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한 달 여쯤 지났을 때,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건을 두고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회고록을 통해 밝혔습니다.
김 전 의장이 어제 출판기념회를 열고 공개한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라는 제목의 회고록.
이 책에는 김 전 국회의장이 2022년 12월 5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를 계기로 윤 대통령과 독대하며 나눈 대화가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김 전 의장은 이태원 참사로 사퇴 압박을 받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옳다″고 조언했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팽목항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하다 12월 물러난 뒤,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고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던 사례를 거론하며 이상민 장관의 용퇴를 건의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를 들은 윤 대통령은 김 전 의장의 말이 다 맞다면서도 ″이태원 참사에 관해 지금 강하게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고 김 전 의장은 전했습니다.
김 전 의장은 ″그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윤 대통령은 ′이 사고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그럴 경우 이상민 장관을 물러나게 한다면 그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얘기를 이어갔다″고 기록했습니다.
김 전 의장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극우 유튜버의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음모론적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며 ″윤 대통령의 의구심이 얼마나 진심이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히 위험한 반응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방송은 보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고도 썼습니다.
김 전 의장은 당시 대화에 대해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으면 주변 이들이 강하게 진언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아무도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라며 ″윤석열정부의 앞날을 가늠하게 된 첫 지표가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국회의장을 지내신 분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나눴던 이야기를 멋대로 왜곡해서 세상에 알리는 건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윤 대통령은 관계기관 회의가 열릴 때마다 언론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혹을 전부 조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면서 ″특히 대통령은 당시 차선 한 개만 개방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데 차선을 열지 않은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실은 또 ″윤 대통령은 사고 당시 119 신고내용까지 다 공개하도록 지시한 바 있으며, 최근엔 이태원특별법을 과감하게 수용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