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4-18 10:43 수정 | 2022-04-18 13:57
<b style=″font-family:none;″>< ″다스는 누구 껍니까?″ 2007년과 2018년, 검찰의 정반대 대답 ></b>
지난 2007년 12월 5일. 검찰은 투자 자문사 BBK, 자동차 부품기업 다스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된 이 후보의 혐의 모두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금융사기 사건은 꽤나 복잡해 여기서 다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주 간단히 줄이자면, 천억 원대의 피해가 나온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기업 BBK와 다스라는 두 회사가 모두 이명박 후보와 관련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정확히 2주 뒤, 이명박 후보는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습니다.
2018년 4월 9일.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객관적인 자료와 진술 등 증거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주식회사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라고 발표합니다. 수사 결과, 이 전 대통령이 다스에서 빼돌린 자금만 349억 원, 이에 따른 조세포탈도 31억 원에 달했습니다. 다스의 BBK 투자금 140억 원을 회수하기 위해 청와대와 외교 공관 등을 사적으로 동원한 것도 확인했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다시 수사한 검찰이 약 11년만에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겁니다. 이 전 대통령은 1심과 2심을 거쳐, 지난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다스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이다.″
검찰의 달라진 결론은 수사팀 의지의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권력의 유한함 때문이었을까요.
<b style=″font-family:none;″>< ″검찰 공소권 남용으로 무죄″… 사상 유례 없는 판결 ></b>
지난해 10월 14일. 대법원은 탈북민 출신 유우성씨의 대북송금 관여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무죄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매우 이례적입니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어서 무죄라고 판단한 최초 사례였던 겁니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 유우성 씨는 지난 2013년 간첩 혐의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서울시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가 탈북민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핵심 근거였던 여동생 유가려 씨의 진술은 국정원의 회유로 허위진술을 한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심지어 일부 증거들이 조작된 것도 확인됐습니다. 관련된 국정원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았고요.
그런데 수사기관의 조작 결론이 내려진 간첩혐의 2심 재판 불과 2주일 뒤에,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2014년 5월 9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가 대북송금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유 씨를 다시 재판에 넘긴 겁니다. 사실 새로운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2010년에 이미 검찰은 불법송금 혐의를 기소유예 처분했습니다. 기소유예는 혐의가 있긴 해도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 재판에서 죄를 따지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처분인데요. 그걸 4년 만에 다시 들춰내 검찰은 유씨를 법정에 세운 겁니다.
당연히 ‘보복기소’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간첩 혐의 무죄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별건 기소로 유 씨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보복기소 재판에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사유로 무죄가 확정된 겁니다.
참 공교롭습니다. 같은 날 서울고등검찰청과 산하 지검들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인천지검의 이두봉 검사장도 있었는데요. 이 지검장은 당시 보복기소를 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의 부장검사였습니다. 그가 보복성 수사를 지휘했고, 그의 결재를 거쳐 유 씨를 또다시 법정에 세운 겁니다.
이두봉 인천지검장을 향해 의원들의 거센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지검장에게 물었습니다. “사과하실 생각은 없으시죠. 그렇죠?” 돌아온 이 지검장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겠습니다. 업무처리에 유의하겠습니다.”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의원이 다시 묻습니다. “피고인의 입장에서 그간의 세월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대한민국 검사의 명예가 있다면 사과하세요.” 한동안 국정감사장에 정적이 흘렀고, 이두봉 지검장은 마침내 입을 뗐습니다. “성찰해 보겠습니다.” 그는 결국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유우성 씨는 무려 7년 동안 피고인 신분으로 지낸 뒤에서야 죄를 벗었습니다. 이 사건 담당검사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이두봉 부장검사는 검사장이 됐고, 당시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까지 지냈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 김오수 검찰총장 전격 사퇴, 수사권 없는 검찰은 의미가 없다 ></b>
김오수 검찰총장은 어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실 예상된 수순이었지만, 시점은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주변 참모들도 김 총장의 사의 표명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앞서 지난 8일 전국 고검장급 회의에서 사의의 뜻을 밝혔고, 적절한 시점만 기다려왔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사표를 내더라도 민주당의 검찰 직접 수사권 폐지 법안의 구체적 내용은 확인하고 결정하자는 공감대는 형성했던 걸로 보입니다. 지난 15일 민주당 소속 의원 172명 전원은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가 담긴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습니다. 법안 발의 이틀 만에 김 총장은 결국 사표를 냈습니다.
검사장급 검사들도 대검에서 회의를 열어 민주당의 검찰 직접 수사권 폐지 법안 움직임에 우려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과 부장검사들도 수사권 폐지 반대 의견을 모았습니다. 내일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전국 평검사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직위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선 검사들의 반발이 계속되는 모양새입니다.
