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로버트 롱이 페이스북에 올린 ′중국인에 맞서 싸우자′고 한 혐오 포스팅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사건 발생 초기에 경찰은 이미 아시아계라는 특정 인종이 표적이란 것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MBC는 사건 당일 사망자들과 평소 안면이 있고 이미 현장에 가 있다는 한인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리무진 택시 영업을 오래 해 사망자를 비롯해 한인들과 오랜 안면이 있었고, 사건 소식도 비상 연락망을 통해 일찍 접했다.
두 명의 업소 주인은 그에게 총격 직후 경찰관이 근처의 한인 마사지 업소 5곳을 돌며 이렇게 외쳤다고 했다.
″백인 남성이 총격을 가하고 아시아인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니 빨리 문을 닫고 열어주지 말라.″ (애틀랜타 교민 김연경씨 인터뷰)
어떤 경위로 그렇게 경고했는지는 경찰 측에 확인하진 못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조지아주 체로키 카운티의 경찰당국은 초반부터 신뢰도에 금이 갔다.
결국 경질된 대변인 제이 베이커 경감의 성향은 백인 우월주의자나 트럼프 지지층과 비슷해 보였다.
그가 온라인에서 홍보한 티셔츠가 주목을 끌었는데, 미국식 중국음식점의 배달 음식을 상징하는 종이 상자에 젓가락이 꽂혀 있고 겉면에는 ″됐어요. 박쥐 덜 먹어요″(No thank you. Eat less bats)라고 적혀 있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조지아 경찰, 흑인 총격 사망때도 백인 용의자 진술에만 의존</strong>
현지 경찰이 용의자 진술대로 ′섹스 중독′이라고 성급히 결론내렸다가 뭇매를 맞았는데, 조지아주에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2월 조지아주 브런즈윅 근처에서 흑인 청년 아머드 알버리가 조깅하다가 백인 아버지와 아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레고리 맥마이클과 트래비스 맥마이클이라는 이들 부자는 알버리가 강도로 의심돼 쫓아갔고, 그가 폭력을 휘둘러 총을 쏜 것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 백인 용의자들의 진술만 철썩같이 믿고 그냥 풀어줬다.
인종주의나 증오 범죄로 판단하지 않았다.
흑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르브론 제임스는 ″우리는 매일 사냥당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인종주의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퍼졌다.
결국 뒤늦게 범행 당시 영상이 공개됐는데, 백인 부자가 먼저 공격한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건 발생 74일이 지나서야 이들은 체포됐다.
경찰관한테 목이 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그로부터 2주 뒤에 터졌다.
그리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타올랐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섹스 중독′.′성매매′ 주목하는 미국 언론</strong>
미국 언론은 어느 한쪽으로 쏠리진 않고 있다.
′아시안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집회 상황을 연일 전하고는 있지만, 용의자가 섹스 중독에 시달렸고 마사지 업소를 욕구 해소의 장으로 삼았음을 뒷받침하는 기사들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9일자 1면 머릿기사로 용의자 로버트 아론 롱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섹스 중독 재활시설에서 치료받은 전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룸메이트의 말을 토대로 작성된 이 기사는 용의자가 욕구를 참지 못해 한 달에 한번 마사지 업소를 찾았다고 했다.
다음날 워싱턴포스트는 1면에 마사지 업소의 성매매 전력을 크게 실었다.
한인 3명이 숨진 골드 스파는 2011년부터 2년 간 성매매로 적발돼 10명이 체포됐다고 했다.
또다른 한인이 숨진 길 건너편의 아로마테라피에서도 성매매가 이뤄진다는 신고가 지난 2019년 경찰에 접수됐다고도 전했다.
지면에 소개된 독자들 반응도 비슷했다.
뉴욕타임스 20일자 독자투고란에는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가 개입됐을 수 있지만, 그게 전부처럼 비쳐져서는 안된다는 의견들이 실렸다.
″용의자의 성적 성향과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에 대한 고통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존 토피, 사회학자), ″혼전 섹스를 죄악시하는 그의 교회가 주입한 가르침을 무시할 수 없다″(하비 버만, 정신과 의사)는 것이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아주 오래된 이야기의 새로운 챕터″ </strong>
사실 범행동기를 어느 하나로만 쉽게 규정할 수 있을까. 지난 일요일 백악관 근처 맥퍼슨 스퀘어에서 열린 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백인 론 커처는 ″증오 범죄냐 아니냐로 볼 필요는 없다.
둘 다일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인종에 대한 백인우월주의 테러라는 한쪽 면을 보려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다.
거리에 나온 아시아계는 증오 범죄의 본질을 ′인종주의′(racism)에 더해 ′성차별′(sexism)로 볼 것을 특히 강조했다.
현장에서 본 피켓에는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성적 집착(fetishization)을 중단하라는 문구가 유독 많았다.
애틀랜타 총격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자주 지적하는 얘기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례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재킷′이 많이 꼽힌다.
베트남전 당시 현지 매춘부가 미군 병사들에게 흥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시아 여성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성적 대상으로 각인됐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데이비드 팔룸보-류 교수(역사학)는 트윗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처럼 아시아계 여성이 순종적이고 자기희생적으로 묘사되 것 또한 그런 사례로 꼽았다.
요컨대, 제 욕구에 따라 구매할 수 있고 함부로 처리할 수 있는 대상이 돼 온 셈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메이 정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애틀랜타 총격을 미국 사회에서 반복돼온 사건임을 드러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1974년 콜로라도주 포트 칼슨 근처에서 25살 파크 에스텝이란 남성이 수지 오리엔탈 마사지라는 업소를 찾아갔다.
그는 종사자인 32살 여성은 흉기로, 주인인 36살 여성은 성폭행후 총으로 살해했다.
연차, 선옥.. 희생자들의 이름이다.
최근 잇따른 아시아계 폭행을 두고 조지아주 상원의원 미셀 오우가 말한 것처럼, 이번 사건도 ″아주 오래된 역사의 새로운 챕터″인 셈이다.
<a href=″http://more.ppld.org:8080/SpecialCollections/Index/ArticleOrders/Homicides/19740919.pdf″>1974년 콜로라도주 아시아계 마사지 업소 살인 사건 기록</a>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조지아 경찰의 선택은?</strong>
애틀랜타 총격이 벌어진 조지아주는 증오 범죄를 처벌하는 법안을 작년에야 도입했다.
앞에서 언급한 흑인 아머드 알버리의 총격 사망이 계기가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50개주 가운데 47번째로 도입했다.
조지아주는 원래 남부에서 보수의 아성이었다.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을 선택한 이래로 30년 가까이 공화당 후보만 선택했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이 가까스로 이겼다.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인종의 유입 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증오 범죄에 대한 처벌 법규를 마련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증오 범죄 적용의 경험이 짧은 조지아주에서 경찰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 박성호(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