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8-08 16:39 수정 | 2023-08-08 17:15
지난달 19일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숨진 고 채수근 상병. 구명조끼 같은 안전장비 하나 없이 물속에 들어가도록 지시한 사람이 해병대 1사단장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오늘(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병대 장병들로부터 확인한 제보 내용 등을 토대로 이 같은 판단에 힘을 싣는 증거 자료들을 공개했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작전 지역에 나가기 전 중대원 단체 채팅방에는 ′사단장님 강조사항′이라며 ′하의 전투복, 상의 적색 해병대 체육복, 정찰복 착용′이라는 복장 통일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때까지도 해병대 장병들은 자신들이 수해 지역에서 어떤 지원 활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인다는 걸 알게 된 건 작전 투입 1일 차인 7월 18일 새벽 5시 15분쯤이었습니다. 부대에서 챙겨온 장비가 삽과 갈퀴, 고무장화가 전부였고 구명조끼는 없었던 상태였는데, 영문을 모르던 장병들에게 사단장의 추가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인데도 ′얼룩무늬 스카프′를 모두 올려 쓰고, 웃는 표정이 나오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사단장의 질책성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복장 착용이 미흡하다, 사단장에게 경례가 미흡하다′는 등 외부에 비치는 모습에 치중한 지적이었다는 게 군인권센터의 설명입니다. 특히 이날 부대 단체 채팅방에는 ′다른 부대가 실종자를 찾았다, 오늘 실종자를 3명 정도 찾을 것으로 보인다′는 말도 오갔는데, 실시간으로 수색 목표치와 실적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습니다.
사단장이 물속에 들어가 수색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되는 지시사항도 단체 채팅방을 통해 속속 오가고 있었습니다.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지시 사항이 이날 저녁에 두 차례나 전파된 겁니다. 특히 채 상병이 소속됐던 포병 부대가 ′비효율적′이라며 콕 짚어 시정을 요구하기까지 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한편, ′장화를 신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현장에서의 우려도 있었습니다. 부대 간부가 ′안전 재난 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투입 2일 차인 지난달 19일 새벽 내려진 복장 지시사항에는 이 같은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장화와 우의, 정찰모와 갈퀴를 착용하라고만 적시됐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이 같은 증거와 증언을 종합할 때, 해병대 장병들이 물속에 들어가 수색을 하게 된 계기는 사단 지시사항에 따른 것이 명백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센터 측은 해병 1사단 지휘부가 ′해병대가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해 안전을 무시하고, 무리한 지시를 남발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도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