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정부는 내일 지난해에 이어서 두 번째로 외교문서를 일반에 공개합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문서는 4.19와 5.16등 우리현대사에 굵직한 사건이 있었던 60년에서 64년까지의 비밀문서들로 그양은 11만 페이지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주요사건을 한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기자: 60년 4월 외무부가 주미 대사에게 보낸 전문을 보면 4.19혁명 이틀 뒤인 21일 메카나기 주한 미국 대사는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해 미국의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이대통령은 이 모든 사태가 장면시와 교회세력의 지시라고 설명했지만 메카나기 대사는 3.15부정 선거와 이를 저지르고도 숨긴 각료들 특히 경찰의 탓이라고 진원했습니다.
메카나기 대사는 또 즉각적인 개혁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비슷한 시간 양유찬 주미 대사는 쿼터 미 국무장관을 만나 정부 입장을 전달했으나 미국 측은 주한 미 대사관이 진술한 4.19혁명 진상보고 전문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대통령의 무지를 공격했다는 양대사의 편지 보고도 공개됐습니다.
5.16이후 61년 11월 5일 방한한 러스크 미 국무장관과 군사정부 각료들과의 회담은 각 출범한 군사정부의 취약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회담록에 따르면 최덕신 외무장관은 먼저 외신에 보도된 대한원조삭감의 진위여부를 물었고 송요찬 내각 수반은 경제개발 계획의 성패가 미국의 군비지원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러스크 장관은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하는 만큼 한국에 대해서만 군비지원을 약속할 수 없다며 확답을 피했습니다.
한국 측의 지원요청이 계속되자 러스크는 갑자기 화재를 바꿔 당시 예정돼 있던 박정희 의장의 방미가 특정 문제를 위한 것으로 비췰 경우 불행한 일이라며 원조 문제에 대한 거론 자체를 막아버렸습니다.
하와이에서 망명중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62년 2월말 측근을 호놀룰루 총 영사관에 보내 건강 악화에 따라 3월중 귀국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감정을 들어 이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외무부는 이박사의 귀국을 막기 위해 이박사 부인과 본인의 여권을 회수하거나 무효와 시키는 등 필사적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