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엄기영,백지연

[삼일절]미주지역의 해외독립군 맹호군 발족식 자료[황외진]

입력 | 1994-03-01   수정 | 199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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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미주지역의 해외독립군 맹호군 발족식 자료]

● 앵커: 일제는 총검으로 삼일운동을 막았습니다마는 그 후 우리민족의 항일투쟁은 국내외에서 더욱 불붙게 됩니다.

오늘 MBC뉴스 데스크는 당시 미주에 건너간 한인들이 태평양 전쟁직후에 창설한 독립군부대 맹호군 발족식을 담은 영상자료를 단독 입수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국제부 황외진 기자입니다.

● 기자: 1910년대부터 미주지역에서도 독립군을 양성하려던 한인들의 노력은 1942년 8월 29일 한인 무장부대인 맹호군의 창설로 결실을 맺습니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 난 뒤 8개월 뒤 수세에 몰렸던 미군의 지원 아래 맹호군이 창설된 것입니다.

이 화면은 40년 8월29일 맹호군이 로스엔젤레스 시장과 주미 중국 대사관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식을 갖고 로스엔젤레스 시청광장으로 행진하는 모습입니다.

이날 맹호군 행진대열에는 임오군란과 일제에 의한 군대해산으로 1900년대 초부터 망명길에 나선 구 한국군들의 출신도 눈에 띕니다.

맹호군에 지원했던 한인들은 19세 청소년에서 65세 구 한국군 출신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연령에 걸쳐 있었습니다.

● 안형주: 진주만 폭격이후 진주만 폭격이 1941년 12월 9일인데 12월 22일 한국 사람들이 주정부의 검열을 위해서 한국 사람으로만 조직된 내무군을 일개 중대를 조직했습니다.

● 기자: 창설계획단계부터 맹호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 구성원임을 분명히 하고 발족전인 42년 2월에 임시정부의 인준을 받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32주년이기도 한 이날 맹호군 행진에는 미주 지역의 각계각층의 동포가 태극기와 항일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참석했습니다.

로스엔젤레스 시청광장까지 행진한 맹호군이 로스엔젤레스 시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습니다.

맹호군 창설에 주역이었던 유일한의 연설 모습입니다.

맹호군 창설은 당시 재미한족위원회 집행 위원장이었던 김호 유한양행의 설립자인 유일한 등이 중심이 됐습니다.

유일한 등은 태평양전쟁말기 CIA의 전신이었던 미 군사정보국 OSS가 한인 청년들을 훈련시켜서 한반도에 침투시켜 항일전을 벌이려는 비밀공작에 참여하게 됩니다.

MBC뉴스 황외진입니다.

(황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