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이렇게 시위를 하는 건, 이 제약회사가 임신 중단 약물, 즉 먹는 낙태약을 국내에 도입하려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김길수/목사·생명운동연합 대표]
″먹는 낙태약은 단순한 의약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태에서 뛰고 있는 심장을 멈추게 하는 약물입니다.″
이 제약회사는 식약처에 먹는 임신중지약의 국내 판매를 허가해 달라고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1988년 프랑스 제약사가 처음 개발한 먹는 낙태약 ′미프진′은 지난 2005년 WHO, 세계보건기구에서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됐고, 미국과 영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 90여 개 나라에서 정식 허가를 받아 판매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에선 15만 원 정도에 구할 수 있습니다.
주로 임신초기에 복용하는데, 임신 중절 수술 대신 약을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판매 국가에선 수요가 꾸준합니다.
스트레이트와 인터뷰한 국제기구 소속 의학박사는 미프진의 효과나 안전성은 국제적으로 이미 입증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수잔 펠트하이스/국제 비영리기구 ′위민온웹′ 의학 박사]
″몸 안에서 자연 유산과 동일한 과정이 진행됩니다. (미프진은) 매우 안전하고 효과적입니다. 말하자면 타이레놀(파라세타몰)보다 안전합니다. 사용하기 시작된 지는 30년 이상 됐습니다. 이 약의 안전성은 모든 환경에서 방대한 증거를 통해 입증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선 판매 허가가 나지 않아, 합법적으로 이 약을 구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틈타, 불법적인 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스트레이트는 먹는 임신중지약을 판매한다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봤습니다.
100% 정품, 직수입 제품이라며 상품정보와 가격 등을 자세히 소개합니다.
사용자들의 복용후기도 상당수 올라와 있습니다.
문의는 전화로는 할 수 없고, 텔레그램 등 SNS로만 가능했습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문의해 봤습니다.
임신 15주 차라고 하자, 비용은 95만 원, 택배로 5일이면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WHO는 임신 12주 이상일 때는 의료인의 지도를 받아 복용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판매자는 형식적인 질문 몇개만 하더니, 바로 구매 가능하다고 답합니다.
어디 제품이냐고 묻자, 자세한 유통과정은 안전상 알려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윤정원/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
″임신 주 수가 올라갈수록 사실 임신 중지에 있어서 출혈이라든지 통증이라든지 아니면 배출까지 소요되는 시간 같은 것들이 길어지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술적인 처치라든지 이런 그 필요성이 더 늘어나게 되는 거거든요. 15주까지 약을 주고 이걸 먹으면 된다고 하는 거는 무책임한 행동인 거죠.″
스트레이트는 ′국내 판매 금지′상태인 미프진이 실제 배송되는지, 또 어떤 형태로 전달되는지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구매해봤습니다.
55만원을 입금하자 일주일 만에 도착한 택배.
중국 웨이하이에서 출발해 인천항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택배의 품명은 ′초콜릿′.
포장을 뜯자, 중국어로 ′정제형 사탕′이라고 적힌 영양제 통이 나왔고, 그 안엔 비닐로 대충 포장한 알약 5개가 들어 있습니다.
약에 대한 안내문이나, 변질을 막기 위한 방습제도 없었습니다.
이 약이 과연 미프진이 맞는 건지, 믿고 먹어도 되는 건지 약품 성분 분석업체에 의뢰해 보려 했지만, 표준이 되는 정품의 성분이 국내에 없기 때문에 단기간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아무런 안전성 검증 없이 그냥 먹어야 하는 겁니다.
[이동근/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
″정확하게 품질 보증을 받은 시설에서 안전하게 생산된 약인지를 보증 받을 수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서 그냥 밀가루를 타정해서도 약을 만들 수 있거든요. 정상적인 약이라고 하더라도 그(유통) 과정에서 엄청나게 더운 조건이라든지 습한 조건에서 오랜 기간에 보관되었을 경우에 품질을 보증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거든요.″
지난 5년간 식약처가 적발한 임신 중지 약물 온라인 거래 건수만 2970여 건에 달합니다.
