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함께 해온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 스튜디오 대표 겸 프로듀서에게 미야자키 감독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는데요. 돌아온 대답에 살짝 놀랐습니다.
[스즈키 토시오/지브리 스튜디오 대표]
″거짓말쟁이입니다. 진심을 잘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음 말을 듣고 조금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스즈키 토시오/지브리 스튜디오 대표]
″몇 번씩 은퇴한다고 했는데도 계속 이렇게 작품을 만드시는 것이 하하…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은퇴를 얘기하셨을 때는 정말 감독님이 그런 생각을 하셨을 거라 생각하고요.″
그도 그럴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10년 전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창작의 고통이 그만큼 컸던 것이겠죠.
[미야자키 하야오/애니메이션 감독 (2013년)]
″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기에 후회가 없습니다. 저는 늘 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 붙여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마음을 바꿔 새 작품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편히 눈 감을 수 없을 것 같아″, ′꼭 해야했던 자신의 이야기′</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스즈키 토시오/지브리 스튜디오 대표]
″이걸 표현하지 못하면 아마 죽어도 편히 눈감지 못할 것 같았겠죠.″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던 이번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가 끝난 직후 솔직한 심정은 ′어렵다′였습니다. 제 자신의 짧은 식견 탓이기도 하겠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이 마주치는 여러 생명체들과 그 여정이 뜻하는 바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대한 압박도 한 몫 했었겠죠.
지브리 스튜디오를 찾아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서야 저는 여든둘의 거장이 자신의 애니메이션 인생을 곳곳에 녹여냈다는 걸, 다시금 곱씹어 볼 수 있었습니다.
씩씩한 소녀들이 주로 등장하는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어딘지 모르게 침울해 보이는 소년 마히토입니다.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말도 없이 독단적 행보를 보이는 반항기가 어린 소년이죠.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유년시절 모습이라고 합니다.
작품 속 항공기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도, 오랫동안 투병하다 화재로 목숨을 잃은 어머니도,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였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버지와 결핵으로 9년 넘게 투병하다 떠난 어머니를 닮아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비행기를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튜디오의 이름도 이탈리아의 정찰기 이름인 Ghibli 기블리(지금은 지브리로 불리게 된)로 명명하기도 했죠. 작품 속 어머니의 유품과도 같은 책이자 작품의 제목이 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역시, 본인이 어릴 적 감명깊게 읽은 책이라고 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에게 이끌려 들어서게 된 신비의 탑.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평생을 바쳐온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뜻하는 듯도 합니다. 여러 문제에 맞서나가며 스스로를 완성해 나가는 여정. 그 길에서 마주친 여러 생명체들엔 지브리 동료들의 모습을 투영했습니다.
마히토를 신비의 세계로 안내하는 왜가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열렬한 지지자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창립을 이끌어낸 동반자 스즈키 토시오,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감독을 이끌어준 멘토 다카하타 이사오입니다. 그 외에도 미야자키와 수십 년을 함께했다 작품 시작 직전 타계한 색채 감독 등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CG 하나 없이 손으로 빚어낸 123분</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이번 작품은 요즘 시대에 그 흔한 CG 한 장면 없이 오로지 손으로만 그려냈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벼랑 위의 포뇨> 등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고 실력자로 꼽히는 혼다 다케시 작화 감독은 어느 하나 쉬운 장면이 없었지만, 만족도가 100%에 달한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친 몰려오는 파도와 타오르는 불길, 신비한 탑 안에서 날아오르는 생명체 와라와라 등 손으로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운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총 제작기간은 무려 7년.
[미야자키 하야오/애니메이션 감독 (2013년)]
″저의 장편 영화 시대는 분명히 끝났습니다. 더 하고 싶은 욕망을 저는 늙은이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물론 저는 아주 특별한 것을 창조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걸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10년 전 은퇴를 선언하며, 하고 싶은 게 있지만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던, 다음 작품을 시작한다면 언제 끝낼 수 있을지, 마무리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든둘의 나이에 또 한 번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div class=″ab_sub_heading″ style=″position:relative;margin-top:17px;padding-top:15px;padding-bottom:14px;border-top:1px solid #444446;border-bottom:1px solid #ebebeb;color:#3e3e40;font-size:20px;line-height:1.5;″><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 </div><div class=″ab_sub_headingline″ style=″font-weight:bold;″>거장이 전하고 싶었던 말은?</div><div class=″dim″ style=″display: none;″><br></div></div>
작품 중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세계가 끝나간다″며 이런 메시지를 남깁니다.
″너만의 탑을 쌓아 가거라.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거라.″
본인이 지금까지 자신의 애니메이션 세계를 만들어오며 이정표로 삼아왔던 조언일 수도 있을텐데요.
10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겼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저는 이 대사야말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번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받은 사진첩 속 그의 뒷모습이 왠지 작품 속 큰할아버지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에게 질문을 던질 수는 없어 아쉬웠지만, 지브리의 정령처럼 앞치마를 매고 스튜디오 주변을 맴돌고 있는 그를 봤다는 목격담이 잇따랐는데요. (아쉽게도 저는 이 장면을 놓쳤지만 말입니다.)
수많은 히트작에 이어, 애니메이션 인생을 녹여낸 역작을 내놓고도 여전히 아뜰리에로 출근하고 있는 그의 다음 행보가 사뭇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