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PD수첩팀

[PD수첩] 대한민국에서 마약계의 대모가 나온 까닭

입력 | 2022-07-05 22:34   수정 | 2022-07-05 22:34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철저히 계획된 마약 범죄, 나도 모르게 받은 택배 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 있다
- 마약여왕 최지은(가명)이 한국에 보낸 마약 9.97kg, 드러나지 않은 거래를 파악하는 암수율(10배)을 적용한 추정치 99.7kg로 697억 원에 달하는 양
- 대검찰청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 한 해 검거된 마약사범 1만 6,153명 그중 20대 최다수</strong>

5일 밤 PD수첩 <하얀 악마와 소문의 여자>에서는 지난 1월 캄보디아에서 체포돼 4월 1일 한국으로 송환된 동남아 마약 시장의 대모, 최지은(가명) 씨에 대해 취재했다. 당시 한국 인터폴의 적색수배 상황이었던 최씨. 북한 이탈 주민인 그녀는 2016년 당시 1g 정도의 마약을 투약 및 유통한 혐의로 구속된 소매상에 불과했다. 최씨가 들어간 곳은 교도소에서 일명 향방으로 불리는 곳. 전국의 마약사범들의 방이었다. 그녀는 마약사범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수많은 마약 인맥을 쌓았다. 이후 최씨는 같은 마약상의 정보를 경찰 등에 넘겨주는 야당 노릇을 했는데. 그녀는 정보제공을 대가로 1, 2심 감형을 받아 교도소를 출소한 뒤, 해외 마약계의 큰손이 됐다. 최씨는 교도소에서 만든 인맥을 통해 갖은 방법으로 한국에 마약을 들여왔다.
지난 2021년 3월 11일, 해외에서 내용물 모르는 택배를 받은 박상철(가명) 씨. 그가 받은 물건은 6일 전 인천세관에서 마약이 검출된 택배였다. 털실로 꽁꽁 감겨 이질감이라곤 하나 없던 실타래를 풀어보니 하얀 악마로 불리는 필로폰이 발견됐다. 한국에서 1g당 약 70만 원에 거래하는 필로폰이 2kg 넘게 들어있었다. 당시 검찰의 지원 요청을 받은 전북경찰청 마약수사대 최영희 형사는 박씨를 현장에서 체포했고 그를 심문하는 도중 박씨에게 한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받았던 택배를 가져갈 직원을 보낸다는 거였다. 경찰은 아파트에 잠복해 9시 40분 무렵 박씨를 찾아온 조직원과 공범을 체포했다. 박씨가 택배를 받은 이유는 최씨와 공범으로 드러난 박씨의 아들 박광수(가명)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은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7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고 박씨는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박상철(가명)의 아들 박광수(가명)는 최지은(가명)에 대해 밝혔다. 자신은 수고비를 받고 택배를 받은 심부름꾼이라는 것. PD수첩 제작진은 오랫동안 마약 관련 취재를 진행한 뉴스타파 홍주환 기자와 함께 그녀를 수소문했다. 한 마약사범은 “한국의 이름난 마약 판매꾼들은 최지은(가명)에게서 마약을 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살인청부를 두려워하며 그녀에 대해 경고하는 마약사범도 있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마약 밀수출의 거점 중 하나다. 캄보디아 마약단속국은 2021년 6천242건의 마약 사건이 있었고 1만 3천여 명을 검거, 4.43톤의 불법 마약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곳에선 80그램 이상 마약을 밀매하면 종신형까지 받지만, 현실에선 반대였다. 엄연히 ‘NO DRUGS’라고 적힌 술집. 이곳에서도 마약은 쉽게 거래되고 있었다. 한 제보자는 최씨가 포장해 한국으로 보낸 마약 중에서 세관에 걸린 것보다 걸리지 않은 게 더 많다고 했다. 한국에서 마약과 관련해 최씨를 수배 중인 수사기관은 전국 10여 곳. 재판이 완결된 사건 중에서 최씨의 조직이 마약을 밀반입한 사건은 24건이었다.

마약 판매는 최지은(가명)과 같은 상선 아래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조직 하선인 드라퍼는 구매자에게 마약을 배달하는 역할을 했다. PD수첩 제작진은 교도소를 출소하고 현재 평범한 배달원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준혁(가명) 씨를 만났다. 그는 과거 3년간 드라퍼 생활을 한 이력이 있었다. 그에게 던지기 수법에 대해 들었다. 던지기는 눈에 띠지 않는 계단이나 구석진 공간에 포장된 마약을 숨겨놓는다. 그 뒤에 건물 주소 등과 함께 사진을 찍어 구매자에게 전송한다는 거였다. 마약거래는 일대일로만 이뤄지기 때문에 단속도 어려웠다.

최근 SNS를 통한 마약거래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특정 SNS는 개인정보나 추적이 어려워 여러 마약 판매상이 선호하는 공간이었다. 각종 은어가 넘쳐나는 마약 채팅방. 해외에서 1g당 10만 원에 불과한 마약을 100만 원에 파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지난 1월 인터폴, 국정원, 캄보디아 경찰 등의 공조수사로 최지은(가명)을 검거했다. 한국 인터폴에서 적색수배를 내린 지 3년 만이었다. 현재 최씨는 교도소에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일반 사람들의 삶에도 마약은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2020년 9월 부산 도심에 나타난 외제차. 외제차는 오거리 앞에서 오토바이와 차들을 연이어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를 냈다. 외제차는 반파됐고 오토바이는 수십 미터를 날아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 사고로 7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운전자에게서 신종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독성학과 과장은 “합성대마류로 빨리 중독되고, 양을 빨리 증량하게 해 사망의 가능성이 높고 대마보다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대마초보다 환각 효과가 5배 이상 강해 의식불명을 일으킬 수 있는 합성대마는 기존 마약보다 값이 싸지만 위험성은 더 컸다. 당시 가해 운전자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올해 나이 스물셋의 한 청년. 우울증 때문에 먹기 시작한 수면제가 마약까지 번졌다. “SNS로 (마약을) 구입하고 하루에 3번까지도” 약을 구매했다는 그. 그는 “딜러가 돈 벌기 위해서 제가 죽어가는 데도 그냥 팔았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 <마약중독치유재활센터>에 스스로 신청해 들어온 그는 약을 끊은 지 한 달째다. 그는 절대 마약은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 그는 이곳 센터의 도움을 받아 휴대폰을 한 달간 반납하며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2021년 한 해 동안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 6천여 명. 그중 20대 마약사범이 가장 많았다. 10대도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4대 강력범죄의 재범률은 약 14퍼센트, 마약 관련 범죄의 재범률은 약 36퍼센트로 형사처분으로만 마약중독을 해결하기 힘들다는 견해다. 보건복지부와 시, 도지사가 지정하는 마약 중독 전문치료병원은 21곳, 병상수가 292개에 불과하다. 각 병원에 입원 치료가 가능한지 연락했지만, 즉시 입원이 가능한 곳은 6곳으로 적절한 치료가 불가능한 곳이 많았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산이 연 4억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나서서 치료와 재활에 힘써야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마약은 시작하면 스스로 멈추기 힘들다. 본인과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에 위협이 되는 만큼, 이제 마약은 단속과 치료, 예방교육을 철저히 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