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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줘! 경제] 똑똑한 소비자가 왜 ‘환경호르몬 아기 욕조’를 샀을까

입력 | 2020-12-15 09:25   수정 | 2020-12-15 11:41
지난 10일, 산자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은 대현화학공업이 제조한 ‘코스마 아기욕조’에 리콜 명령을 내렸습니다. 배수구멍을 막는 회색 플라스틱 마개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의 일종인 DINP가 612,500ppm 검출됐기 때문입니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딱딱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 때 넣는 성분인데, 장기간 노출되면 간과 신장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면역이 약한 아이들에겐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 때문에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제품의 경우 1,000ppm을 넘으면 판매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적발된 아기 욕조 마개에서 나온 양은 기준치의 612.5배나 되는 겁니다.

문제는 이 아기 욕조가 생활용품점 ‘다이소’에서 널리 팔린 제품이라는 겁니다. 지난 10일 환경호르몬 검출 보도가 나간 뒤, 인터넷 맘카페 등에는 이 제품을 구매한 부모들의 분노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왔습니다. 반면 뉴스를 본 시청자 중 일부는 “왜 다이소에서 값싼 아기 욕조를 샀느냐”며 피해 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차적으론 제조사와 판매사의 책임이 크더라도, 2차적으론 아기용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한 부모들도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걸까요?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없어서 못 팔았던 다이소 아기욕조</strong>

코스마 아기욕조는 ‘국민 육아템’이었습니다. 다른 욕조들에 비해 작고, 등받이 각도가 낮아 목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를 씻기기에 딱 좋았습니다. 무게도 가벼워 사용하기 편리하고, 욕조 바닥에 배수구멍이 있어 물을 버리기도 쉬웠습니다. 가격까지 합리적이다보니 생후 6~7개월까지 이 제품을 사용하다 아기가 크면 다른 아기 욕조 제품으로 바꿔 사용하는 부모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중국산인 다른 욕조들과 달리, ′MADE IN KOREA′란 점도 인기비결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육아 정보에 빠르고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부모들일수록 이 제품을 많이 찾았습니다. 지난해 10월 다이소에서 판매를 시작한 뒤, 육아 정보 사이트와 블로그, 유튜브 모두 이 욕조를 추천하는 후기들로 넘쳐났습니다. 산후조리원도 산모들에게 이 욕조를 선물로 줬습니다. 아기 부모들에게 이 욕조는 ‘출산 전 필수 준비물’로 여겨졌고 없어서 못 사는 수준이었습니다. 다이소 매장에서 욕조 재고가 금방 소진되다보니 온라인 쇼핑몰에서 2배 넘는 돈을 지불하고 이 제품을 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국가 안전기준 통과한 ‘KC인증’ 제품‥배신감 더욱 커</strong>

무엇보다 이 제품에는 ′KC인증′ 마크가 붙어 있었습니다. KC인증은 국가가 정한 소비자 안전 기준을 통과한 제품에 주어집니다. 국가가 안전성을 보증한 제품인 셈입니다. 모든 제품이 KC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어린이 제품은 KC 인증을 받아야만 시중 판매가 가능합니다. 면역이 취약한 어린이를 위해 국가가 더 신경써서 제품 안전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KC인증 제품도 동일한 규제가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안전인증′, ′안전확인′, ′공급자 적합성 확인′ 이렇게 세가지 경우가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안전인증’ 제품은 카시트, 어린이 구명조끼, 튜브 등 제품에 생긴 문제가 아이 생명에 직결되는 제품을 말합니다. 따라서 안전인증기관으로부터 안전인증을 받아야 제품 출고가 가능하고, 2년마다 한 번씩 제품 검사와 공장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두 번째, ‘안전확인’ 제품은 보행기, 유모차 등 제품에 생긴 문제가 아이 신체에 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제품입니다. 제조업자는 출고 전 지정 검사기관에서 안전성 검사를 받고, 그 내용을 안전인증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이 경우 안전인증처럼 인증기관이 실시하는 정기적인 검사 또는 심사를 받지 않습니다. 대신 안전확인 제품 시험 성적서의 유효기간이 5년으로 제한돼, 5년마다 성적서를 갱신하기 위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급자 적합성 확인’ 제품은 안전인증, 안전확인 제품을 제외한 나머집니다. 이 경우 제조업자는 물건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판매처에 공급자적합확인 제품이라고 표시하면 됩니다. 인증기관에 신고나 인증할 필요가 없고, 정기적인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쉽게 말해, 업체 스스로 제품 안전을 확인하면 판매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기 욕조는 어떤 제품에 해당될까요? 아기 욕조는 공급자 적합성 확인 제품입니다. 제품 자체가 아이에게 위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명조끼나 튜브 같은 안전인증 제품은 불량일 경우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보행기나 유모차도 불량일 경우 아이가 다칠 수 있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욕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다치거나 생명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번처럼 제품 원료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인증기관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아기 욕조 제조업자들은 스스로 제품을 검사한 뒤 별도 신고 절차 없이 ‘KC인증’을 달아 욕조를 팔 수 있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인증 후 원료 바꿔도 몰라‥KC인증의 함정</strong>

