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3-21 12:10 수정 | 2026-03-21 13:06
2019년 12월 4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를 취재하던 날이었습니다. 이날 집회는 평소와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수요시위가 열리는 ′평화의 소녀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위안부 동상을 반대한다′는 집회가 처음으로 열린 겁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며, 더 이상 일본에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등의 논리를 폈습니다. 생경한 풍경이었습니다. 이 집회에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의 김병헌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집회가 6년 넘게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blockquote style=″position:relative; margin:20px 0; padding:19px 29px; border:1px solid #e5e5e5; background:#f7f7f7; color:#222″>″위안부는 매춘부야, 윤락녀야. … 위안부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허위 사실 이야기한 적 있나?″ (′25.12.17 집회 김병헌 발언)
″위안부 사기꾼들은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고 거짓말하는 겁니다. 이 위안부들은 포주와 계약을 맺고 가서 돈을 번 직업여성입니다.″ (′25.5.21 집회 김병헌 발언)</blockquote>
첫 집회 이후 6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모욕하는 집회는 계속 이어졌고, 결국 김 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김 씨는 경찰에 출석하며 카메라 앞에 설 때나, SNS를 통해서도 줄곧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는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6년 동안이나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2017년 ′위안부′ 학살 자료를 발굴해 최초로 발표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연구해 온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래는 강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질문-답변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Q. 김병헌 씨를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세력의 주장이 여럿 있습니다. ′자발적 성매매였다′ 등의 주장인데, 실제로 근거가 있는 건가요?
A.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아 최종 승소했던 2023년 ′위안부′ 피해자 2차 소송에서도 그렇고,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 UN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나 미 하원 결의안 등 여러 공적 기록이 ′강제 동원′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전부 부정하고 있는 거죠.
1차 역사 사료를 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중국 쿤밍 지역에서 생포된 조선인 위안부 23명을 상대로 심문한 미국 전략첩보국 보고서에 보면 이들이 ″강요와 기망에 의해 위안부가 됐다″고 확인한 대목이 나옵니다. 끌려오거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줄 모르고 모집된 ′취업 사기′와 같은 건데, 이 구조는 성적인 학대 구조인 거죠.
결국 사실상 ′프레임′ 싸움을 하고 있는 건데, ′위안부′ 동원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었다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밤중에 집에 들어가서 군인이 여성을 끌어내는 것만이 ′강제′라고만 하는 건 아베(전 일본 총리)의 프레임이고요. 사기와 기망 모두 넓은 의미에서의 강제 동원에 해당합니다.
Q. 그럼, 이렇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주장을 계속하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보시나요?
A. 저는 이런 식의 공격이 점점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해요. ′가짜′를 계속 얘기하면 ′가짜′에 젖어 듭니다. ′위안부는 매춘′과 같은 프레임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게 아닙니다. <b>최소한 ′피곤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서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고 의구심을 들게 하는 것, 이런 점에서는 어떻게 보면 효과적인 공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b>
더 나아가,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점점 ′명백한 거짓′은 말하지 않아요. 전면적인 사실 부정이 아닌 ′해석적 부정′을 하는 건데요. 예를 들면 ′위안부는 없었다′, ′위안소는 없었다′는 주장이 아니라 ′위안부는 있었지만 매춘부였다′는 식인 겁니다. 이런 식으로 거짓에 약간의 진실을 섞어서 퍼뜨리면 유튜브나 여러 플랫폼을 통해서 굉장히 확산이 되고요.
저희가 학자로서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이야기해도, 학자도 아닌 유튜버가 ′자기가 공부해 봤는데, 위안부는 다 가짜더라′ 이렇게 얘기해버리면 저희가 백 마디를 해도 한마디로 그냥 부정해 버리는 거죠. 굉장히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Q. 연구자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한 부정이 용인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그동안 이뤄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과 피해자를 향한 공격은 학술적 쟁점이 아닙니다. 정치적 쟁점이고 정치적 의도를 지닌 특정한 진영의 의도가 있는 겁니다. 식민지 문제나 여성 인권 문제에 그치지 않고요, 이른바 ′역사 전쟁′에서 굉장한 교두보를 무너뜨리는 문제로 목표 설정이 된 겁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하지만,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가는 게 진보이자 발전이자 성장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b>우리가 사회에서 인권과 관련해 구축해 왔던 ′상식′이 있어요. 저는 이게 부서질 수 있다,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어요. 이 기준이, 이 선이 무너지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후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b>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역사 부정과 왜곡, 혐오에 대응하려는 조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른바 ′위안부피해자법′이 제정된 지 33년 만에 명예훼손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며 개정된 건데요.
<b>* 관련 보도: ′위안부 왜곡 처벌′ 법 시행‥김병헌 ″나는 처벌 못 해″ (′26.3.17 MBC 뉴스데스크)</b>
<a href=″https://imnews.imbc.com/replay/2026/nwdesk/article/6808213_37004.html″ target=″_blank″><b>https://imnews.imbc.com/replay/2026/nwdesk/article/6808213_37004.html</b></a>
크게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진전이 있습니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정의를 명확히 규정해 이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도 처벌하도록 하는 한편, 생존 ′위안부′ 피해자나 사망한 피해자 유족의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명예훼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가능해졌습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
일본군 ′위안부′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피해자 측 대리인단이었던 류광옥 변호사도 개정된 법에 대해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인 면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과거에는 피해자 집단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법의 처벌 망을 피해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더라도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부인하거나 왜곡하게 되면 처벌할 수 있게 규정했다는 겁니다.
다만 개정된 법은 ′위안부′ 피해 사실이나 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의 면책 규정을 뒀습니다. 표현·학문의 자유를 존중해, 학문이나 연구 목적으로 이뤄진 경우는 처벌하지 않도록 한 겁니다.
류 변호사는 ″사법부가 여전히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역사적 사실 중 하나로서 사후 검증과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표현의 자유′를 향한 탄압의 경험 때문인지, 이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2019년 대학 강의 과정에서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하고도 무죄 판결을 받은 류석춘 전 교수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장은 류 전 교수의 발언이 ″통념에 어긋나는 것이고 비유도 부적절하다″면서도 ″그 내용과 방법이 학문적 연구 결과의 전달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류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가 무제한의 자유는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되는 경우, 이를 제한할 방법이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은 개정됐지만 학문과 연구의 외피를 쓴 혐오 발언이 계속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가운데,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병헌 씨도 앞서 ′개정된 법이 시행되더라도 자신을 처벌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위안부 왜곡 처벌′ 법이 시행되는 오는 6월, 역사 왜곡과 혐오가 멈출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