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임명현

[국회M부스] 김태년 원내대표, 통일부장관에게 '미안하다' 한 사연?

입력 | 2020-09-11 13:46   수정 | 2020-09-14 09:22
■ 두 달째 미뤄지는 공수처 출범…현 상황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여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7월 15일 출범했어야 하지만, 두 달 가까이 후보 추천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당 교섭단체인 국민의힘이 자당 몫의 후보 2명을 추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7명으로 구성됩니다.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려면 7명 가운데 6명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야당 측 2명이 반대하면 추천될 수 없습니다.

추천위원회를 구성해도 야당 측 추천위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공수처장 후보를 결정하고 이후 인사청문회 등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데, 지금은 추천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 공수처법 ′모법′ 개정 만지작거려 보지만…

이 교착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공수처법 ′모법′을 개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개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 발의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범계 의원(민주당)의 안을 보면, 야당 몫 2명을 국회의장의 결정에 의해 한국법학교수회장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한을 정해두고 기다려보다가 끝까지 호응이 없으면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죠. 가장 빠른 길이긴 하지만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방안인 것도 맞습니다.

야당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할 것이고, 시행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모법을 개정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여당과 야당은 이후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야당의 견제장치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의 기본이라는 말에 설득력이 있습니다.
■ 공세…″내가 찬성하지 않은 법은 안 지킨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만큼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공수처법은 국회 본회의에서 과반수 이상(160석)의 동의를 얻어 가결된 법안이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자 사실입니다.

국민의힘 역시 과거 여당 시절 야당의 반대를 뚫고 미디어법과 테러방지법, 노조법 개정안 등을 처리한 바 있습니다.

이 법들, 지금 시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이 점을 지적했습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내가 찬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회민주주의의 자기부정이 된다.그것은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만 지키면 된다는 위험한 신호가 될 것이다] 라고 말이죠.
■ 반격…″특별감찰관·북한인권재단은 왜 방치하나?″

다음날 같은 연설에 나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 메시지를 인용하며 호응했습니다.

[어제 이낙연 대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다] ′참으로 옳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단서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통일부와 민주당은 4년 전 합의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따른 북한인권재단 이사를 왜 추천하지 않고 있나? 지난 정부에서 시행되었던 대통령 특별감찰관을 왜 3년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는가? 이 두 문제를 어떻게 할지, 명확히 답해달라] 주 원내대표는 이 두 가지가 여권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한다고 봤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관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당에게 북한인권 문제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특별감찰관 문제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이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필요하지만 공수처와 기능이 겹친다는 것입니다.

곧 특감의 기능을 포함한 공수처가 출범할텐데, 여기에 특별감찰관까지 있으면 오히려 사정기능의 과잉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고민이었습니다.
■ 반전…여당의 예상밖 ′수용′

그런데 주 원내대표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야당이 공수처 출범에 협조한다면 위 2가지, 받겠다는 것입니다.

김 원내대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순서 논란이 일 조짐이 보이자 하루 만에 한 발짝 더 나갔습니다.

동시에 하자는 것이죠. 공수처와 북한인권재단, 특별감찰관 추진을 동시에 해나가자는 제안을 역으로 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당의 입장이 어떻게 갑자기 바뀐 것일까요? 취재 결과 내부 논의가 있었습니다.

김 원내대표는 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전하고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마침 이 장관이 취임 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물물교환’을 비롯한 여러 구상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강하게 반발할 북한인권재단 문제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에 인간적인 미안함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직전 원내대표였던 이 장관 역시 현 정부에서 ‘공수처’라는 개혁과제가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입니다.

본인이 직접 공수처법 처리를 주도한 바 있죠. 그런 점에서 협의는 원활하게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특별감찰관 문제 역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부 등과 조율을 거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낙연 대표 역시 이 같은 구상에 흔쾌히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이 대표야말로 공수처 문제가 고민이었습니다.

취임일성으로 제시한 ‘정책협치’를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공수처법 개정을 추진하면 관계 냉각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핵심 권력기관 개혁과제인 공수처 문제를 이대로 놔둘 수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 원내대표의 계획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협치의 걸림돌? 물꼬? 갈림길…공은 야당으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일단 선뜻 호응하지 않았습니다.

′함정′이 있는 제안이라면서 여당이 특별감찰관과 북한인권재단 문제를 ‘먼저’ 하면 그때 공수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기자들과의 문답 과정에서 나온 말이고, 당 회의 같은 공식 메시지의 형식으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동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그러나 주 원내대표가 계속해서 같은 입장을 고수한다면, 여당의 냉소 또한 깊어질 것입니다.

공수처를 계속해서 ‘협치의 걸림돌’로 둘 것이냐? 오히려 ‘협치의 물꼬’로 반전시킬 것이냐? 공은 야당으로 넘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