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3-04-07 10:02 수정 | 2023-04-07 21:52
현지 시간으로 지난 5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에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만났습니다.
미국은 지난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만 인정하라는 요구에 따라 대만과 단교했습니다. 그 이후 미국 땅에서 처음 열린 양국 최고위급 인사의 회동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비록 회동은 비공개로 진행됐지만, 매카시 하원의장은 회동 후 기자회견을 통해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지지는 확고하고 흔들림 없이 초당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대만과 함께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차이잉원 총통도 ″흔들림 없는 지지는 대만 국민에게 우리가 고립돼 있지 않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준다″고 화답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새벽부터 이뤄진 중국 대응</strong>
그동안 두 인사의 회동을 반대해온 중국은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중국 베이징 시간으로 어제(6일) 새벽 1시쯤에 차이잉원 총통과 매카시 하원의장이 만났는데, 중국 외교부는 새벽 5시 50분에 긴급 담화문을 냈습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대만독립′ 분열세력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중국은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기 위해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제어하려 도모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군 항공모함인 ′산둥함′이 대만 동쪽 해상에서 확인됐습니다. 이달 들어 대만 주변에서 포착된 중국 군용기와 군함도 각각 68대, 20척이나 됩니다.
중국이 언급한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는 무엇일까.
항공모함까지 띄운 상황에서 이번에도 ′작년 8월의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작년 8월에 무슨 일이?</strong>
작년 8월 2일,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 창건일인 건국절 바로 다음날이었죠. 게다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제20차 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당히 민감한 시기였습니다.
중국은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대만 도착 직후, 대만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이후엔 대만 해역을 사실상 포위한 상태로 실사격 훈련까지 하는 등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했습니다. 미국과 대화 채널을 단절하기까지 했죠. 정말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퍼졌고, 미중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strong style=″font-weight:bold; font-family:initial;″># 그땐 되고, 지금은 안되는 이유</strong>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작년 8월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뒤 중국이 군사훈련을 발표하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중국이 거친 입담과 함께 항공모함까지 띄우긴 했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어제 하루 관측되지 않은 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방중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중국에게 중요한 손님입니다.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강대국이면서, 미중 사이에서 미국편만 들지 않기 때문이죠.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11월 ′유럽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편을 들지 말고 중립적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도 그에 걸맞게 마크롱 대통령을 환대하는 중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크롱 대통령은 어제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은 물론, 오늘은 광저우에서도 만납니다. 시 주석이 누군가를 두 차례나, 그것도 베이징 외 장소에서 만나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렇게 중국이 프랑스에 공을 들이고 상황에서, 작년 8월과 같은 무력 시위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호주 국립대학의 양안 관계 전문가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약 이 시점에서 중국이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면, 마크롱 대통령과 EU 집행위원장의 삶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고, 중국에 대한 유럽 내 온건파들의 힘이 상당히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미중 관계에 대해 그나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 내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두 번째 이유는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밀고 있는 ′평화의 중재자′ 이미지 때문일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와 이란은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비밀 회담을 했고, 그 결과 7년 간의 단교를 끊고 정상화에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회담을 중재한 건 다름 아닌 중국이었습니다.
이후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세계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평화 회담과 휴전′를 주문하고 있고, 프랑스와 호주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과의 관계 개선도 모색중입니다.
그런데 또 한번 무리한 군사적 행동에 나선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다를 바 없다는 이미지가 강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또 내년 1월 예정된 대만 선거도 중국이 수위조절에 나선 이유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습니다. 현재 친중 성향의 마잉주 전 총통이 중국을 방문한 상태에서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것은 마잉주 전 총통이 속한 국민당을 약화시키고 독립성향인 민주진보당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