다.
2024년 9월,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대구희망원을 비롯한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4곳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폭력′이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전봉수 씨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빼앗긴 24년에 대한 보상은 권고에 그쳤고, 전봉수 씨와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결심했습니다.
<B>″희망원 안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가족들도 만나지 못한 게 억울한데 사과를 못 받았어요. 사람들이 시설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아있는 사람들도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소송하게 됐어요.″</B>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들은 건 ′사과′가 아닌 ′2차 가해′였습니다. 대구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 국가 측을 대변하는 법무부 소송수행자는 일관된 전봉수 씨의 진술을 허위와 억측이라며 깎아내렸습니다. 대구희망원 측 진술과 자료만을 신뢰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발견 당시 상태가 상처도 많고 악취가 심하게 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구에서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다가 아무 지인도 없는 상황에서 노숙 생활을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손해배상소송 변론 중 법무부 소송수행자 발언)</blockquote>
′강제 입소′가 아니라고도 주장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단속반은 사람을 잡아 가두려는 게 아니라 부랑자들 찾아가서 ′이런 시설 있는데 들어가겠냐′는 의사 묻고 동의하면 데려가는 것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손해배상소송 변론 중 법무부 소송수행자 발언)</blockquote>
재판부에 제출된 법무부 측 변론서와 준비서면에도 전봉수 씨와 그 가족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입히는 표현이 여럿 발견됐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전봉수 씨가 희망원 입소 전에 직업도 없이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다녀 가족들이 그를 감당할 수 없어 다른 시설에 입소시킨 사실이 있다.″
″40세 성년 남성이 강제로 차량에 태워질 약한 어린이도 아닌데 ‥ 납치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사실을 보면 자유의사에 따라 입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족들이 전봉수 씨의 장애나 가정형편 등의 이유로 그를 방치한 채 충분한 보호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설 수용을 희망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blockquote>
개인 경험을 언급하며 터무니없는 논리로 ′독방 감금은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리면 어디에 장교로 들어갔다가 훈련기간에 나와야 되는 경우가 생겨서 단독으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혼자 방에서. 저는 그게 인권침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blockquote>
이렇듯 변론 전반에 걸쳐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부정한 데 모자라,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견됐다며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이 사건 사안에 관한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 과정에서의 오류 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 등이 발견되어 결국 이제껏 전봉수 씨 측이 한 주장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blockquote>
<B>″천안역에서 놀다가 붙잡혀서 들어간 건데 가고 싶어서 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많이 나빴어요.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가족 찾지도 못하고 허락받아야 나갈 수 있는 건데 자유롭게 살았다는 말을 듣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B>
법무부는 지난 9월,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에 강제 수용됐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의 항소와 상고를 일괄 취하했습니다. 당시 법무부 측은 ″오랜 기간 고통받아 온 피해자들에 대해 권위주의 시기의 국가폭력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국가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 취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국가폭력 피해자 전봉수 씨의 재판에서는 인정이 아닌 부정, 사과가 아닌 가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B>″가족들하고 같이 못 살게 하고 희망원에서 강제로 살게 한 거 미안하다고 사과를 받고 싶어요.″</B>
법무부는 ″소송 수행청인 대구 경찰청 소속 소송수행자와 대리인이 구체적 사실관계 확정을 위한 증인신문과 법리적 쟁점 정리를 위한 주장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론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철저한 점검과 소송수행자 대상 교육을 통해 적절한 변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은 ″국민의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실현해야 하는 법무부가 국가소송 중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2차 가해성 변론을 자행한 데에 심히 유감″이라며 ″법무부는 향후 송무절차 전반에서 인권침해가 재발되지 않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