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앵커: 엄기영,백지연
3.1절 애국지사 선열의 후손들[심원택]
입력 | 1994-02-28 수정 | 199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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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애국지사 선열의 후손들]
● 앵커: 내일은 75주년 3.1절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되돌아보게 되는데, 일제시대 독립 운동가들에 후손들은 물질적으로는 그다지 풍족하지 못하다 하더라도 늘 꼿꼿하고 긍지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윤기섭 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모습도 역시 그렇습니다.
● 기자: 서울 은평구 대저동의 한 상가 건물 2층.
윤기섭 선생의 맏 딸 윤경자씨는 이곳을 가정집으로 개조해 남편과 여동생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평 남짓으로 다섯 명이 살기엔 좁은 듯싶지만 집안은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습니다.
모처럼 온 식구가 다 모였습니다.
● 윤경진(윤기섭 선생 맏딸): 상해에서 45년에 해방되고 46년에 귀국했으니까 그 때 4살이었고, 중국 상해에서의 시절이 생각도 많이 나요.
윤기섭 선생은 안창호 선생과 청년 학우회 활동 중 망명해 만주에서 신흥 무관학교를 창립했습니다.
이후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내고 해방 후 귀국했다 1950년 6.25때 납북됐습니다.
선생이 남북된 후 가족에게는 큰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 윤경진(윤기섭 선생 맏딸): 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제처 놓고 숨도 못 쉬고 살았어요.
자진 월북이다 그래서, 빨갱이다.
● 기자: 호적이 말소돼 결혼하는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정상무(윤경자씨 남편):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서 어렵게 혼인신고, 족보에 올리는 걸 이루어 졌습니다.
● 기자: 1989년 8월 납북인사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 윤기섭 선생에 대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소됨으로서 맏딸 윤경자씨의 한이 풀렸습니다.
윤 씨는 특히 지난 해 3.1절 때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준 것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윤기섭 선생의 기일이었습니다.
국립묘지에 모셔진 위패 앞에서 절을 한 가족들의 소원은 국립 묘지 안에 비석과 함께 가묘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MBC뉴스 심원택입니다.
(심원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