정부는 현재 국내에서 매년 약 3만 건의 ′임신중지′가 이뤄지고 있는 걸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2천3백여 건은 약물 복용에 의한 임신중지로 보고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브로커를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구하는 경우도 상당수 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
″병원에 가기 어려운 상황은 굉장히 다양하게 있어요. 더 안전하고 확실하게 임신 중지를 할 수 있고 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지금 이걸 의료 체계 안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비공식적인 통로로 이용을 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약을 우리나라에선 왜 허가하지 않는 걸까.
식약처는 임신 중지 관련 법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 중지가 가능한 요건들을 제한하면서, 임신 중지 방법에 대해선 ′수술′이라고만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2021년 이후 식약처가 받은 6건의 법률 자문 중 4건은 ″법 개정 없이도 임신 중지 약물 허가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남인순/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복지위 국정감사, 2025년 10월 21일)]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고, 심사 가능하다고 여기 나오잖아요.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오유경/식품의약품안전처장]
″그런데 그 의견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그런 부분들이 좀 있어서요.″
식약처는 ″법률 자문은 정책 검토에 참고할 목적일 뿐″이라며 여전히 법개정이 우선이란 입장입니다.
[이동근/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
″식약처 내부에서 욕을 먹지 않으려면 눈치를 잘 봐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눈치 보기의 결과가 이 임신 중지 약물을 도입을 지연시키고.″
현재 의사의 처방을 받아 미프진 등 임신중지약을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지만,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진]
″′자식을 낳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법을 발의할 수 있느냐.′ 거의 욕과 가깝게 느껴지는 정도의 말씀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팩트 체크를 해서 설명을 드려도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법 개정이 지체되는 사이, 여성들은 검증되지도 않은, 그리고 검증할 방법도 없는 음성적인 임신중지약 거래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양현아/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법적인, 사회적인, 또 심지어 윤리적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태를 우리 정부와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정부와 우리 입법부는 낙태죄가 있었던 형법의 시대에 그대로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솔직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임상재 기자 ▶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면서 동시에 태아 역시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핵심 이유였습니다.
이에 따라 형법의 낙태 처벌조항은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당연히 임신중지와 관련된 법들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해야 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의료 현장은 혼란스럽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습니다.
<B>■ 벌써 7년‥방치된 ′혼란′</B>
무려 66년간 유지됐던 낙태죄.
형법에선 ′성폭행을 당했을 때′나 산모의 건강이 위험할 경우 등 5가지 경우를 빼고는 낙태를 모두 처벌하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헌재는 이 형법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위헌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은애/당시 헌법재판관 (2019년 4월 11일)]
″임신한 여성에게 스스로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지위를 단 한 번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그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 또는 박탈하는 것입니다.″
헌재는 임신 22주까지는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방안을 의견으로 제시하기도 하면서, 국회가 약 2년의 유예기간 안에 법을 새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예기간이 지나면서 낙태처벌조항은 위헌으로 효력을 상실했지만, 국회의 법 개정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입니다.
임신 중지, 즉 낙태는 합법인 건지, 가능하다면 언제까지 가능한 건지, 임신 중지 사유에 제한이 사라진 건지, 모든 게 불분명해 의료 현장에선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0대 학생]
″저는 (낙태가) 불법이라고 알고 있어요.″
[20대 직장인]
″낙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딜 가야 되는지, 솔직히 이게 불법인지 합법인지도 잘…″
산부인과 의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임신 중지 수술 자체를 거부하는 곳도 많고,
[A 산부인과]
″<혹시 낙태도 하세요?> 아니요. <안 하세요?> 그런 건 개인적으로 알아보셔야 돼요.″
[B 산부인과]
″(낙태 수술) 안 합니다. <원래 병원에서 가능하지 않아요?> 저희는 안 합니다.″
수술을 한다고 해도 기록으로 남기길 꺼려하면서,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C 산부인과]
″<진료 기록은 어떻게 돼요?> 현금으로 하시면 기록 안 남게 하실 수 있어요.″
[D 산부인과]
″<비용은 어느 정도..> 110만 원. 수술비만 그 정도 드시고. 저희는 이제 한 15주? 14주, 15주까지밖에 안 돼요. 그런데 금액은 계속 뛰는 거예요.″
이렇다 보니, 산모들끼리 알음알음 병원을 물으며 전국을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3년 전, 시험관 시술로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임신했던 40대 김지영 씨(가명).
