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조국현

[외통방통]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① 통일로 대국 우뚝 선 독일, 그러나

입력 | 2019-07-20 11:22   수정 | 2019-07-20 12:46
1989년 11월 9일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냉전의 유물이 해체됐고,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독일은 통일됐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꼭 30년이 된 2019년. 한반도에서도 사상 유례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랜 적대관계였던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평화로 가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는 독일에서 어떤 점들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봤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상징, 베를린 돔(Berlin Dome) 옆에서는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립니다. 그곳에서 엽서 한 장을 샀습니다. 엽서에 담긴 돌은 ″30년 전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파편″입니다.
‘냉전의 유물’ 베를린 장벽은 이제 세계 21개 나라, 100명 넘는 화가의 캔버스가 돼있습니다. 동서 베를린을 가르고, 160 km에 달하는 서베를린 전체를 둘러쌌던 높이 3.6m의 베를린 장벽. 그 벽이 무너져 내린 지 30년이 된 지금, 독일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통일하니 행복하십니까?″
통일 독일, 정치 경제 대국으로 성장

1991년 서독의 43%에 불과했던 동독의 1인당 GDP는 5년만인 1996년 68%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동독은 ‘급속한 경제 부흥기’를 경험했습니다. 독일은 연평균 3억 유로 이상을 동독 지역 현대화 작업에 투자했습니다. 특히 93년부터 2000년까지는 서독 도시재건 비용의 3배를 동독 지역에 지출했습니다.
그 결과 동서독의 임금 격차도 줄었습니다. 1991년 동독 주민의 1인당 평균 연봉은 서독의 절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엔 서독 주민의 78%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구 동독 지역에서 첨단산업도 발전했습니다. 세계 태양전지의 1/6이 동독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통일은 독일을 경제강국에서 정치·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인구 8,200만, GDP 4조 달러로 유럽연합 최대 국가가 됐습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명실상부한 유럽연합 대표 국가로 우뚝 선 겁니다.
하네스 모슬러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통일이 되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 동독 지역 출신인 토마스 마이어 전 라이프치히 폴크스자이퉁 대기자는 “독일 통일은 성공적인 역사”라고 평가했습니다.

구 동서독인들 사이의 갈등…″우리는 2등 시민?″

그러나 그늘도 있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격차가 문제였습니다. 1990년 동서독 경제가 통합되면서 동독 지역 제조업체의 40%가 통일 직후 문을 닫았습니다. 동독 지역에서는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습니다. ‘통일이 아니라 식민 통치의 시작’이라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동독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 지역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습니다. 남은 동독 청소년들은 꿈을 잃었고, 소외감이 커졌습니다. ″서독인들은 돈은 많지만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불만이 분노로 커져갔습니다. 서독인들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왜 굳이 통일을 해서 내 것을 동독에 떼어 주는가?″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하네스 모슬러 교수는 ″동독 지역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라이프치히 대학 교수를 지낸 볼프 스카운 박사 역시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은 ′독일의 2등 시민′이라는 좌절감을 갖고 있다″며 서독인들의 태도에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의 좌절감은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로 이어졌습니다. 독일의 AfD는 나치 시절이나 동독의 공산정권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난민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얀 예멘되르퍼 라이프치히 폴크스자이퉁 편집장은 ″난민을 공공의 적으로 묘사하면서 동독 주민들이 불만족스러워 하는 것을 긁어주는 식으로 지지율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경제 격차가 통일전 동서독보다 훨씬 크고, 독일과 달리 전쟁까지 겪었다는 점에서,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큰 문제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2편에서는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그 고민을 담았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평화저널리즘 연수 중 취재를 통해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