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2-15 11:40 수정 | 2021-02-15 16:31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오랜 투병 끝에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던 가운데 오늘 오전 영면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황해도에서 출생‥전쟁·분단 겪으며 통일 문제 고민]
</strong>
1932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46년 부친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국민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지만 남북 분단으로 가족들이 헤어지는 비극을 겪으며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1950년대엔 농민·빈민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문맹 퇴치를 위한 야학에 참여하던 중 1960년 4·19 혁명에 뛰어들었고, 이후 1964년 재야 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투옥·고문 속에서도 한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
</strong>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고, 1986년에는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한 뒤, 이후에는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통일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한복 차림의 백발의 투사는 노령이 되어서도 전국의 투쟁 현장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을 비롯해 한미 FTA 반대 운동, 용산 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 등에서 온몸으로 싸웠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한 촛불집회에는 23차례 중 단 한차례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달동네·새내기 등 순우리말 만들어 확산시키기도]
</strong>
백 선생은 여러 순우리말을 발굴해낸 문필가이자 이야기꾼이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달동네′와 ′동아리′라는 말을 만들어 널리 퍼뜨렸고, 대학교의 MT는 ′모꼬지′, 신입생은 ′새내기′로 고쳐 쓰는 등 순 우리말을 확산시켰습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한 백 선생은 ′항일민족론′,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등 여러 저작도 남겼습니다.
2019년 3월 장편 서사 <버선발 이야기>를 병상에서 출간한 뒤, MBC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인은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고자 한다″며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라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누구나 사람답게 살고자 해…올바로 잘 사는 것이 사람의 삶″]
</strong>
당시 고인은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며 ″일을 통해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올바로 잘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고 백기완 선생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7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