코스마 아기욕조 제조판매사는 지난해 8월 욕조의 안전성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욕조통, 머리받침용 스펀지, 회색 플라스틱 마개 모두 검사했는데 결과는 이상없음. 안전하고 문제 없는 제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시험 성적서는 판매 홈페이지에 게재됐고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제조를 시작했고 그 다음 달부터 ‘KC인증’을 달아 다이소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기술표준원이 확인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성분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리콜명령이 내려진 대현화학공업 대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PVC원료 500kg이 잘못 들어왔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그대로 아기 욕조를 생산했다.”

제품 원료가 바뀌었는데 그 사실을 몰랐고, 의도치 않게 해로운 성분이 더 많이 함유된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실수인지 아니면 안전성 검사를 통과한 뒤 다른 원료로 바꿔 쓰다가 적발이 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공급자적합성확인′ 제품은 인증 당시의 제품 또는 원료가 나중에 팔리는 과정에서 달라져도 알아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최초 인증 당시 검사를 담당했던 연구원도 이와 같은 안전성 검사의 한계를 인정했습니다. 연구원 A씨는 “안전성 검사는 업체 측이 골라서 제출한 시료를 검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차례 검사만으로 업체가 생산한 모든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조업체가 공개한 시험성적서에 ‘문제 없다’고 적혀 있어도, 나중에 제조업체가 원료를 바꾸거나 다른 재료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KC인증을 받기 위한 안전성 검사는 행정 절차에 불과할 뿐, 그 자체만으로 제품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진 않습니다. 산자부 국표원은 일 년에 다섯 차례 무작위로 제품을 골라 안전성 조사를 실시합니다. 시기별 수요에 맞춰 많이 팔리거나 사용될 제품들을 선정해 안전기준 준수 여부를 검사하는 겁니다. 국표원은 지난 10월부터 두 달 간 1,192개 제품을 검사해 326개 제품에 리콜 명령 또는 권고를 했는데, 그 중에 대현화학공업이 만든 코스마 욕조도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우연에 의존해야 합니다. 국표원이 시중에 있는 모든 제품을 구매해 검사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의 경우, 국표원이 ‘우연히’ 유아용 욕조를 검사 대상에 포함시켰고, ‘우연히’ 코스마 아기욕조를 구매해, ‘우연히’ 검사에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만약 유아용 욕조를 검사 분야에 포함하지 않았거나, 코스마 아기욕조를 구매하지 않았거나, 검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면 아기욕조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반대로 우연히 검사를 피한 어떤 문제 제품이 우리 생활 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KC인증’ 제품, 아무리 싼들 비지떡은 아니어야 한다</strong>

아기욕조 문제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국가가 믿고 인증한 제품에서 허용치 612배에 달하는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건, 다른 KC인증 제품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우리에게 남깁니다. 실제로 이번 산자부가 실시한 안전성 조사에서 66개 KC인증 제품이 적발돼 인증이 취소됐습니다. 전기요, 전기장판, 카시트, 백열등 등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제품들이었습니다. 당장 이 글을 보고 있는 컴퓨터, 노트북, 휴대전화 모두 KC인증을 받은 제품입니다. 우리가 지금 만지고 있는 이 전자제품에서 허용치를 훨씬 넘기는 환경호르몬, 발암물질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결국 KC인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가격이 아무리 싼 제품이어도 ‘KC인증’을 받았다면 믿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안전 보증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리적인 제품 비교, 소비가 가능합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산자부 측은 현행 어린이 제품 안전 기준이 적정한지 검토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는 행정 절차 수준에 불과한 KC인증 검사가 실질적으로 제품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겠다는 건데요, 합리적인 구매를 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다신 없을 방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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