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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뺏긴 항일 의병의 편지‥100여년만에 고국으로

입력 | 2024-08-14 18:04   수정 | 2024-08-14 18:05
100여 년 전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항일 운동에 나섰던 의병들이 쓴 편지들이 광복절을 앞두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한말 의병 관련 문서′와 ′한일관계사료집- 국제연맹제출 조일관계사료집′을 환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말 의병 관련 문서에는 1907년 조직된 연합 의병 부대인 13도 창의군에서 활동한 허위(1855∼1908) 등 의병들이 쓴 글과 구한말 대표적인 우국지사인 의병장 최익현(1833∼1907)의 서신 등이 담겨 있습니다.

문서에는 의병들이 독립운동으로 핍박받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일의지를 다지며 전술을 고민한 흔적이 담겨있습니다.

서신들은 총 2개의 두루마리에 나뉘어 제본됐는데, 가로 길이는 각각 406.5㎝, 569.5㎝에 달합니다.

국가유산청은 두루마리 첫머리에 쓰여있는 글을 토대로 일제 헌병경찰이었던 ′개천장치′(芥川長治)가 자료를 모은 뒤, 1939년 8월 지금의 형태로 제작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개천장치는 각 두루마리에 ′한 말 일본을 배척한 두목의 편지′, ′한 말 일본을 배척한 폭도 장수의 격문′이라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또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의병 투쟁을 주도한 의병장 유인석(1842∼1915)의 시문집을 만드는 현장을 급습한 뒤 ″다수의 불온 문서를 압수″했다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7월 복권기금을 통해 이 유물을 산 뒤 최근 한국으로 들여왔습니다.

′한일관계사료집′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로, 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총 4권으로 구성돼있는데, 한일 관계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부터 연대별로 일본의 침략성을 실증하고, 식민 탄압의 잔혹성과 3.1운동의 원인 및 전개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지난 5월 미국에 거주하는 한 동포가 기증한 이 자료는 3·1운동 민족대표 중 한 명인 김병조(1877∼1948)의 인장이 찍혀 있어 가치가 큰 것으로 여겨집니다.

국가유산청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1890∼1945)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1862∼1926)이 시문을 쓴 현판 ′조현묘각운′(鳥峴墓閣韻)도 환수 유산으로 함께 공개했습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나라 밖에 있던 문화유산을 국내로 되찾아온 물리적 회복을 넘어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켜왔던 정신을 오롯이 회복하는 값진 성과″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