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수연

[World Now] 경찰 개혁의 걸림돌은 경찰?…"우리가 짐승이냐" 거센 반발

입력 | 2020-06-11 08:58   수정 | 2020-06-11 09:01
″우리를 짐승 취급하지 말라″ 美 경찰 반발

현지시간 8일, 미국 뉴욕시에서 열린 경찰들의 기자회견.

마이크 오메라(Mike O′Meara) 뉴욕경찰자선협회 회장은 동료 경찰 수십 명 앞에서 소리쳤습니다.

<i>″우리를 짐승이나 깡패처럼 취급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우리는 대화에서 소외되었고 비난받고 있습니다. 역겨운 상황입니다. 역겹습니다.″ </i>

그는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모든 경찰이 비난받고 있는 상황에 분개했습니다.

<i>″흑인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하교길에서 경찰에게 죽지 않고 돌아오길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저는 데릭 쇼빈(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누른 경찰)이 아니고, 이 사람들도 그가 아닙니다. 그는 사람을 죽였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i>

3분가량의 연설 내내 그는 경찰이란 직업을 부끄럽게 만든 미니애폴리스 경찰 데릭 쇼빈을 콕 집어 비난하면서도, ″의원들과 언론들이 모두 우리 직업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며 언론과 의회도 원망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 뱃지를 들고 동료 경찰들을 바라보며 소리쳤습니다.

<i>″이 뱃지는 더럽혀졌습니다. 미니애폴리스의 누군가 때문에. 하지만 그거 알아 여러분? 나는 경찰인 게 자랑스러워. 은퇴할 때까지 계속 자랑스러울 거야.″</i>
플로이드가 쏘아올린 ′경찰개혁′ 움직임에 반발

현직 경찰이 기자회견까지 자처해 자신들을 항변하고 나선 건 미 전역에서 불고 있는 경찰 개혁 바람 때문입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선 대규모 시위가 열흘 넘게 지속되고 있고, 경찰의 과도한 무력 진압 관행을 예방하기 위해 개혁도 논의되고 있는데요.

경찰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뉴욕 경찰은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비난하자 다음날 뉴욕 경찰국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지사는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잘 못하고 있다고만 한다″

″경찰들은 요즘 벽돌과 병, 바위 등을 맞으며 체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주지사에게 일격을 가했습니다.

경찰의 공권력 진압 방식이 극도로 제한되면서 시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지난 4일 뉴욕 버펄로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75살 노인을 밀쳐 중상을 입힌 경찰 2명이 무급 정직과, 2급 폭력 혐의를 적용받았는데요.

이 경찰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버펄로 경찰 기동대응팀은 이에 동의하며 지난 6일 항의의 표시로 집단 사임계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노조도 최근 에릭 가세티 시장이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장이 경찰을 살인자로 묘사했다. 모욕적이고 비열하다″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경찰 개혁 법안 발표…경찰 개혁 가시화?

하지만 경찰들의 이런 반발은 개혁의 큰 흐름을 막는덴 역부족입니다.

지역별로 경찰 개혁안에 대한 구체적 내용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는데요.

미국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2020 경찰 업무 정의법′ 초안도 공개됐습니다.

업무수행 중 인권을 고의로 침하거나 무시·묵살한 경찰은 기소하고, 인권을 침해한 경찰에 대한 공무원 면책권을 약화시키는 한편, 경찰의 무력사용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경찰의 직권 남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이 법이 경찰노조나 보수 진영의 강력한 반대를 부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뉴욕주에서는 경찰관의 징계 기록을 비밀에 부쳐왔던 법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선 경찰 폭력의 피해자에게 장례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하고 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입니다.

워싱턴 DC 의회에서는 경찰이 체포 등의 이유로 시민들에게 접근할 때 바디캠을 착용하는 것을 의무화합니다.

위법 행위 이력이 있는 경찰의 고용을 금지하고 경찰의 무력 사용 제한을 포함하는 법안은 만장일치 지지를 받았습니다.

샌디에이고 등에서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원인이 된 경찰의 목누르기 진압도 금지했습니다.
시민들 반응은? ″우리를 보호한다는 믿음 줘야″

이런 경찰 개혁 논의 움직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플로이드 사망이 촉발한 인종 차별 시위에서는 최근 ′Defund Police(경찰 예산 철회하라)′는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경찰을 해체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경찰′이 되도록 개혁하자는 거라고 말합니다.

워싱턴DC 주민 바렛 범포드 씨는 ″경찰 예산을 끊는다는 의미는 경찰청을 완전히 해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을 재고하자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메릴랜드 주민 비버리 힐 씨도 ″(경찰의) 나쁜 관행을 없애고 좋은 관행으로 바꾸자는 것″이라며 ″내가 경찰에 전화할 일이 생기면 전화할 수 있길 바란다. 그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싶다″며 시위에 동참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외신들은 ″그동안 경찰 직권 남용 개혁의 최대 걸림돌은 경찰노조″였다며 이번에도 경찰 노조 때문에 경찰 개혁이 순탄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망했습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경찰노조가 2014년 이후 지방선거에서 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며 지방 정부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경찰 개혁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올해는 범죄가 덜 일어난 강력한 해″라며 ″우리를 평화롭게 살게 해준 경찰 덕″이라고 경찰을 두둔했는데요.

일부 경찰들은 ″우리를 짐승이나 깡패로 취급하지 말라″고 했지만, 시민들 입장에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위에는 무릎을 꿇으며 동참한 수많은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내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도 크다고 할 수 있겠죠.

시민들과 정치권, 내부 자성의 목소리까지 합쳐진 경찰 개혁 요구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