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앵커: 정동영,김은주
아들은 고베지진 현지에, 어머니는 삼풍 참사 겪은 김금순씨[김은혜]
입력 | 1995-07-02 수정 | 199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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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고베지진 현지에, 어머니는 삼풍 참사 겪은 김금순씨]
● 앵커: 어제 밤 구출된 24명 가운데는 지하에서 생일을 맞은 주부가 있습니다.
또 고베지진 때 아들이 현지에 있었고, 삼풍 참사 때는 어머니가 지하에 갇히는 기구한 사연도 있었습니다.
김은혜 기자 입니다.
● 기자: 삼풍 백화점 땅속에 갇혀있다, 어제 극적으로 생환한 김금순씨는 지난 1월 5천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일본 고베지진을 떠올렸습니다.
김씨의 아들 성구씨는 5년째 고베에 유학 중이였습니다.
● 김금순(생존자): 지진 나가지고 통곡하고 난리 났지 나는 나대로.
그때 그랬죠 학교고 뭐고 다 때려 치고 빨리 와라.
언제까지 하겠냐 그까짓거 공부 못하면 어떠냐고...
● 기자: 하루 50통화도 넘게 국제전화를 했던 김씨였습니다.
다행이 아들의 자취방은 지진의 여파에서 벗어났고 이웃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은공으로 아들이 살아났다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달 후 아들에 이어서 이번엔 어머니가 다시 기막힌 운명을 만났습니다.
● 김금순(생존자) : 엄마가 아들하고 똑같이 죽게 된 이 상태에서 살게 된 것은 오로지 부처님 지혜로 살았다는 그 생각 뿐이라고...
● 기자: 김씨와 함께 매몰됐다,구조된 한춘자씨.
그는 45번째 생일을 칠흑같이 어두운 20m 아래 지하에서 맞았습니다.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시각각 죄어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보낸 생일이었습니다.
단칸방 살림에 6년간 미화원 월급으로 대학생 아들의 학비를 근근히 대왔던 어머니였습니다.
● 한춘자 (생존자): 애들 걱정, 그거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나가야겠다는 것만, 그 생각 밖엔 없었어요.
● 기자: 사고 직후 어머니의 생사를 몰라 병원과 붕괴현장을 애타게 오갔던 아들은 거친 어머니의 손을 보고 복받치는 슬픔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 조철환 (한씨 아들): 어머니 고생 많이 하셔 가지고 앞으론 제가 열심히 효도 해드릴 겁니다.
● 기자: 왜 선량한 시민들이 이렇게 누워있어야 하는지, 누가 이런 비극을 뿌리는지 무너진 백화점 폐허는 희뿌연 연기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사고 나흘째 밤을 넘기고 있습니다.
MBC 뉴스, 김은혜 입니다.
(김은혜 기자)