하지만 임신 20주가 됐을 때, 태아가 다운증후군 확정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지영 (가명)/′임신 중지′ 수술]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너무 컸어요. 얘보다 제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아이가 홀로 남았을 때 사회적 시선, 그다음에 키워야 하는 경제적 부담은…″
고심 끝에 눈물을 머금고 임신중지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지만, 더 큰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우선 다니던 산부인과 의원에서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김지영 (가명)/′임신 중지′ 수술]
″′우리는 낙태는 안 한다 윤리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곳을 추천을 해 달라′ 그랬는데 ′그거는 산모님이 직접 알아서 하셔라′라고 얘기를 하는데 정보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결국 직접 인터넷 등을 통해 수소문해서 차로 2시간 거리의 병원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은 물론, 아직도 임신중지를 불법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더욱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김지영 (가명)/′임신 중지′ 수술]
″(임신) 주 수가 올라가면서 천만 원 정도는 나오겠구나. 선택지 자체가 가릴 수가 없는 거죠. 그냥 그 사람(인터넷 게시자)의 말만 믿고 가야 되는 거예요.″
[김희선/대한산부인과학회 부사무총장]
″의사의 거부권은 개인의 신념이나 어떤 진료를 하는 데 있어서 개인 의사의 소명 같은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하는데, 다른 병원을 제안을 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조금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야 접근성에 제한이 안 생기겠죠.″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30만 원 미만의 비용으로 가능하지만, 현재 건강보험은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에 예외로 분류됐던 상황, 즉 성폭행 등 다섯 가지 사유에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유지연/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UN의 여성차별철폐위원회나 국제기구인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임신 중지를 비범죄화하고 접근성이나 의료 서비스 공공성 보장을 위해서 반복적으로 권고해 왔거든요. 저희가 봤을 때 명백하게 정부의 직무 유기이고 정치적 책임 회피의 결과라고 봅니다.″
도대체 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걸까.
스트레이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22명에게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의 입법 공백, 모자보건법 개정에 대한 입장 등을 물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7명, 조국혁신당 1명 등 총 8명이 서면답변을 보내왔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아무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실 관계자]
″<보건복지위 간사로 계셔서 혹시 의견을 여쭙는 질의서를 보내드려도 될까 해서요.> 다음에 좀 하겠습니다. 저희. <그럼 아예 질의를 안 받으시는…> 네.″
답변을 한 의원들은 ′입법 미비′로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22대 국회에선 법안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안 마련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정치권의 태도″ 등을 꼽았습니다.
에둘러 말하고 있지만, 결국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 역시 종교계를 중심으로 한 ′낙태 허용′ 반대 여론 때문입니다.
[김양재/목사 (제52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2020년 9월 28일)]
″낙태 허용법은 우리가 막지 않으면 영원히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법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과거 오랫동안 태아의 생명권 앞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사실상 무시돼 왔습니다.
[김수정/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
″어떤 여성이 임신 중단을 일삼아서 하겠습니까? 자기 몸이 상하는 거고. 모든 전체 임신부터 중단, 출산, 양육까지 모든 과정에서 보편적인 권리를 인정받고 지원을 받아야 되는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써 권리 침해가 되고 있는…″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역시 중요하며, 동시에 이 두 권리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서기석/당시 헌법재판관 (2019년 4월 11일)]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낙태죄는 이미 위헌이라는 헌법적 판단이 끝난 상태.
임신 여성의 결정권을 확대하는 동시에 임신 주수에 따른 허용 기준을 명시하는 등 제도적 입법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김지영 (가명)/′임신 중지′ 수술]
″내 애를 보내는 거는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거든요. 임신도 어려웠지만. 다시 언제 찾아올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정말 어려운 경우인데. 위헌 판결은 났지만 아직도 불법 같은. 판결만 나고 정확히 제도적으로 된 게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