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앵커: 정동영,김은주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생존자 24명의 구출장면[윤용철]

입력 | 1995-07-02   수정 | 199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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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생존자 24명의 구출장면]

● 앵커: 어제 밤 이 시간 24명이 생존자가 붕괴현장 지하에서 구출돼 나올 때 온 국민은 생명의 외경을 느꼈습니다.

못 배우고 생활이 어려운 탓에 청소원으로 일하는 분들이었지만 이들이 캄캄한 지하에서 보낸 52시간은 서로에 대한 인간애로 가득찬 것이었습니다.

구출장면을 현장에서 보도했던 윤용철 기자가 다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기자: 백화점 붕괴직전 24명의 미화원들은 평소처럼 휴게실에 모여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꽝하는 엄청난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귀를 때렸습니다.

사방 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휴게실은 순식간에 칠흙 속으로 돌변했습니다.

겁에 질린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습니다.

● 강기철: 옷 다 갈아입고 앉았더니 조금 있다가 바깥에서 뿌연 게 바람 치면서 그냥...

● 기자: 잠시 후, 암흑 속에 손전등이 하나 켜지면서 한쪽으로 모이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채 바닥에 엎드려있던 생존자들이 불빛을 따라 모여들었습니다.

서로 숫자를 세어봤습니다.

모두 24명 이였습니다.

그때 무너져내린 벽채 너머에선 자동차가 불타고 있었습니다.

불길이 번지면서 유독 가스가 휴게실로 스며들었습니다.

● 생존자: 가스냄새 때문에 죽을뻔 했지.

● 기자: 미화원 이계준씨가 비추는 손전등을 따라 생존자들은 옷으로 틈새를 막아 연기 유입을 막았습니다.

겨우 혼란이 진정되면서 이씨 등의 통제와 지시에 따라 함께 행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손전등으로 이곳 저곳을 비춰봤지만 나갈만한 통로는 없었습니다.

주먹하나 겨우 빠져 나갈만한 구멍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구조대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좁은 구멍에 손전등을 비추면서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 생존자: 24명이 입을 모아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없었다.

● 기자: 하루가 지난 것 같았습니다.

죽음이 닥쳐온다는 절망과 공포 속에서 탈진상태가 계속됐습니다.

휴게실 안에는 먹을 것은 물론 한 움큼의 마실 물 조차 없었습니다.

불을 끄기 위해 밖에서 뿌린 소방수가 천장에서 뜨거운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누군가가 1회용 라면 몇 개를 찾아냈습니다.

● 한춘자: 물도 받아서 먹고, 소변도 받아서 먹고, 그러면서 라면
쪼가리 같은것을 줏어서도 먹고 그랬어요.

● 기자 : 여자 생존자들은 격심한 탈진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편하게 눕힐만한 공간은 없었습니다.

몇 명은 스치로 폼으로 베게를 만들어 물에 반쯤 잠긴 상태에서 눈을 붙였습니다. 말 그대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24명을 버티게 한 것은 혹시 구조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한 오라기 희망 이였습니다.

● 서춘희 : 이렇게 60평생을 살았는데 내가 이렇게 죽기는 억울해 가지고요, ... 우리아들도 장가... 딸 넷에다가 아들 하나 뒀는데 우리아들 장가 안보내고...

● 기자 : 하루 낮 하루 밤이 지나갔습니다.

갇힌지 30시간이 지났을 무렵 멀리서 아득한 인기척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생존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틈새로 손전등을 비추면서 "여기요 여기"를 외쳤습니다.

마침내 지하15m 땅속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좁은 틈새로 구조 대원들의 모습이 보이자 생존자들은 울음을 떠트렸습니다.

구조 대원들은 포복을 하며 철근더미와 콘크리트 잔해를 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0시간의 사투가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구조 대원들의 손이 틈새로 들어왔습니다.

구조 대원들의 등에 엎혀 지옥을 빠져 나오던 생존자의 입에서는 고맙다는 가느다란 말이 울음에 섞여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MBC 뉴스, 윤용철 입니다.

(윤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