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엄기영,백지연

[삼일절]어렵게 살고 있는 독립투사 故 김경두의 후손[유재용]

입력 | 1994-03-01   수정 | 199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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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어렵게 살고 있는 독립투사 고 김경두의 후손]

● 앵커: 네, 항일투쟁에 나선 우리 선열들은 당신자신은 물론이고 그 후손들에게 까지 형국과 간난의 길이었습니다.

친일인사들의 번듯한 행로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었습니다.

한 독립운동가의 후손 그 울먹임은 우리 모두의 빚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재용기자입니다.

● 기자: 고 김경두 선생의 장남 김선환씨는 경기도 미금시에 있는 한 허름한 연립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선친인 김경두 선생은 1898년 황해도 출생으로 신학교에 다니던 중 삼일운동에 참가한 것이 독립운동을 시작한 계기였습니다. 이

후 김 선생은 김구주석의 지시로 국내에 잠입해 군자금을 모으던 중 일경에 붙잡혀 3년간 갖은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 김선환(고 김경두 선생의 장남): 고문 받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어깨를 두 팔을 이렇게 해서 비행기 태운다는 거라고 합니다.

● 기자: 결국 이때 입었던 상처로 김 선생은 불구가 됐고 이때부터 가족들의 대를 이은 기나긴 고생이 시작됐습니다.

● 김선환(고 김경두 선생의 장남): 지금도 눈감으면 어머님이 고생하시는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 기자: 왜 우리아버지는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집에서 무능하게 계신가하고..

● 기자: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것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식지 않던 애국심입니다.

● 김선환(고 김경두 선생의 장남): 책 뒤 밑에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발라 태극기를 그 안에다 넣고서, 해방이 되니까 거기서 태극기를 꺼내 깃발에 묶어 추녀 끝에 달았습니다.

● 기자: 아무런 보상도 명예도 없이 조국을 위해 인생의 모두를 받친 아버지, 아버지를 회고하던 김 씨에게는 세월로도 씻기지 않은 짙은 회한이 서려있었습니다.

● 김선환(고 김경두 선생의 장남): 더 오래 사셨으면 했었습니다마는 한명이돼서 가셨습니다.

● 기자: MBC뉴스 유재용입니다.

(유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