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앵커: 엄기영,백지연

김일성의 전쟁 준비와 남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한정우]

입력 | 1994-07-20   수정 | 199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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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전쟁 준비와 남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 앵커: 오늘 공개된 문서들을 보면, 김일성은 상당 기간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전쟁 준비와 남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한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난 김일성은 남침에 대한 스탈린의 의향을 타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스탈린은, 남한군과 주한 미군의 병력 현황을 물었습니다.

스탈린은 또, 남과 북의 군대 중, 어느 쪽이 강한가를 물었고 배석했던 박헌영은 북한군이 강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한군에 대한 절대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남침은 성급하다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49년 4월 28일 김일성은, 평양주재 소련대사 슈트코프에게 기계화 사단과 비행사단 창설을 위한 장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같은해 9월, 슈트코프 대사는 김일성이, 전쟁 발발시 한국인은 북한을 지지할 것이며 평화 통일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보고서를 본국에 보냈습니다.

50년 1월 김일성은, 1억 1천만 루불 상당의 무기와 장비 지원을 소련에 요청했고, 한달 뒤인 2월 4일, 다시 3개 사단분의 무기 지원을 추가 요청했습니다.

50년 4월 김일성은, 극비리에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습니다.

스탈린은 당시 국제 환경이 무력 통일에 유리하게 조성되었다며, 남침에 동의하였으나 최종 결정은 중공과의 협의를 거칠 것을 제안했습니다.

6.25를 한달 앞둔 5월 15일, 북경에서 모택동을 만난 김일성은, 군사력 증강과 대남 평화 통일 제안을 거쳐, 전면 남침에 이르는 3단계 통일 방안을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모택동은 속전 속결을 강조하며, 일본군의 참전 가능성을 묻고, 미군 개입시 중공군을 파견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중공에서 돌아온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6월말을 기해 남침할 것임을 통보했고, 6월 16일 슈티코프는 한 달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북한의 전쟁 계획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이어 6월 22일, 소련은 평양 주재 대사관에 전문 발송을 금지시켰고, 평양-모스크바 간 교신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새벽, 인민군은 3.8선 이남을 향해 포문을 터뜨렸습니다.

MBC뉴스 한정우입니다.

(한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