검찰은 언론을 상대로 여론전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시작으로 형사부장, 과학수사부장, 공판송무부장 등이 연달아 대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 예정입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폐지될 경우, 다가올 어두운 청사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검사들의 줄 사표도 예상됩니다. 수사권을 쥐지 못한 검찰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한 검사장은 “총장 사표가 일선 검사들의 거취 결정에 물꼬를 튼 걸 수도 있다. 검수완박 법안 통과가 무르익어갈수록 사직의사가 늘어날 것이고, 법안이 통과되면 직급을 가릴 것 없이 무더기 사표가 나올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지난 고검장 회의 때, 총장과 고검장들은 ‘사직을 불사하고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에 반대하겠다’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합니다. 다만, 김오수 총장이 연일 대검찰청 대신 국회로 출근하는 등 동분서주하는 상황에서 누가 먼저 사직서를 제출할 수는 없었던 분위기였습니다. 이제 김 총장이 사직 의사를 밝혔고, 고검장들이 결단할 차례가 됐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 ″검찰공화국? 검찰이 정치권력보다 강했던 적은 없었다″ ></b>
지난 15일, 노정환 대전지검장은 기자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대검찰청 간부들의 대언론 여론전이 지방에서도 열렸던 겁니다. 노 지검장은 “검찰공화국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정치권력보다 검찰이 강했던 적은 없었다. 반대로 입법부가 검찰 권력을 마음대로 해왔다”고 말했습니다. 노 지검장은 일개 부처의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 꽤나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노 지검장의 설명은 ‘절반의 사실’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검찰보다 강하다는 건 당연한 말입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라는 명령을 받은 국회보다 검찰이 권력이 강하다는 건 가당치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권력은 4년 혹은 5년마다 다가오는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게 냉혹한 심판을 받습니다. 당장 지난달 20대 대선만 봐도 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습니다. 분명, 청와대 혹은 국회로 상징되는 정치권력이 독립적이고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검찰을 흔들었다는 생각에 문재인 정부 심판에 힘을 실었던 국민들도 있을 겁니다. 그 분노와 열망이 초유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켰고요.
검찰에 되묻고 싶습니다. 정치권력은 선거를 통해서 심판하는데, 대체 검찰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심판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공정하게 휘두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심판해야 할까요? 민주당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 법안을 밀어붙일 수 있는 건, 그 검찰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국민들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법부가 검찰 권력을 마음대로 해왔다”는 노정환 대전지검장의 표현대로 국회 다수의 힘이 검찰을 절절매게 하는 이 상황 자체를 통쾌해 하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b style=″font-family:none;″>< 검찰 고위간부의 씁쓸한 한마디 ″검찰은 반성하지 않는다″ ></b>
물론, 검찰 밉다고 ‘나쁜놈들 전성시대’를 결코 열어줄 수 없습니다. 그런 대한민국이 온다니 심히 걱정됩니다. 검찰이 기를 쓰고 자신들의 직접 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것을 결코 조직 이기주의 따위로 폄하할 수 없습니다. 검찰이 70년 넘는 역사동안 축적해온 수사 노하우는 분명 우리의 큰 자산입니다. 그걸 하루아침에 다른 수사기관에서 쌓아올리기는 불가능합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로 인해 반사이익을 얻을 경찰도 이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통화한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기업수사나 선거 사범, 금융 사건에서 검찰이 탁월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 검찰이 이 부분 수사를 할 수 없게 된다고 해서 경찰이 공백 없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검수완박 이후가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수사권 뺏어서 경찰에게 주면 된다는 식으로 형사사법체계의 변화는 절대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제 시행된지 1년이 막 지났습니다.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아직 안착되기도 전에, 사실상 검찰을 기소청으로 만드는 엄청난 변화를 다시 꾀한다는 것은 형사사법체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칩니다. 더 비대해질 경찰의 권한은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새로운 고민은 덤이고요.
그런데, 한 검찰 간부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없어지면 국민들에게 큰일 난다고만 하지, 진정성 있게 반성하는 검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 세월호 참사 이후 조직이 해체됐던 해경에서도, 부처 폐지가 검토됐던 여성가족부에서도 구성원들이 지금의 검찰처럼 집단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검찰만이 정치권력에 맞서 집단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물론, 검찰은 자신들의 권력 재조정 논의에서만 유독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b style=″font-family:none;″>< 국민 걱정한다는 고언이 감동적이지 않은 이유 ></b>
″다스는 누구 껍니까?″ 똑같은 질문에 정반대 대답을 내놨던 검찰, 책임자 누구도 사과는커녕 유감의 말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기소유예 처분을 뒤집고 보복성 기소로 탈북민을 7년간 법정에 세웠던 검찰, 사과하겠냐는 말에 ″성찰하겠다″고만 답했습니다. 법원이 공소권 남용이라며 꼬집었을 때 부끄러워한 검사들도 없었습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과′ 대신 ′성찰′을 말한 선배 검사에게 돌을 던질 용감한 후배도 없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신줏단지 모시는 검찰이 자신들의 수장이 옷을 벗자마자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는 아무런 비판이 없었습니다. 그의 최측근이 기술적 문제로 핵심증거인 휴대폰을 열지 못해 무혐의 처분되자마자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된 상황을 걱정하는 검사들도 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반성 없는 검찰의 우국지정은 그래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내일 오후, 전국에서 150명의 평검사 대표들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고민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입니다. 19년 만에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젊은 검사들에게서 통렬한 자기반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님 젊은 검사들이 만든 고민의 산물이 선배 검사들의 그것처럼 그저 또 하나의 감동 없는 메아리가 될까요. 검찰의 자기반성 없는 고언들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를 향한 시계추는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