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고현승

위안부 보도로 '표적'이 돼‥日 기자 고난의 기록

입력 | 2021-10-23 20:31   수정 | 2021-10-2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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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30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던, 당시 아사히 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씨 입니다.

일본의 치부를 들춰낸 그는 우익의 표적이 됐고 온갖 협박과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명예훼손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우익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6년간의 외로운 싸움, 그 시간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고현승 특파원입니다.

◀ 리포트 ▶

″전 종군위안부, 반세기 만에 무거운 입을 열다.″

30년 전인 1991년,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충격적인 진실을 특종 보도했습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최대 외교 현안이 됐고, 이듬해 일본 총리의 사과,

[미야자와 기이치/전 일본 총리(1992년)]
″반성과 사과의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어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로 이어졌습니다.

[고노 요헤이/전 관방장관(1993년)]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이송에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발한 기자는 그러나 우익의 표적이 됐습니다.

매국노라며 신문사는 물론 가족에게도 살해 협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전 아사히신문 기자]
″딸의 이름이 인터넷에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마지막에는 협박장, 딸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장까지 날아왔습니다.″

우익은 ′날조 기사′라며 집요하게 공격했고, 내정됐던 대학 교수직도 잃었습니다.

[사쿠라이 요시코/국가기본문제연구소 이사장]
″오히려 역사를 바꿔쓰려는 것은 아사히신문이며, 우에무라 씨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우에무라 기자는 사과문을 요구하고 명예훼손 소송을 냈습니다.

6년 간의 외로운 투쟁, 하지만 법원은 우익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전 아사히신문 기자]
″일본 법원이 상당히 보수화, 우경화되어 정권의 눈치를 심하게 본 것 아닌가라는 것이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젠 혼자가 아닙니다.

100명 넘는 변호사들이 힘을 보태고, 한일 양국 시민단체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돼 우경화된 일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또 다른 고발로 이어졌습니다.

[아베 신조 / 전 일본 총리]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성노예를 운영했다는 부당한 중상모략이 지금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큐 영화 ′표적′은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됐고, 감독은 안종필 자유언론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니시지마 신지/다큐 영화 ′표적′ 감독]
″신문기자가 (정권의) 기대와 다른 내용을 기사로 쓰면 그 기자는 공격 목표, ′표적′이 됩니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일본의 현실입니다.″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우에무라 기자가 책으로 남긴 기록입니다.

재판을 통해 오명을 씻어내진 못했지만, 오롯이 남은 기록과 영상을 통해 그의 보도가 옳았고, 싸움은 정당했다는 진실은 더욱 뚜렷하게 역사에 남게 됐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 이장식, 김진호(도쿄), 이상용/영상편집 : 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