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구나연

공습 직전 '이란' 떠난 버스‥1,300km 교민 탈출의 기록

입력 | 2026-03-11 09:00   수정 | 2026-03-11 09:03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대사관 담장 앞까지 다가온 전쟁</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주이란 한국대사관에서 촬영된 사진입니다. 대사관 건물 옆으로 거대한 연기 기둥이 치솟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머물던 숙소 안은 더 처참합니다. 창문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을 뒤덮었고, 뒤틀린 창틀은 방 안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건물 외벽마저 폭발 충격으로 뜯겨나갔습니다.

전쟁은 이미 대사관 담장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사관 직원들은 테헤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폭격이 이어질수록 현지에 남아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무수한 시나리오로 대비해 온 ′교민 대피′가 현실로 닥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대피 시나리오는 준비돼 있었다</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준비는 진작부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정세가 불안한 지역에서 교민을 보호하는 일은 외교부와 재외공관의 일상 업무입니다. 비상연락망을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한인회 및 유관 단체와 소통합니다. 유사시 대피 경로와 행동 요령도 수시로 점검합니다. 지난해 6월, 이미 한 차례 공습을 겪은 주이란대사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서울의 본부도 일찌감치 움직였습니다. 올해 1월부터 상황을 더 면밀히 봐야 한다는 판단하에 차관과 영사국장 등이 참여하는 본부-공관 합동 화상회의를 이어 왔습니다. 어느 수준에서 대피를 권고해야 할지, 국경 이동이 가능할지, 인접국 검문소와 공항이 마비되지는 않을지 등 다양한 변수를 반복적으로 점검했습니다.

철저한 준비에도 결정은 늘 어려운 법입니다. 2월 28일, 공습이 시작되며 상황은 현실이 됐습니다. 공습이 곧바로 확전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반대로 망설이다가 길이 닫힐 수 있습니다.

임상우 신속대응팀 단장은 ″확전이 될지 상황이 빨리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현지 공관과 본부 논의를 거쳐 초기에 빠르게 대피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공습 발생 이틀 뒤인 3월 2일, 교민 대피를 전격 결정했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새벽 김밥과 함께 오른 버스‥1,300km 안갯속 탈출</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가장 큰 과제는 ′이동′이었습니다. 인접국 투르크메니스탄 국경까지 육로로 1,300km에 달했습니다. 어느 시점에, 어떤 이동수단을 이용해 교민들을 빼낼지 하나하나가 현장이 판단할 몫이었습니다. 현지 공관은 교민 집결을 유도하고, 대피에 합류하게 된 이들을 위한 숙식 지원을 병행했습니다. 최대한 일찍 움직여야 한다는 판단 아래 출발 시각은 이른 새벽으로 잡혔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먼 길을 떠나는 교민들을 위해 직접 김밥을 싸고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작게 보면 식사 준비였지만, 삶의 터전을 두고 떠나는 교민들을 위한 응원이기도 했습니다. 교민들을 태운 버스가 테헤란을 빠져나온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도심에는 공습이 재개됐습니다. 출발이 조금만 늦었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뻔했습니다.
버스가 달린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좁은 2차선 도로에 곳곳이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안개까지 자욱한 상황에서 서두르고 싶어도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교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외교부는 지난해 6월 공습 당시 고용했던 버스 기사를 찾아 다시 한번 대피 길을 맡겼습니다. 중간 기착지에서 교민들이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대사관 직원들은 휴식 없이 선발대로 출발해 수속과 동선을 정리했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살면서 가장 길게 느껴진 두 시간″‥국경에서 마주한 위기</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긴 여정의 가장 큰 고비는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여러 검문소가 있는데, 어느 검문소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이동시간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교민 대피 동선과 먼 거리에 있는 검문소가 검토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신속대응팀은 가장 가까운 검문소를 배정해달라고 거듭 요청했고, 투르크메니스탄은 결국 받아들였습니다. 인접 검문소가 사실상 우리 교민 전용으로 열렸고, 인력은 추가 배치됐습니다. 외교부 직원들도 직접 검문소에 나가 상황을 조율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준비된 듯했지만, 도착 예정 시간이 다가와도 버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의 긴장감은 커졌습니다.

