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07 09:47 수정 | 2022-05-07 09:47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위 사진과 아래 사진이 하나로 합쳐진 사진입니다.
제가 일부러 합친 게 아니라 북한 방송(조선중앙TV)에서 이렇게 합쳐놓은 상태로 보도했습니다.
단체사진을 워낙 많이 찍어서 한장씩 보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편의상 두 장을 하나로 묶어서 보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사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위 사진과 아래 사진 모두 맨 앞줄 정가운데 의자에 홀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뒷줄부터 북한의 청년들이 빼곡히 서있죠.
아래사진을 기준으로 한 번 숫자를 세어봤습니다.
숫자를 세어보니 김 위원장의 바로 뒷줄, 그러니까 사람들이 빼곡한 첫줄이 78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줄 뒤로 15줄이 더 있었습니다.
줄마다 인원 수가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일이 다 세긴 힘들어 편의상 한 줄의 인원인 78에 총 줄수인 16을 곱해봤습니다.
계산기가 1,248명이라고 친절히 알려줍니다.
편차가 조금 있겠으나 얼추 1,200명 정도는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1,200명이 동시에 김 위원장과 기념사진을 찍은 겁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동시에 찍힌 탓에 당연히 누가누구인지 얼굴조차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 대체 어떻게 찍은 걸까요?
이 정도 규모의 단체사진을 한 번에 찍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혼식장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 찍기 전 조정해야할 게 꽤나 많습니다.
사람들의 위치를 조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말이죠.
게다가 이건 1,200명씩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바로 찍는다고 하더라도 우르르 빠져나갔다, 우르르 들어오는데만해도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이 시간 동안 김 위원장은 맨 앞줄 가운데 의자에 앉아 계속 대기해야하는 걸까요.
그럴리는 없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시간은 북한에서 아주 귀할 테니까요.
위에 올렸던 사진을 한번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사진에 그 비밀이 숨겨있기 때문입니다.
눈치채셨나요?
맨 앞줄 가운데 의자에 김 위원장이 앉아있는 건 똑같습니다.
그런데 사진 뒤쪽의 배경이 살짝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진 촬영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을 1,200명씩 여러 그룹으로 묶어서 세워놓은 뒤 김 위원장이 장소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촬영했습니다.
북한의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은 지난 6일 보도를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무려 20번이나 자리를 옮겨가시며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는데 여기에도 우리 청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과 1,200여명씩 20번에 걸쳐 촬영한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도 노동신문이 답을 내놨습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90돌 기념 열병식에서 ′바닥대열′에 동원됐던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닥대열′에 동원된 청년들이란 열병식 때 광장 바닥에 서서 꽃이나 글자 등으로 카드 섹션을 한 청년들을 말합니다.
열병식에서 일종의 배경 역할을 한 건데 이런 역할에 동원된 뒤 최고지도자와 사진을 찍은 건 초유의일이라는 게 노동신문의 설명입니다.
열병식에 동원된 청년 중엔 주로 대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지난달 25일 행사가 끝난 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내일 청년들과 사진을 찍겠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데려오라″고 당 간부에게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새벽 2시부터 대형버스 수십 대가 동원됐고 병원에 입원했던 학생들까지 소환했다고 노동신문은 보도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청년들에 앞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열병식 준비에 공을 들인 군 수뇌부와 장병, 화려한 촬영과 편집에 기여한 방송 종사자 등과 먼저 촬영이 이뤄졌습니다.
단체사진만 나흘이 이뤄졌습니다.
가히 김정은식 기념사진 정치라 부를만 합니다.
최고지도자와 함께 찍는 사진 한 장으로 체제를 공고히 하는 북한의 이런 ′사진정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얼굴조차 구별이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사진 촬영을 나흘이나 이어간 건 분명 이례적입니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을 우리 정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통일부에 문의했더니 이런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열병식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 중심의 체제 결속 강화와 김정은 정권의 정통성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이며 (사진 촬영도)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