현지 통신망 사정으로는 버스와 직접 연락을 취하기 어려웠습니다. 버스 인솔 직원이 이란 대사관에 연락하면, 이란 대사관이 다시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으로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상황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임 단장은 ″현지 통신이 안정적이지 않아 연락이 끊겼다가 연결됐다를 반복했다″면서 ″버스가 어디까지 왔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걱정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란으로 복귀 중이던 한 영사 덕에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서울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중도에 일정을 접고 다시 이란으로 나가던 중이었던 건데, 이란 SIM 카드가 들어있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던 덕에 직접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안개와 도로 결빙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되레 다행이었습니다. 임 단장은 버스를 기다리던 그 몇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을 텐데 환하게 웃으며 내리는 교민들을 보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국경만 넘으면 되는 상황에서, 한 가족은 ′국적′이라는 변수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한국 국적의 교민이, 이란 국적의 배우자와 친척들을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던 겁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한국 국민 보호를 위해 별도 검문소, 우선 통과 조치를 마련한 입장이었기에 난감해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사정을 설명하며 최대한 선처를 구했지만, 현장에서는 상황 타개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결국, 그 가족은 다 함께 이란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나만 국경을 넘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휴가에서 복귀 중이던 그 영사가, 다시 한번 나서서 그들을 인솔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를 남기고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상황은 극적으로 해결됐습니다. 임상우 단장과 투르크메니스탄 외교 차관과의 소통이 성사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이 그 가족의 통과를 허용한 겁니다. 우리 교민들은 수도 아시가바트의 한 호텔에 도착해 새벽 시간대 여러 편으로 나뉜 항공편을 타고 하늘길에 올랐습니다. 이때도 현지 대사관 직원들은 밤을 새우며 공항 인솔을 이어갔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중동 곳곳에서 이어진 대피</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에서는 육로를 통한 이집트로의 대피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곳에도 신속대응팀 일부가 파견됐습니다.

이란의 공격이 걸프 지역 다른 국가들로 번지면서 단기 체류자들이 발을 묶인 UAE에서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시나리오까지 검토됐습니다. 하지만 노약자까지 포함한 이들을 데리고 사막을 넘어 국경을 통과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전환점은 장관 외교였습니다. 순방에서 귀국한 조현 장관이 직접 UAE 외교장관과 통화했고, 결과적으로 민항편 재개와 전세기 운항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3월 6일부터 민항 편이 뜨기 시작했고, 8일에는 전세기를 타고 우리 국민 206명이 귀국했습니다.

요르단에서는 공항으로 몰린 우리 국민의 항공편 변경과 수속을 돕기 위해 몇 안 되는 대사관 직원이 총출동했습니다. 영어 소통이 어려운 고령 국민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월 3일부터 9일까지 매일 공항 카운터를 지킨 이들은 325명의 국민을 무사히 출국시켰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전쟁터에 남은 사람들</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공개된 탈출기의 이면에는 대중이 흔히 떠올리는 외교관의 이미지와 거리가 먼 장면들이 겹쳐 있습니다. 새벽에 출발하는 교민들을 마중하며 손수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공항 카운터에 붙어 국민 한 명 한 명의 탑승 수속을 돕고, 폭격 가능성이 커진 현지로 돌아가기 위해 휴가를 반납한 영사도 있습니다.

국제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대응 역량은 과거와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잘 갖춰진 공관 간 공조 체계 아래, 즉시 신속대응팀을 꾸리고, 국경 검문소 운영과 항공편 재개를 두고 상대국과 직접 협의할 외교 채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외국민 보호는 결국 현장 외교관 한 명 한 명의 판단과 헌신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재외공관은 장기간 공관장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외교가 안팎에서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평시에도 부담이 큰 구조인데, 전쟁과 같은 위기 국면에서 지휘 체계의 안정성은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발령이 날 수 있는 차석은 장기 시야를 갖고 움직이는 데에 제약이 있습니다. 현장 판단의 최종 책임도 애매합니다. 이번 중동 사태에 잘 대응했다고 해서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개인이 버티고 있다고 해서 구조의 공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동의 상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교부는 이란에서 추가로 육로 탈출을 희망하는 교민을 대상으로 2차 대피를 준비 중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추가 대피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중동 각국의 단기 체류자 귀국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민항기 운항이 정상화되면서 자연스레 해결될 가능성도 있지만, 국제 정세가 다시 흔들리면 언제든 새로운 대피 수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외교부는 다시 한번 ′대사관 철수 계획′에 단호히 선을 그었습니다. 비필수 인력과 공관 직원 가족들이 귀국하는 일은 있어도, 현지에 우리 교민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대사관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겁니다. 공습이 이어지는 도시 안에서 외교관들은 지금도 교민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전화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